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하던 스승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잖아요

by 하봉길

제가 원하던 스승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잖아요

어느 날 아침, 스텝중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마침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다가 바닥에 쏟아버린 참이었다. 세수도 안 하고, 머리는 산발인 채로, 허름한 잠옷 차림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얼어붙어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한참 뒤, 그 사람이 말했다.

"제가 원하던 스승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사람들은 스승이라면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흰 도포를 입고, 고요한 눈빛으로, 심오한 말씀을 하시는 분. 흔들림 없이, 실수 없이, 늘 완벽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분.

그런 기대가 있다.

직장 상사라면 "상사다워야" 하고, 부모라면 "부모다워야" 하고, 선생이라면 "선생다워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다움"을 요구한다.

그 "다움"이 얼마나 무거운지, 입어본 사람은 안다.

나는 살면서 손가락을 참 많이 다쳤다. 어느 날은 그릇이 깨지면서 손가락을 크게 베었다. 피가 철철 흘렀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병원 갈 틈이 없었다. 대일밴드로 칭칭 감고 그냥 나섰다.

새벽 칼바람 속에서 어둠을 뚫고 가는데, 신기하게도 통증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추위가 통증을 압도했다. 도착해서는 일이 통증을 압도했다. 어영부영 한나절이 지나고, 문득 깨달았다.

아, 통증도 5분을 넘기지 못하는구나.

추위도, 두려움도, 긴장도, 스트레스도. 그 순간을 지배하는 건 언제나 "지금"의 에너지였다. 하나의 감각이, 하나의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려고 애쓴다. 슬픔을 감추려 하고, 분노를 억누르려 하고, 두려움을 외면하려 한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면을 쓴다.

완벽한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다 괜찮은 사람처럼. 그 가면이 점점 무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흥미로운 건, 가면을 벗으면 떠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제가 생각한 그 사람이 아니네요."

그렇게 떠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건 슬픈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면을 쓴 나를 좋아한 사람은 결국 "가면"을 좋아한 거니까. 그 사람이 떠나면, 남는 사람은 "진짜 나"를 보고도 옆에 있는 사람이다.

산발머리에 허름한 잠옷 차림으로, 바닥에 뭔가 쏟아놓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도, 깔깔 웃으며 "그래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

그게 진짜 연결이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답을 강요받으며 산다.

"이렇게 해야 성공해." "저렇게 살아야 행복해." "그건 틀린 거야."

그 목소리들이 우리를 조여 온다. 우리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숨이 막히고,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간다.

그런데 말이다.

정답을 강요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모든 게 정답이 된다.

손가락 다쳐도 출근하는 것도 정답이고, 아프니까 쉬는 것도 정답이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도 정답이고, 산발머리 잠옷 차림도 정답이다. 성공하는 것도 정답이고, 실패하는 것도 정답이다.

내가 선택한 이 순간이, 그 자체로 정답이 된다.

나는 요즘 이렇게 산다.

삐뚤빼뚤해도 괜찮다. 좌충우돌해도 괜찮다. 모순덩어리여도 괜찮다.

미련하게 같은 실수를 계속해도 괜찮고, 어떤 건 트라우마가 생겨 피해도 괜찮다. 그게 뭐든 완전한 자기수용으로 자기를 인정해줄 때, 모든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가 생기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맞는 사람이 알아서 연결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완벽하다. 400년을 살았고, 시간을 멈추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멋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소년시대'의 찌질한 주인공, '트루먼쇼'의 순진한 트루먼, '포레스트 검프'의 어수룩한 검프, '레인맨'의 불편한 레이먼드, '기봉이'의 투박한 기봉이, '졸업'의 방황하는 벤저민.

전부 완벽하지 않다. 엉성하고, 날것이고, 세상 물정 모른다.

그런데 왜 감동일까.

카메라가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저 인간 왜 저래"가 아니라, "저게 바로 너야, 그래서 사랑스러워"라는 시선. 꿀 떨어지는 눈으로 불완전한 존재를 담아낼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이 예술이 아니다. 날것 그대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것이 예술이다. 당신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도민준처럼 완벽한 초월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짝퉁별에서 온 것처럼 덜떨어지고 한심해 보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런 자신을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의 삶은 진정으로 사랑스럽고 감동적인 드라마가 된다.

그게 내가 발견한 자유다.

"제가 원하던 스승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잖아요."

맞다. 나는 누군가가 원하는 스승의 모습이 아니다. 누군가가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누군가가 원하는 성공한 사람의 모습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손에 생활기스가 잔뜩 있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끊이지 않고, 가끔 뭔가를 쏟아버리고, 가끔 크게 실패하고, 그러면서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그게 나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당신도 그렇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가면을 쓰고 있다면, 오늘 한 번 벗어보면 어떨까.

떠나는 사람은 떠나게 두고, 남는 사람과 깔깔 웃으면 된다.

정답은 없다. 아니, 당신이 선택한 모든 것이 정답이다.

그게 진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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