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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Mar 12. 2022

아기를 키우며 공용 세탁실을 쓰다 보니 생긴 변화.

큰일처럼 보여도 너무나 별일 아닌 일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나서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요즘은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기를 재우다가도

유튜브를 보다가도

이런 내용을 써볼까? 하며

글을 쓰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은

12개의 가구가 살고 있는 1개의 동마다

세탁기 2대와 건조기 2대가 있는

공용세탁실이 지하에 있다.



Lost&Found에는 보통 양말이 들어있다.


우리 집 빨래에도

어느 집 아기 양말이

두어 번 이상 같이 담겨 와서 넣은 적이 있다.

저기에 널려 있는 빨간 양말도 그렇다.

우리 집 양말도 저 상자에서 찾은 적도 있다.


다 쓴 세제통을 버리는 곳과

건조기를 사용한 후 먼지를 버리는 곳도 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남편이 퇴근한 후에야 이용하느라

늘 시간이 쫓기듯이 빨래를 했다.


아니면 주말을 기다려야 했지만,

챙겨 온 수건이나 아기 내복이 많지 않아서

빨래는 적어도 3일 안에는 꼭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아기에게

"엄마 얼른 갔다 올게"하고 후다닥 다녀온다.

정말 고맙게도 아기는 잘 기다려준다.ㅠㅠ


빨래 한번 하기 위해서

현관문 잠그고

마스크도 써야 하고

외투도 입고 나서야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여전히 불편하지만

이제는 아기도 나도 익숙해졌다.


내가 마스크를 쓰고 열쇠만 챙겨도

아기는

"엄마 빨래하고 오께~놀고 이서 바~"라고 한다.



빨래를 넣거나 건조기를 사용할 때면

다시 찾으러 가는 것을 깜박하지 않도록

타이머도 꼭 설정을 해두는 편이다.


12개의 가구가 이용하는 터라

다른 사람과 겹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약 6개월을 지내는 동안

자리가 없어서 발길을 돌린 것은 2번뿐이다.


작동이 끝난 뒤에도 찾아가지 않으면

기계 위에 올려두거나

그 앞에 놓인 각자의 세탁바구니에 넣어준다.


나는 누가 우리 집 빨래 만지는 것이 싫어서

가급적이면 타이머가 울리기 전에 미리 간다.

물론 육아하다 보면

그게 내뜻 같지 않을 때도 있지만.



세탁실에는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도 있다.


여기에 짐을 넣어둘 만큼

짐을 늘리고 싶지도 않고

거미줄이 잔뜩 쳐진 모습이 내키지 않아서

세탁세제와 건조기 시트만 넣어두었다.


세탁실 문도 열어야 하고

창고 문도 열어야 하고

우리 집 현관도 잠가야 하니

빨래 한번 하려면 열쇠는 필수 준비물이다.



세탁실에 가려면
경사가 제법 있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커다란 세탁바구니를 들고 가다 보면

이러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기랑 같이 가는 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다.



건물 앞쪽으로 다니는 길은

제설 작업이 잘 되어 있는 보도블록이다.


건물 뒤쪽으로 다니는 길은

눈이 오면 눈이 잔뜩 쌓이고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얼어있는 얼음이 있다.


우리 집 출입문은 건물 뒤쪽이 더 가까워서

눈이 오기 전에는 뒤로 다녔는데

최근에는 거의 힘들었다.


운동화를 신고 나서도

신발에 눈이 다 들어올 정도로 눈이 왔었기에

지금처럼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건물 앞쪽으로 다니는 길도

비나 눈을 피하기는 힘들어서

비나 눈이 오는 날은

래는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미국 적응기에도 쓴 적이 있다.


오기 전까지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아기 빨래를

공용 세탁기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기 빨래며 설거지며

돌이 지난 뒤에도

아기와 관련된 것은 여전히

어른 것과 무조건 분리해서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어떤 빨래를 하고

무슨 세제를 쓰는지도 모르는

그런 공용 세탁기를 써야 한다니.


빨래를 하기 위해서

집 밖에 나가야만 하는 불편함은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공용으로 빨래를 한다는 것은 너무 싫었다.


동네 코인세탁방을 이용해본 적도 있고

1정 연수 때 기숙사 생활하는 동안

공용 세탁실을 써본 적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었을까.


미국에 도착한 후에도 너무 싫었지만

그렇다고 개인 세탁기를 설치할 수도 없었다.

결국은 현실에 맞출 수밖에.


그나마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것은

세제라도 아기 전용 세제를 사는 것과

세탁기가 2대이니

아기 것과 우리 것을 나눠서 빨래하는 것.


그런데 이마저도 바뀌었다.


남편이 아기 세제는 세탁력이 약한 것 같다며

일반 세제를 사자며 설득했다.

어차피 공용 세탁기를 쓰므로

다른 세제에도 노출이 되었을 거라나.


아기 빨래와 어른 빨래를 따로 하던 것도

세탁기 이용 기회가 내 맘 같지 않은 상황과

어차피 공용 세탁기라 의미 없다는 남편 말에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냥 같이 빨래를 하게 됐다.


이렇게 하나둘 포기하듯이

내려놓기 시작했다.


설거지도

세제도 따로 수세미도 따로 썼다.

아기 식기는 정말 구분해서 썼는데

이제는 식기도 같이 쓰고 설거지도 같이 한다.


아기 것을 따로 하지 않으면

아기가 아플 것만 같고

피부에 문제가 생길 것만 같고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막연한 불안함이 나를 삼켜버렸고

나는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화가 났다.


그런데

꽈악 쥐고 놓지 못하던 것들을

내 마음과 상관없이 놓아지고 보니

큰일은 없었다.


아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


큰일처럼 느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 별일 아닌 일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짐작하고 혼자 겁먹고서

한참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막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거나

실제로 일이 생기더라도

별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을

미국에 오기 전과 온 후의 경험들로

종종 깨닫고 있다.


조금씩 틀을 깨고

내려놓기를 해본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발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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