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위해 샀는데 왜 읽지를 않니.
한동안 매달 책을 샀다.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하던 때, 매주 만나면 서점에 가는 편이었다. 서점에 가면 새로 나온 책도 살펴보고, 관심 분야 코너도 기웃거리며 사고 싶은 책을 적어두곤 했다. 그리고 한 달에 1번 정도 각자 1권씩 책을 사서 읽기로 했다. 다 읽고 나면 교환해서 읽기로 했었는데, 실제로 교환까지 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당시 샀던 책 중 완독 했던 책은 드물었고, 완독 했으나 지금은 무슨 제목인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책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문구를 사진으로 찍어두곤 했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나는 그 구슬들을 꿰어낸 적이 없다. 그렇게 기록도 기억도 없이 책은 읽은 적이 없던 것처럼 흘러갔다.
이사 다닐 때마다 짐을 옮겨주시는 분이나 짐 정리를 도와준 가족이나 지인들이 책이 많다며 놀라곤 했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아마 잡지, 각종 연수 교재도 잔뜩 있었기에 이런저런 식으로 따지면 책 종류가 많긴 했다. 무겁기도 하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도 하는 짐이었지만 나는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읽지도 않으면서 욕심만 많아서는 학교에서 비우는 책이나 다른 사람이 나눠주는 책도 챙겨 오곤 했다.
책장에는 분야도 뒤죽박죽, 책 크기도 뒤죽박죽, 취향이나 체계 따위는 없었다. 무성한 정글처럼 공간만 있으면 그냥 꽂아두고 쌓아두고 하느라 눈길도 손길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니 읽으려고 마련해 둔 책이지만 정작 읽지는 않고 먼지만 쌓여갔다. 마음의 양식을 위해 산 책이 집의 장식만 된 것이다. 그것도 볼품없는 장식.
한 달에 1권씩 책을 사는 것은 어느 날부터 멈췄다. 너무 읽지를 않아서. 그러나 책에 대한 욕심은 놓지 못해서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오거나 전자책 구독권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기일이 정해져 있으니 그 안에 읽으려고 애를 쓰긴 했다. 물론 그것도 욕심이 가득해서 너무 많이 빌려오느라 다 읽지 못하는 책이 태반이었지만.
전자책 구독권은 밀리의 서재를 무료 체험해보기도 하고 리디북스를 써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북리더기가 갖고 싶어 져서 리디 셀렉트 1년 구독권과 같이 판매하는 리디 페이퍼를 샀다. 부피도 작고 무게도 가벼워서 가방에 넣어 다니며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언제든 꺼내봤다.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책을 읽는 양이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마구 빌려오거나 사들이던 때에 비해 오프라인 공간은 가벼워졌다.
출국을 앞두고 짐 정리를 할 때, 가장 망설였던 것 중 한 가지는 책이다. 딱히 소장 기준을 세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나중에 다시 사고 싶어질 듯한 아쉬움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게다가 육아를 하는 동안 내 책에 아기 책까지 더해져서 그 양은 어마어마했다. 다행히 전자책과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내가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과 만약 나중에 다시 그 책이 사고 싶어지면 중고로 사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먹고 나니 책을 정리하는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기 책은 당근 마켓으로 팔거나 나눔을 했다. 내 책도 엘리베이터 나눔을 하거나 온라인 중고 서점을 이용해서 판매했다. 어플 중에 중고 서점 거래 가격을 비교해주는 것도 있었다. 아니면 바로 각 서점의 어플을 이용해서 중고가를 확인할 수 있어서 가격 비교 및 판매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몇 상자의 책을 떠나보냈고, 그동안 내려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던 내 욕심도 떠나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거실에 커다란 책장을 두고 책을 잔뜩 꽂아두고 싶은 마음도 한편에 들곤 하지만, 지금처럼 아기와 도서관에 자주 다니며 책을 가까이하되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것이지 보관하는 것이 아니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