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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Dec 26. 2021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

쓸쓸할 뻔했지만, 따뜻했던.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사실 별로 없었다.


어릴 적에

미키마우스 필통을 받아서

초등학교 때 들고 다닌 기억 말곤

딱히

가족과 함께 보낸 기억도 없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받고

같이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케이크 파티도 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즐겁고 설레는 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과 10여 년을 함께 하면서

매년 크리스마스에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왔다.


지난해부터는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나서

조금 더 특별해졌다.


올해는

타국에서 보내게 됐고

최근 몸도 마음도 지치면서

딱히 뭔가 할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우울해졌고

SNS 속 즐거운 풍경들이

달갑지 않게 느껴져서 꺼버렸다.

그렇게 23일도 지나갔다.




똑똑.

이브 아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여기 와서 친해진 이웃이었다.

적응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시고

여러 가지로 챙겨주신 감사한 분.

아기의 선물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고 가셨다.


나도 뭔가 해드려야지

생각만 하고 멈춰있었는데

선물과 카드를 받고 나니

움직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무기력하던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가볼 만한 곳을 찾고

선물 사러 갈 곳을 정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내심 기대했는데

비와 안개가 섞여

흐린 날이었다.


뿌연 안갯속

가로등 불빛과

반짝이는 조명에

몽글몽글해졌다.




올린 공원에서 빛 축제를 한다기에

따스하게 챙겨 입고 왔는데

응?

드라이브 쓰루였다.

골프 치는 산타도 있고

낙하산 펼치는 유니콘도 있고

유아차 산책하는 공룡도 있고

아주 다양한 장식들로 가득했다.

아기도 즐거워하며 함께 구경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나갈 때

도네이션을 받는 부스가 있었다


헨리 빌라스 주도 그렇고

무료입장인 곳들은

이런 공간들이 있는 편이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도네이션을 냈는데

막대사탕을 주셨다.

4개면 충분하냐며:)


박하맛이 나는 사탕이었는데

아주 소소한 것이지만

행복감이 채워졌다.


축제 구경을 마치고

선물을 사러 갔다.

마트에 가니

위스콘신과 관련된 책도 있었다.

여기서 보내는 것을 기념하며

사진만 하나 찍어놨다.

마트를 둘러보는 동안

아기가 지루해하기 시작해서

핑크퐁 영상을 켰다.

실시간으로 크리스마스 관련 내용이

아주 다양하게 나오고 있었다.

나도 같이 봐도 재밌을 정도니

아기 눈에는 얼마나 재밌을까.

선물을 다 구입하고

마트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데

초콜릿이 준비되어 있었다.


막대사탕으로 채워진

행복한 마음에다가

달달함까지 더해졌다.

작년에도

이맘때 즈음에

육아에 일상에 지쳤었다.


그래서 트리도 안 할래! 했다가

이브에 부랴부랴 설치했었는데

여기 와서 생각하니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워졌다.


올해도 또 지친 핑계로

아기랑 갖고 놀려고

펠트로 된 트리만 샀는데

마트에서 선물 고르고 나서

조명도 급히 하나 장만했다.

창가에 조명을 두르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퐁실퐁실해졌다.

아기와 갖고 놀던

펠트 트리까지 걸고 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해졌다.


아기도 바뀐 위치가 좋은지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갖고 놀면서 트리를 꾸몄다.

우리 아기 선물과

이웃 아기들 선물을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쓰고 나니

따스해졌다.

저녁 식사와 야식까지

맛있게 먹었다.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레드 노티스를 함께 봤는데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 웃으면서

영화를 보았다.




이브가 행복했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

날씨가 정말 맑아서

오전부터 외출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퍼져있었을 텐데.

여기 온 지 거의 3달 만에

눈으로만 보던 캐피톨에 갔다.

가로등도 예쁘고

주차안내판마저도

예쁘게 느껴지는 들뜸.

커-다란 트리와

그 아래 돌고 있는 기차는

영화 속에서만 보던 풍경이었다.


아기와 함께

뱅뱅 도는 기차를 구경했다.

요즘 기차에 빠진 아기가

만지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정말 얌전히 눈으로만 보아서

기특하기도 하고

언제 이만큼 컸나 싶어졌다.

2층에 올라와서 내려다봐도

정말 멋진 트리였다.


전망대는 쉬는 날이라 못 가봐서

조만간 다시 가봐야겠다.




쿠키를 만들고 싶다는 남편 말에

쿠키믹스를 사 왔다.

버터와 계란만 있으면 되는

아주 간편한 세상♡


셋이서 바닥에 둘러앉아

아기는 반죽을 조물 거리고

남편과 나는 쿠키를 만들었다.

동그랗게 넣었던 쿠키가

네모가 되어서 나오긴 했지만

그조차도 재밌어서 키득댔다.

남편은 다음번에 또 하자며

과정도 결과도 좋아했다.

머그컵으로 만드는 케이크 믹스로

컵케이크도 만들었다.

아기와 보내는 2번째 크리스마스.

아기는 초를 보며 행복해하고

초 불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이 행복이 영원하길

우리 아기가 건강하길

이런저런 기도를 하니

아기도 따라서 손을 모았다.


힘들다며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건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국에 와서

핼러윈 때도 그렇고

요즘도 그렇고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정원이든 집이든

조명이나 소품으로

장식을 해 둔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산책을 하며 지나가다가

문득 서서 구경하고 싶어 진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지내게 돼서

참 감사하고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늦어서 못 들어갔지만

밖에서만 봐도 아름다웠던

헨리 빌라스 주도 곧 가봐야겠다.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버킷리스트가

점점 늘어간다.


떠날 때에

아쉬움이 없도록

알차게 보내고

기록도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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