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편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떤 특정한 음식만을 가려서 즐겨 먹는 것을 말한다. 편식하면 영양 불균형이 이뤄지므로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어릴 적에 반찬 투정하다가 부모님이나 친척 어르신께 혼났던 경험도 흔하다. 학교에서도 특정 요일을 잔반 없는 날이라고 해서 배식받은 것을 버리지 않고 잘 먹도록 지도하기도 한다. 그리도 많이 듣고 배워왔으나,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편식하는 경우가 많다.
영유아기의 아기들은 젖을 떼고 식사에 익숙해지기 위해 생후 6개월 즈음부터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다. 이유식은 초기, 중기, 후기 등 입자의 크기 및 식감이 달라진다. 다양한 재료를 소량씩 먹어보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점검하기도 하고, 고유한 맛 경험 등을 통해 편식을 막고자 한다. 내가 썼던 재료 중 잊지 못할 재료는 비트이다. 이유식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손질도 해보고 먹어보기도 했던 그것. 이유식 이후로 기억 저 멀리 넣어둔 그것이다. 건강한 식재료 소개에서 자주 접하면서 언젠가 아이랑 다시 먹어봐야지 생각만 수십 번. 여전히 손이 선뜻 뻗어지지 않는다. 비트뿐만 아니라 이유식을 위해 여러 재료를 도전해 보는 나에게, 남편은 물었다. 우리도 잘 먹지 않는 것들을 이유식에서 꼭 먹여봐야 하냐고.
이유식은 그래도 큰 고민 없이 잘 흘러갔던 편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잘 먹는 편이었고, 이유식을 만드는 일도 후기로 갈수록 시간이나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돌 무렵부터 유아식으로 넘어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식사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밥을 먹이기 위한 에너지도 많이 필요했다. 취향이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거부하는 식감이나 재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조리하는지에 따라먹는 태도나 양이 달랐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양 균형을 놓치지 않을까 등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고민했던 시기였다. 그 고민이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남편은 어릴 적에 하도 먹지를 않아서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병원에도 데려간 적이 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께서 배고프면 먹는다고 굶기라고 하셨다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끝내 밥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남편. 나도 집이 아닌 곳에서 식사할 때 내 수저가 아니면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나 라면이나 김, 소시지를 달라고 떼썼다는 이야기 등 식사 문제로 부모님의 속을 태웠다고 하셨다. 그랬던 우리 두 사람의 아이니, 아이가 도통 식욕이 없거나 편식을 할 때마다 누구를 탓하겠냐는 생각도 절로 들었다.
아이는 한동안 생과일은 모두 거부했고, 고기도 거부하고,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이 초록색 종류도 거부하고, 물 마시는 것조차도 자주 거부했다. 거부했던 것들을 잘 먹는 날이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절로 와닿았다. 지금은 그나마 과일도 채소도 고기도 먹는 종류나 양이 많이 늘었다. 그렇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순간마다 초조하고 긴장되는 것도 여전하다. 이번에는 과연 잘 먹어줄까, 잘 먹지 않더라도 알아서 먹게 놔둬도 될까. 잘 안 먹어서 고생해 보면 알아서 잘 먹겠거니 싶다가도 부디 한 입만이라도 더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
먹는 문제는 생존과 직결되는 것인지라 내려놓기가 참 어렵다. 이왕 먹는 김에 건강하게 먹었으면 좋겠고, 골고루 잘 먹어서 잘 컸으면 좋겠고, 다양하게 먹어봤으면 좋겠다. 1끼 굶는다고 혹은 대충 먹는다고 당장 큰일이 나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게 삼대를 간다고도 하는데, 조금만 더 잘 먹어주면 좋지 않을까. 먹는 것이든 무엇이든 편식하지 않고,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이도.
다음 장보기에는 이유식 이후로 잊고 지낸 재료인 비트를 꼭 담아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