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기에 방치하기 쉬운 공간, 온라인과 PC.
정리를 시작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일상 공간뿐만 아니라 온라인도 돌아보게 된다.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E-mail, 과거에 가입했던 SNS, 각종 사이트,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 디스켓을 지나 USB, 외장하드, 웹하드까지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한 자료들. 되돌아보면 다시 열어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며, 아마 앞으로도 열어보지 않을 것이 태반이다.
이사를 여러 차례 하고도 나의 짐이 더해지기만 하고 비우지 못했던 것처럼 PC와 휴대전화를 몇 차례 바꾸면서도 연락처나 데이터를 정리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E-mail도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서라도 자주 정리해야 한다는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열어보지 않은 mail로 가득 차 있다. 아기가 태어난 후로는 아기 사진과 영상을 어마어마하게 찍어대면서 메모리는 수시로 꽉 차 버렸다.
정작 내가 필요한 사진과 자료는 찾으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아예 포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업무와 관련된 자료도 제때 정리하지 않아서 업무 진행 속도에 차질이 생긴 적도 있다. 깔끔하게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고,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자책도 했다. 지금도 내 PC의 바탕화면과 E-mail에는 대충 저장하고 아무 곳에나 놓아둔 것들이 보인다.
회원 가입한 사이트들도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을 사용한 그 긴 시간, 내가 가입하고 이용했던 사이트들은 이미 사라진 곳도 많고, 내가 어떤 정보를 제공하거나 어떤 자료를 저장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곳도 많다. 최근에 내가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를 조회해주고 탈퇴할 수 있게 해주는 ‘e프라이버스 클린서비스’도 이용해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공되는 사이트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얼추 정리를 할 수 있으니 좋았다. 이렇게 한 곳에서 일목요연하게 계좌, 보험, 가입한 사이트 등을 정리해주는 서비스가 점차 늘고 있어서 좋다.
“인터넷에는 ‘잊힐 권리’가 없다.”라는 대사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드라마에서 나왔었다. 15년 전 내가 쓴 기억도 나지 않는 글도 검색되고, 상기시켜주곤 하는 인터넷을 보면 너무 놀랍다. 구글에서 종종 검색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날 때마다 ‘잊힐 권리’가 생각난다. 내가 지우지 않는다면 아마도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 같은 그 흔적들.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면서부터 온라인 속 나의 흔적들도 지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페를 탈퇴할 때 지난 글이나 댓글을 지우기도 했고, 기억 속 옛 흔적들을 검색해서 지웠다.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공간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및 자료, 가입한 사이트, 온라인 게시물 등 온라인과 PC 공간도 정리해야 한다. 계좌, 신용카드 등 경제적인 정보도 정리해야 한다. 방치한 시간이 길수록 어디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손은 눈보다 빠르기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쌓이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정리하는 시간과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정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함께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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