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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l 02. 2022

들리지도 않을 쏘리! 를 오늘도 외친다.

미국에서도 초보, N년째 초보 운전

 


  운전을 처음 배웠던 것은 고3과 대학교 입학 사이.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다들 대학 가기 전에 운전면허부터 따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평생 트럭 운전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2종도 아닌 1종으로 면허를 땄다. 그리고 그 면허증은 흔히 말하는 장롱면허가 되어 먼지만 쌓여갔다.


  진짜 운전을 시작한 계기는 첫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이다. 폐교가 되어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되어서 이사도 가야 하고, 이동할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첫 학교가 시골이라 교통이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그 핑계로 차도 사고, 먼지 쌓인 면허증도 세상에 나왔다. 물론 그대로 운전하기에는 내 면허증이 거의 10년을 쉬었기에 심폐소생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로 연수를 신청했고, 며칠 정도 주행 수업을 받았다. 그 뒤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고속도로 운전도 하고 장거리 운전도 하며 운전 경험을 쌓아나갔다.



  미국에 오기 전, 국제 면허증을 발급받아 왔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위스콘신주는 운전면허 상호인정 약정이 체결된 주라서 별도 교육이나 필기, 실기 시험 없이 운전면허증을 교환 발급받을 수 있다. 시카고에 있는 영사관에 가서 한국 운전면허증 공증된 번역본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구비 서류를 챙겨서 우리 지역의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에 가면 된다. 필요한 서류나 절차는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 잘 나와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 5년 이상 경험이 있고, 이 지역의 운전면허증도 있고, 여기서 차도 샀다. 운전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그런데 한동안은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슷한 듯 다른 도로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고 남편이 태워주는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 하지만 남편이 본격적으로 출근을 시작하니 답답했다. 아기랑 어디를 가고 싶어도 운전할 자신이 없으니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구글 지도를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며 길을 나섰다.



  구글 지도는 좋은 내비게이션으로 활용되었다. 속도 표기가 다른 것도 많이 헷갈렸는데, 기준 속도와 현재 속도를 확인하기 좋았다. ft, mile로 남은 거리가 안내되는 것은 여전히 당황스럽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도로 위에만 나가면 긴장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특히 비보호 좌회전과 Stop 표지판만 있는 교차로 등 로컬 룰(local rule)이 있는 곳은 한동안 버벅거릴 때가 많았다. 주민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구조지만, 처음에는 눈치를 보느라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주차도 어려웠다. 분명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많지만, 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막막했다. 표지판이 참 많은데, 그 표지판의 의미도 헷갈릴 때가 많았다. 배워야 하는데 그저 눈치로만 대충 적응하려고 하는 게으름 탓도 있으리라. 지금은 공영 주차장과 무료 주차장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게 되었지만, 한동안은 주차하는 게 무서워서 차를 갖고 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주차를 하기 전에 미리 시간을 정하고 주차요금을 내는 것도 있어서 낯설었다.



  그냥저냥 동네 운전이 익숙해질 무렵, 남편의 여름휴가로 로드 트립(road trip)을 떠났다. 3박 4일 동안 1600km가 넘는 거리를 19시간 이상 운전했었다. 이 많은 운전을 대체로 남편이 하느라 고생했기에 일부는 나도 거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렇게 운전하고 다닐 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교통 단속 경찰차를 몇 차례나 보았다. 그러다가 한 번은 과속으로 걸리기까지 했다. 당황하니 대처 방법도 기억나지 않아서 허둥지둥거렸다. 차에서 내렸고, 요구 서류를 찾아야 해서 가방도 뒤졌는데 이 모든 것은 자칫하면 크게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뒤에 타고 있는 아이를 보여주며 아이가 너무 울어서 정신이 없었다고 어설픈 영어로 말하는 내가 짠했을까. 다행히 경고장 발급으로만 넘어갔다. 



  그리고 가로등이 없는 길이 많아서 밤눈이 어두운 터라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 무단 횡단하는 사슴도 두 번이나 만났다. 지난 몇 달을 남편이 운전해서 장거리를 다닐 때는 없던 일이 왜 나에게는 거듭 일어나는 것인지. 앞차가 박을 뻔하기도 하고, 바로 내 차 앞으로 지나가기도 해서 철렁했다. 사슴은 밤과 외곽이 아닌 도심에서 낮에 만나기도 했다. 이곳에서 몇 년째 지내고 있는 이웃에게 이야기하니 본인도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며 신기해했다.



  운전은 나의 안전만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태우고 있는 가족, 그리고 다른 차의 운전자와 가족, 각종 구조물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의 안전이 달려있다. 그래서 매번 할 때마다 긴장이 되지만, 종종 방심하는 순간 아찔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언젠가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운전은 잘한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늘 조심해야 하는 일이 운전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에 와서도 N년째 초보 운전이라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당황하거나 실수할 때마다 들리지도 않을 쏘리! 를 외쳐가며 운전을 한다. 차가 없으면 살기가 불편하다는 미국, 다시 한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무사고 운전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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