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을꾸다 Oct 03. 2023

나는 토양이자 정원사입니다.

작고 소중한 나의 정원을 가꾸는.

나에게는 아이라는 자그마한 정원이 있다.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며, 나의 말과 행동을 자신의 양분으로 삼으며 자라난다. 정원을 채워나가며 싹을 틔워내고 꽃이 피는 순간마다 놀랍다. 하루가 다르게 그 정원은 다채롭게 빛이 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일과 비슷하다. 

장미를 원하면 장미 씨앗을 심어야 한다. 장미를 심으면 결코 해바라기가 나올 수 없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처럼 아이마다 부모로부터 받은, 각자 품고 있는 싹이 다르다.


그렇기에 식물마다 잘 자라기 위한 조건이 다르고, 같은 식물이라도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필요로 하는 요소가 다르다. 아무리 좋은 토양과 비료가 있더라도 햇살과 수분이 없으면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햇살과 수분이 있더라도 그 양이 너무 부족하거나 지나쳐도 자라기가 어렵다. 각각의 싹마다 적절한 조건을 맞추는 일은 많은 관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꽃을 피워내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사실 묵묵히 지켜보아도 시간이 흘러가면 꽃은 핀다. 그러나 건강하게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해충이나 조류로부터 지켜줄 필요도 있다. 가끔은 지지대를 세워주거나 비료를 주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땅에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것도 싹에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그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러하다. 

임신 후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임신 기간도, 출산 후 아이가 앉고 기고 서고 걷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우리는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부모는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고, 가끔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론 과하게 보호하거나 도움을 주거나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방임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용의 자세를 지키고 싶다.



육아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아이가 어떤 씨앗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햇살과 수분의 양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보살핌과 기다림을 주어야 하는지도. 또한 아이가 품고 있는 싹과 꾸려가는 정원이 내가 꿈꾸던 풍경과 다르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고 차근차근 맞춰갈 필요가 있다.


나는 아이라는 정원이 자라나는 토양이기도 하고, 그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이기도 하다. 

아이를 품는 그 순간부터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러한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매 순간 우왕좌왕 헤매면서 그 자리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러다가 가끔은 아이에게 정성을 쏟느라 나 자신을 놓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꽃으로 피워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나라는 토양이 비옥하고 건강해야 그 위로 자라나는 꽃도 그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이라는 정원에서 나는 하나의 풀처럼 어우러져 함께 자라난다. 

내가 아이를 키워내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워내는 듯하기도 하다. 꽃향기에 취하듯 아이의 미소에 녹아내리기도 하고, 고단한 정원 가꾸기에 지치기도 한다. 작고 소중한 정원을 가꾸는 일은 힘들고 지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맡아야 하는 일이며, 의미 있는 일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는 그 과정을 음미하고 느낄 수 있다.



함께 키워가는 정원을 위해 오늘도 나는 몇 가지 다짐을 한다. 

첫째,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강요하지 않으며,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왕창 쏟아내지 말자고. 

둘째, 본래의 모습을 키워나가도록 지켜주며, 아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톡톡 건네주자고. 

끝으로, 아이와 나 사이에 균형을 잃지 말자고. 


나의 정원과 아이의 정원이 더해져 가는,

우리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려가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동이냐, 둘째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