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악의 시기에 배운 5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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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일주일 앞둔 화요일이었다. 평소보다 길이 막히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은 벌써부터 명절 준비로 분주했다.
마트에서 장 보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추석에 진짜 마음 편히 보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어려운데, 명절 비용은 만만치 않다. 가족 모임에서 오가는 예민한 대화들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요즘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풍요롭다.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진짜 부자가 되는 건 통장 잔고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몇 년 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다. 사업이 망해 빚만 남았고,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일기장에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쏟아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그 시기에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글을 가장 많이 썼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가장 불행할 때 행복에 대해 가장 절실하게 고민했으니까.
그때 우연히 발견한 게 '5분의 법칙'이었다.
화가 나거나 우울할 때, 그 감정이 실제로 지속되는 시간을 재어봤더니 대부분 5분을 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그 5분짜리 감정을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씩 붙들고 있다는 거였다.
"아, 지금 짜증나네. 5분만 짜증내자."
"우울하구나. 5분만 마음껏 우울해하자."
이렇게 정해놓고 그 감정에 완전히 몰입해버렸다. 억지로 참거나 무시하지 말고, 오히려 제대로 느끼기로 한 거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정말 5분 정도면 그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요즘 편의점 요거트 하나가 2천 원이 넘는다. 가끔 사 먹고 나서 용기를 숟가락으로 긁어 먹으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이 만족감이 몇십만 원짜리 디저트에서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더 진솔하고 간절한 기쁨이었다.
"내 외로움은 5천 원을 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정서적으로 허전할 때, 꼭 비싼 걸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사실 작은 것들로도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친구와 커피 한 잔, 혼자 보는 넷플릭스, 산책하며 듣는 팟캐스트, 편의점에서 고르는 간식... 이런 것들로도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자꾸 더 크고 더 비싼 걸로 만족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는 마음이었다.
스마트폰 때문에 집중력이 망가진 요즘, 나는 의외의 곳에서 집중 훈련을 한다. 바로 설거지할 때다.
처음엔 그냥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설거지에만 온전히 집중해보기로 했다. 물소리, 거품 느낌, 그릇이 깨끗해지는 과정... 오직 그것만 생각하며 15분을 보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요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양파 써는 것, 계란 푸는 것, 불 조절하는 것...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진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을 때도 써먹는다. 복잡한 암산을 해보거나, 끝말잇기를 혼자 해보거나, 아니면 그냥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한다. 5분만 해도 확실히 다르다.
집중이라는 게 거창한 명상이나 특별한 훈련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것들에 온전히 마음을 쏟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지인이 "요즘 자존감이 바닥이에요. 제가 너무 한심해 보여서..."라고 털어놨을 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매일 그래요."
정말이다. 어떤 날은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날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라며 자책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한다.
예전엔 이런 감정 변화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본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일 수도 있고,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내면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감정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다. 5분 법칙을 여기서도 써먹는다. "지금 자괴감 드네. 5분만 실컷 자괴해보자." 그러고 나면 의외로 금세 다른 생각이 든다.
완벽한 자존감이란 없다. 있는 것은 그때그때 다른 나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마음뿐이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떤 일이 생겨도 나는 괜찮을 거야."
이게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달은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지혜와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불안할 때가 있고, 미래가 걱정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감정에 압도당하지는 않는다.
"아, 지금 불안하네. 그럴 수 있지. 5분만 불안해하자."
"돈 걱정이 되네. 근데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잖아?"
"외로우니까 5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어야겠다."
이런 식으로 나 자신과 대화한다. 마치 좋은 친구에게 하듯이 다정하게.
추석을 앞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명절 비용, 가족 갈등, 코로나 이후 달라진 일상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음의 풍요로움은 외부 조건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소중하고 의미 있다. 5천 원짜리 행복도 진짜 행복이고, 5분짜리 감정도 소중한 내 일부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끽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진짜 부자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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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움이란 더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리는 마음이다."*
*- 추석을 앞둔 어느 화요일 밤, 설거지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