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새벽까지 뒤척였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이렇게 끊임없는 시련이 찾아오는 걸까. 마치 우주가 나만 골라서 괴롭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이 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안다.
"안 하던 짓 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번 형성된 습관과 사고방식은 마치 자동운전 모드처럼 우리를 같은 패턴 속에 가둬둔다.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 인생에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찾아온다.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익숙했던 일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그때 우리는 비로소 변한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다.
맹자의 고자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신체를 고단하게 하며, 배를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에 빠뜨려 행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그저 위로의 말로만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말 속에 숨은 더 깊은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그랬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심해보다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면서, 온몸이 부딪히고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모든 과정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희미한 불빛 하나가 꺼지지 않고 있었다는 거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까?
이제야 깨달았다.
그 모든 고통과 시련은 단순히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깨우기 위한 신호였다. 잠들어 있던 내 안의 거대한 무언가를 깨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크였다.
우리가 겪는 대운(大運)은 단지 돈을 더 벌고, 좀 더 편안한 삶을 살게 해주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을 180도 바꾸는, 환골탈태의 과정이다.
"하늘이 큰일을 맡기려 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각자가 자신의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주로 깨어나는 것이다. 남이 만든 세상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세상을 직접 만들어가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
이 깨달음이 왔을 때, 그동안의 모든 고통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세는 80세부터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얻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겨자씨 같은 작은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씨앗이지만, 그것이 발아하면 거대한 나무가 되어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곳이 된다.
이제 나는 선언한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잘못될 리 없다. 왜? 내가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경제가 무너져도, 세상이 뒤집어져도 상관없다. 내가 만든 세상은 내가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길 바란다.
그 모든 시련은 당신을 깨우기 위한 신호다.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창조주를 깨우기 위한 간절한 노크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그 혹독한 시련은, 당신을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킬 것이다.
오늘도 나는 묻는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안다. 내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거대한 가능성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것이 깨어날 때다.
당신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할 창조주다. 지금의 고통은 그 위대한 탄생을 위한 진통일 뿐이다.
절대로 잘못될 리 없다. 왜? 우리가 주인이니까.
"대운이 오는 것은 단순히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자신으로 깨어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