헬리콥터 할머니
02. 5살 어느 밤에 꾸었던 꿈을 40년 뒤에도 기억하는 어른아이
제목 그대로이다. 5살 때 시골 할머니집에서 밤에 잠을 자면서 꾸었던 그 악몽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고 주변의 대부분 지인들은 어떻게 5살 때 꿈을 40여 년이 지나서도 기억하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지극히 정상은 아닌 것이다.
나는 늦게 까지도 엄마 젖을 빨던 아이였다. 내 동생과 난 4살 터울인데 내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엄마 젖을 빨았고 동생이 태어나면서 난 할머니집으로 격리조치를 당했었다.
마음의 준비도 자상한 설명도 없는 잔혹한 유배였고 추방이었다.
거기에다 우리 할머니는 그 당시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 사이에 사납다고 소문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강제로 먹였고, 말 안 듣는다고 한밤중에 대문밖에 쫓아내고, 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시골집에는 사극에 나오는 광이라고 창고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에 가두고 점심을 안 준 기억도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억이다. 위에 글만 보면 나의 할머니는 정말 나쁘고 아동 학대범 같으나 그건 현대의 가치관이나 법의 잣대를 대었을 때 그런 것이고 그 시대상을 대입해 보면 그냥 성정이 거칠고 자애롭지 못한 할머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대미지를 준건 사실이다.
난 우리 집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눈치로 알았을까? 이야기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지레 말하는 것조차 포기해 버렸을까. 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투정이나 생떼가 먹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 수도 있겠다.
그때 내가 꾼 꿈은 시골집 마당에 있는 우물 근처에 헬리콥터가 날아와서 사다리를 내려줬는데 나를 구출하러 온 헬리콥터라는 것을 알았다. 그 헬리콥터를 타려고 발버둥 거리다가 깬 꿈이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내가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리고 유치원을 다니고 빠른년생이라서 7살에 학교에 들어가고 그러는 중에 우리 엄마는 참 우울해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본인이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되니 자식에게 줄 모성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난 엄마가 부재였고 그 시대 아버지들은 대부분 가정에 소홀했었는데 우리 아빠는 딴 곳에 사랑이 있었으니 두배로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7살의 여름이 되기도 전에 정서적으로는 부재지만 곁에는 있어주던 엄마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헬리콥터 할머니가 우리 집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이다.
우리 아빠는 돈을 잘 벌었었다. 7남매의 맏이로 일찍 여읜 아버지를 대신해 남동생들 대학교육에 여동생들 시집보내기 까지 ~ 집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게 당연했다.
할머니와 삼촌들은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는 나를 돌보는 척 없는 자리에서는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모습을 바꿨었다.
가정의 돌봄에 홀대받은 아이는 세상이 제일 잘 알아보기 마련이다. 난 그 와중에도 기죽기 싫고 나의 불행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머릿속에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내 친구 아빠이자 내 아버지의 친구를 우리 아빠로, 사랑받지 못하고 배신당한 엄마대신에 아빠의 사랑에 행복한 어떤 여신을 나의 엄마로,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부모밑에 자라나는 공주는 내가 맡았다.
그곳에서 난 매일 행복했고 사랑 넘치게 받는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족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난 내 이상형의 가족을 소개했다.
하지만 늘 멍하게 있거나 수업시간에 딴짓하다 선생님께 혼나기 일쑤에 공부도 못하고 외모도 별로 청결하지 않은 아이가 들려주는 동화 속 이야기를 아이들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렇게 난 거짓말 장이가 되어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나는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에 빗대어 보면 그때의 나는 페르소나와 판타지를 방어기제로 사용한 것이다.
외부 현실이 주는 스트레스를 낮추어주는 변압기로써의 페르소나와 현실의 나와 반대되는 판타지를 만들어서 스스로 불균형을 맞추고자 어린아이는 그렇게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고 지금 나는 덜 자란 ‘어른아이’가 된 것이다.
전편에서 나는 실존적 공허를 겪었다고 했었는데 실존적 공허는 언어발달 이전의 유방기의 이상화된 부모를 형성하는 것으로 유방기에는 언어가 없기에 영적인 느낌으로 투영되고 이상화된 부모는 현실에 없으므로 내면의 가치가 외부의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보게 되고 영성을 추구하게 되는 기전이다.
실존적 공허가 발동된 사람들은 언어습득 이전의 체험이기에 언어 자체가 파편화되어 언어를 사랑하지만 자기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언어발달 이후에 이상화된 부모상을 투영한 것이기에 실존적 공허의 원개념과는 좀 거리가 있고, 오히려 요구되지 못한 욕구로 무의식에 욕망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근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방어기전에 문제가 생긴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 명상이나 수행을 하게 되면 지성과 감성과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 사회적 관계도 협소해지고 자신이 속한 영성집단에 매몰되는 기전이 있는데 내가 딱 13년 전까지 저러한 패턴을 경험한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어찌 보면 자아가 힘을 잃은 상태인데 수행단체에서는 에고를 버리라고 강요를 하니 자아가 붕괴되기 전에 빠겨 나오게 된 경우라 볼 수 있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 나의 상처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
호오포노포노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기억이라는 파트를 융의 관점에서 세 가지 자아의 통합을 빌려왔다. 기억을 정화해서 초의식과 현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의식은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기억(카르마/정보)에서 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회개를 한다.
무의식은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정화하는 것으로 용서를 행한다.
초의식은 이오의 파도를 바라보며 최선의 인생을 살기 위한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변화를 일으킨다.
초의식이 지시하고 무의식이 정화하며 현의식이 알아차리는 세 가지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호오포노포노에서 세 가지 자아가 통합된 셀프 아이덴티티라고 부른다.
호오포노포노는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되뇌며 정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화의 대상은 내가 경험 중인 지금의 현실이지 나의 오래전 마음의 상처가 아닙니다.
출처 : 네이버카페 유교제가 글 中
그리고 자각하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마음의 상처는 치료의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는 절대 낫지 않는다는 것, 단지 그 상처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정도로 내가 성숙해지는 길이 유일한 길이자 진정한 치유라는 것을 내게 각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