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육아인의 아주 보통의 하루.
하루는 대개 자정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를 뜻한다.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드는 것이 하루의 시작과 끝이라고 본다. 육아인의 하루는 어떠할까. 육아에서는 먹놀잠의 패턴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먹고 놀고 자는 순서가 규칙적으로 자리 잡아야 육아가 수월해지고 아이에게도 좋다고 들었다. 먹놀잠은 아이가 어릴 때뿐만 아니라 자라는 동안에도 중요한 것 같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규칙적인 시간대에 예측 가능한 일상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 그것이 아이와 육아인의 하루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아이가 태어난 후,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예측할 수 없으며,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시로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하루와 하루의 경계는 아이의 울음과 함께 뭉개져 갔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지내던 날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아이도 어른도 규칙적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우리 아이는 그게 빠른 편은 아니어서 돌 전까지 피로와 우울감이 컸었다. 통잠을 자면서도 때때로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우는 일도 여전하다. 어제도, 오늘도.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잠든 아이는 몇 번을 깨서 나를 찾았다.
다음으로 힘들었던 것은 식사, 화장실, 휴식 등 아주 보통의 일과들이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수 없는 것, 볼일이 급해도 화장실에 바로 갈 수 없는 것, 잠시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직장에 다닐 때도 항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점심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던가. 자기 앞에 보이지 않으면 울었기에 배가 고프면 바닥에 앉아서 대충 밥을 먹으며, 아이 앞에 있어야 하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야 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런 일과들도 많이 나아졌다.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은 육아에서 자주 느껴졌다.
해외에 잠시 거주하며 만 4세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육아인의 요즘 하루는 이러하다. 평일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면 육아 출근과 동시에 아이와 남편의 도시락과 아침 식사를 챙긴다. 아이가 등원하고 나면 요리,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을 하거나 글쓰기, 독서, 운동 등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가끔은 동네 이웃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아이가 하원하고 나면 산책, 공동육아, 마트 장보기, 카페 데이트, 미술놀이 등 아이가 원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각자 역할을 나누어 씻기고 재우고 나면 육아인의 하루가 끝난다. 주말에도 등원과 하원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육아인이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육아인의 하루가 존재할 것이다. 주양육자가 엄마인 경우도 있지만, 아빠나 조부모일 수도 있다. 전업주부일 수도 있지만 워킹맘일 수도 있고,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잘 되어 있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아이의 성장과 육아인의 성향에 따른 일과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외동아이를 키우면서도 전전긍긍한 입장에서는 둘 이상을 돌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존경스럽다. 어쨌거나 다양하면서도 큰 틀에서는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가 자랄수록 육아인의 하루는 그냥 '나'의 하루로 점점 돌아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하루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나와 함께 보내고 싶어 하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하루들이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복직 후, 아이의 자란 후,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 보통의 하루들이 얼마나 그립고 소중해질까. 그걸 알면서도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미안해하고 후회하는 하루들도 반복될 것이다. 챗바퀴처럼 제자리를 돌고 있는 것만 같지만, 우리의 돌아오지 않을 하루는 오늘도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