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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May 30. 2022

취미와 특기는 없지만, 일단 사고 보는 하고재비.

실력이 아니라 짐만 늘어가는 슬픔

  하고재비. 경상도 말로 무슨 일이든지 안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 혹은 무슨 일이든 하려고 덤비는 사람을 일컫는다. 어정잡이. 겉모양만 꾸미고 실속이 없는 사람 혹은 됨됨이가 조금 모자라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서 덤벼보지만, 깔끔하게 해내지는 못하는 나는 어정쩡한 하고재비다.



  내가 덤벼든 취미 중 첫 번째는 ‘뜨개질’이다. 바늘과 실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손짓에 반해 도전해보고 싶었다. 며칠에 거쳐 풀고 뜨고를 반복한 끝에 목도리를 완성했다. 그때의 설렘과 뿌듯함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진행하는 아기 모자 뜨기에도 참여하고 제법 뜨개질에 재미를 느꼈다. 대바늘과 여러 색깔의 뜨개실을 사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할 줄 아는 것이나 작품의 완성도는 연습이 부족해서 통 늘지 않았고 흥미도 서서히 떨어졌다. 그러다가 코바늘로 수세미와 컵 받침을 만드는 것을 보고 꽂혔다. 코바늘도 사고 실도 사고 이것저것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임신했을 때는 아기 덧신 만들기도 도전했다. 바늘과 실을 담은 바구니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공간을 차지했다. 그런데 의욕을 갖고 재료를 산 것 치고 실력이나 결과물은 지지부진하다가 그 존재 자체가 잊혔다.



  두 번째는 ‘프랑스 자수’이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전에 십자수하던 추억을 되살리며 프랑스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만든 것을 선물하기도 하고 집에서 쓰기도 하면서 보람도 느꼈다. 퇴근 후 자수를 배우러 가는 길도 흥겨웠다. 그런데 내 끈기는 왜 그 모양인지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래도 그나마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취미 활동이다.



  세 번째는 ‘테니스’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취미라서 배우기 시작했다. 테니스화와 라켓도 사고, 운동복도 사기 시작했다. 뭘 시작하면 배우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운동 신경이 부족하면 공부도 하고 연습도 해야 실력도 늘어날 텐데, 늘지 않는 실력에 흥미만 잃어갔다.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는데, 나날이 강사님 표정도 굳어가고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른 곳에서 다시 배우기 시작했는데 시작 일주일도 안 돼서 임신을 알게 돼서 접었다. 그렇게 잠시 보류 중인 취미가 되었다. 언젠가 아기랑 남편이랑 셋이서 다시 하게 되는 날이 오려나.



  네 번째는 ‘악기’이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 ‘기타’를 샀다.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전자 피아노’를 샀고, 나도 한때 퇴근 후 피아노 교습소를 다니기도 하고 혼자 연습하기도 했다. 기타도 피아노도 한 곡 연주를 목표로 연습해서 성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도 연습을 자주 해줘야 하는데 나의 게으름은 악기를 장식품으로 전락시켰다. 남편의 연주를 들으며 박수만 열심히 쳤다.



  그 외에도 그림 그리기나 베이킹 등 이것저것 배워보러 다니기도 하고, 취미로 가져보려고 필요한 물품 먼저 구매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위한 취미와 특기를 찾아 헤맸다.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직접 도전해보곤 했다. 그러면서 연습은 게을리하고 조금만 어려워지거나 힘들어지면 그만뒀다. 그러니 각종 짐은 늘어가고 실력, 취미, 특기 어느 하나 남은 것이 없다. 집을 정리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까 봐 버리지도 못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는 사람들은 취미를 위한 용품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해졌다. 나처럼 잡다하게 벌리기만 하는 사람은 미니멀 라이프를 살 수 없는 것일까. 내 마음이 미니멀해지지 않는 한,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여정은 참 멀고도 험하다. 취미도 갖고 미니멀 라이프도 성공하는 그런 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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