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을꾸다 Jun 04. 2023

가족 미용의 날

중독적인 셀프 미용.

미용실에 가지 않은 지 오래 지났다. 그래도 전혀 지장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미용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미용가위와 숱가위, 이발기를 잡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어색하고 낯설고 떨렸다.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싶고, 과연 내가 머리카락을 제대로 자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첫 미용 대상은 남편이었다. 아이의 앞머리를 잘라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라준 건 처음이었다. 유튜브로 셀프 미용하는 방법도 찾아보고, 남편의 요구 사항도 반영해 가며 애썼다. 혹여라도 뭉텅 자르면 어쩌나 싶어서 부들부들 떨었다. 용을 써가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다행히 남편은 첫 도전치고 괜찮은 것 같다며 만족했다.



첫 미용 후 남편은 주기적으로 나에게 자기 머리카락을 맡겼다. 실수로 앞머리도, 옆머리도, 뒷머리도 한 번씩 뭉텅 자른 적도 있었다. 감이 없으니 무작정 가위나 이발기부터 들이밀었다가 후회하는 일이 반복됐다. 남편은 부디 천천히 조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몇 번 실수가 반복되고, 남편의 요구 사항이 많아질수록 부담이 커졌다. 그래서 매번 미용이 끝날 때마다 이럴 거면 미용실에 가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에서 미용실에 가려면 미용 비용에 세금과 팁까지 내야 해서 비용 부담이 크게 느껴진다. 저렴하게 가는 방법도 없는 게 아니지만, 아무래도 영어로 소통해야 하니 비용 외에도 심리적 부담이 큰 편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도 있다고 하지만, 그 또한 비용이나 거리 문제가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셀프 미용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에게 해주는 미용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요령도 생기고 용기도 생겼다. 끝없이 길어지는 내 머리카락도 자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조금,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더 길게. 점점 잘라내는 길이가 과감해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단발로 변신했다. 단발에서 숏단발로. 머리카락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의식하지 않되, 단정하고 깔끔하게.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나의 머리도 나름대로 성공하기 시작하니, 아이 머리 손질도 도전했다. 앞머리만 잘라주다가 단발로 변신시켜 줬다. 아이는 엄마처럼 변한 머리 스타일이 맘에 드는지 즐거워했다. 미용실에 가면 울고 떼쓰고 거부하는 아이지만, 엄마와 미용실 놀이하듯 머리 손질하니 좋아했다. 가끔 가위질이 무섭다고 거부할 때는 미용실처럼 영상을 보여줬다. 삐뚤빼뚤 어설픈 엄마표 머리 스타일이지만, 좋아하며 거울을 보는 아이 덕분에 나도 행복해졌다.


남편, 나, 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질할 주기가 찾아왔다. 가족 미용의 날로 잡고 모두 함께 손질하기로 했다. 일단 시작은 나부터였다. 욕조에 거울과 의자를 두고 거침없이 자르기 시작했다. 내가 셀프 미용하는 모습을 아이와 남편은 구경했다. 아이는 엄마 잘한다! 멋지다! 예쁘다! 칭찬을 연발하며 응원해 줬다. 가위 조심하라며 잔소리도 할 만큼 많이 컸다. 엄마가 자르는 모습을 볼 때는 좋아하더니, 본인 차례는 싫단다. 영상으로 잘 설득해서 아이 미용도 성공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든 후 남편 머리카락 손질까지 끝냈다. 


우리 가족 모두 홀가분해진 머리카락 덕분에 내 마음까지도 가벼워졌다.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니.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미용실에 가겠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은 스스로 가벼워지는 이 기분을 이어갈 것 같다. 싹둑-자르는 그 순간의 가벼움과 여유로움. 그 기분은 생각보다 매력적이고 중독적이다. 가족 미용의 날. 우리 가족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소중한 날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