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감으면 하루 끝.
눈을 뜬다. 몇 시인지 확인부터. 새벽 5시 전후로 눈을 뜨면 기분이 좋다. 아싸. 자유시간이 생겼다. 물론 8시까지도 괜찮다. 아이가 보통 9시 전후로 일어나니깐. 최소 1시간의 자유는 누릴 수 있다. 몇 시에 눈을 뜨든지 내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일단 남편 도시락을 챙긴다. 전날 저녁에 미리 밥과 반찬을 준비해 뒀다면 패스. 그러나 아무것도 준비해 둔 게 없는 날은 밥도 새로 하고, 국이나 반찬도 뚝딱 만들어야 한다. 아-주 귀찮거나 바쁜 날은 햇반에 컵라면 혹은 참치 통조림, 김 정도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남편 도시락을 준비하고 남편이 가져갈 커피를 내리고 대충 거실과 주방을 정리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져갈 물병도 준비해 두고 아침에 먹일 것도 준비해 두면 남편과 아이를 위한 아침 준비는 대략 마무리된다.
남편과 아이가 깨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하거나 영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여유가 있는 날은 이 모든 것을 다해도 시간이 남기도하고, 어떤 날은 한 가지도 겨우 끝내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엄마로 살아가면서 나로도 살아가기 위해 일상 속에 나의 루틴을 잘 버무려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로 살아가는 루틴 속에서 나로 살아가는 나의 루틴이 있는 시간은 귀중하다.
아이가 일어나면 그 소리에 남편도 미적미적 거실로 나온다. 아이의 등원 준비를 후다닥 마치고 남편이 출근 준비하는 동안 아이를 등원시키러 나간다.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웃으면서 안녕해주는 날이 많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주고 있는 게 얼마나 고맙고 짠한지. 낯선 얼굴들, 낯선 언어 사이에서 아이도 나날이 자라고 있다. 영어를 쓰는 미국의 어린이집이지만, 친구들의 출신은 콜롬비아, 브라질, 베트남 등 너무나 다양하다. 영어를 쓰다가도 아이들은 각자 자기 모국어로 이야기하며 말이 통하는 듯 안 통하는 듯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 모습이 짠하고도 귀엽고 재밌다.
아이가 하원하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점심을 바로 먹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놀고 있으라고 하고 서둘러 챙기기도 한다. 요즘은 제법 혼자 놀면서 잘 기다려줘서 식사 준비가 수월해졌다. 가끔은 외식하기도 하고, 도시락을 챙겨서 소풍 가기도 한다. 아이는 소풍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 트렁크를 열고 거기에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나도 아이도 그날 많이 웃고 행복했다. 점심을 먹고 후식도 먹고 나면 본격적인 육아 시작이다.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하면서 놀기도 하고, 외출해서 시간을 보낸다. 외출이 사실 가장 편하고 즐겁고 시간이 잘 가지만, 그저 바닥에 누워만 있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누워서 입으로만 육아하고 싶은 날이지만, 아이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쨌든 집에서 놀든 밖에서 놀든 아이와 놀다 보면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남편의 퇴근 시간은 대체로 늦다. 그래서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을 미리 준비해 두거나 아이는 먼저 먹이는 날도 많다.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러 가기까지. 하루의 마무리까지 고지가 멀지 않아서인지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다. 요즘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는 이 시간쯤에는 흐물흐물 슬라임이 되어서 육아의 고됨을 더해준다. 피곤하면 자면 될 텐데, 자러 들어가면 왜 잠들지 않는 것인지. 아이를 재우면서 나는 잠들지 않겠다 다짐하며 버텨본다. 그러나 실패하는 날이 허다하다. 크어어어엉. 내가 먼저 잠드는 날이 더 많은 듯.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잠들지 않고 버틴 날은 정신 건강 회복을 위한 자유시간이 기다리고, 잠들어버린 날은 수면을 통한 건강 회복이 기다린다. 어느 쪽이든 미워하지 않겠다고 노력한다. 함께 잠든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허무함과 상쾌함이 같이 밀려오지만, 허무함보다는 상쾌함에 감사해야지 뭐.
오늘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국은 하루가 끝날 시간,
나의 하루는 열심히 예열 중이다.
오늘도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