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다

by 하봉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다


2년간 지켜온 루틴이 무너진 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산에 올라가는 일을 2년 가까이 해왔다. 720일 동안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던 그 루틴이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섰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번아웃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게으르면 안 돼"라며 자책하고 억지로라도 일어서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래, 오늘은 쉬자."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네 마음대로 해."


계획을 포기했더니 일어난 기적


그렇게 시작된 3개월이었다. 철저히 지켜오던 모든 계획을 내려놓았다. 새벽 기상도, 할 일 목록도, 운동 스케줄도 모두 포기했다.


죄책감이 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런 계획 없이 지냈는데 책 한 권이 완성됐다. 소설도 썼고, 에세이도 정리했다.


억지로 짜낸 게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을 때 했을 뿐인데, 엄청난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게 뭐지?'


마치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창작 욕구가 깨어난 것 같았다.


성취 강박에서 벗어나기


50대까지는 묘한 조급함이 있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매일 투두리스트를 빼곡히 채우고, 생산성 앱을 깔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더 나은 나'가 되려고 애썼다.


하지만 3개월간의 '아무것도 안 하기' 실험을 통해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성과에 대한 걱정이나 과거의 실패에 대한 후회 대신,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결과는 저절로 따라왔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이유


왜 항상 머리로는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는데 몸과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머리로 세운 계획과 마음이 원하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차의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는 것처럼, 몸은 하나의 방향으로 가려 하는데 머리는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니 늘 피로하고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계획을 내려놓고 순간순간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자, 머리와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됐다.


마치 전문 운동선수가 필요한 근육만 쓰고 나머지는 완전히 이완시키는 것처럼, 에너지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놀라운 효율을 경험했다.


진짜 만족과 가짜 만족 구분하기


'내 마음대로 한다'는 걸 오해하면 안 된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충동적인 소비나 쾌락과는 다르다.


진짜 만족은 확실하다. 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뿌듯함이 든다. 에너지가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진다.


반대로 가짜 만족은 순간적이다. 충동구매를 하거나, SNS를 무작정 스크롤하거나, 드라마를 몰아보고 나면 오는 그 찝찝함과 공허감. 그건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게 아니었다는 신호다.


매 순간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일까?'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시간을 습관적으로, 의무감으로 보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때의 몰입감. 그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에너지는 오히려 충전됐다.


최고의 리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최고의 리더는 부하들이 일을 다 끝내고 나서 '우리가 해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내 인생의 리더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않고, 그냥 믿고 맡겼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좋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모르겠다"고 말할 용기


인생의 전환점은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완벽한 계획', '명확한 목표', '확실한 의지' 같은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모르겠으니까 일단 해보자" 하고 맡겨버리는 것.


이게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큰 흐름에 몸을 맡기는 지혜였다.


마치 물에 떠서 헤엄치는 것처럼. 물과 싸우면 익사하지만, 물의 부력을 믿고 맡기면 저절로 떠오른다.


힘 빼기의 기술


요즘 나는 '힘 빼기'를 연습한다.


일할 때도, 관계에서도, 심지어 쉴 때도 불필요한 긴장을 놓아버리려 한다.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 한다.


스스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발견했다. 중요한 건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상 속 작은 실험


이 모든 깨달음은 거창한 수행이나 특별한 능력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냥 일상 속 작은 실험들의 누적이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 계획표 대신 직감을 믿어보기

- 해야 할 일 목록을 반으로 줄여보기

- "모르겠다"고 말하는 순간을 만들어보기

- 진짜 하고 싶은 일과 의무감으로 하는 일 구분해보기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시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이뤄지는 삶. 그건 마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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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극한 실험을 통해 발견한 일상의 지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변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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