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과 미용용품 욕심은 어쩌나.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과 몸매에 완전하게 만족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거울 속 내가 싫을 때도 있다. 아직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가 보다. 어찌 됐든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보는 나도 만족스러운 ‘나’이고 싶고, 다른 사람 눈에도 괜찮은 ‘나’이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그 나이. 나는 ‘못생겼다.’라는 말을 모르는 남학생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굳이 내 앞으로 와서 내 얼굴을 스-윽 확인하고 가더니 ‘얼굴도 못생긴 게 저런 안경을 쓰고 다니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안경 렌즈에 색깔을 넣는 것이 유행이었고, 나는 보라 색깔 렌즈의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그게 공격의 이유가 될 줄이야. 참 많은 시간이 흘러서 잊힐 법도 하지만, 나는 그 건널목에 서 있는 듯 생생하게 기억이 나곤 한다. 그 뒤로도 외모에 관해 부정적인 경험이 몇 번 생기고 나니,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도 다 그런 이유로 보는 것만 같아서 위축되었다.
거울 속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까만 얼굴이 싫어서 자외선 차단제도 이것저것 좋다는 것은 다 써보기도 하고, 미백에 좋다는 화장품도 많이 사봤다. 피부에 좋다는 팩도 사서 해보고, 먹는 제품도 사보기도 했다. 화장품 가게 주인이 나를 기억하고 반길 정도로 나는 한번 가면 왕창 사는 손님 중 하나였다. 자연스레 화장품 가게에서 받아온 샘플도 많았고, 쓰다 만 화장품도 쌓여갔다. 화장대에는 뭐가 쓰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었고, 나중에 써야지 하고 모아둔 샘플은 유효기간이 지난 것도 늘어갔다.
그리고 몸에 털도 많은 편이라, 인중, 코, 겨드랑이 할 것 없이 털이 난 곳은 죄다 미워졌다. 다 사라져라! 하는 마음으로 털을 제거해주는 제품도 참 많이 샀다. 왁스 스트랩, 제모 크림, 면도기 등 얼마나 많은 제품을 샀던가. 제대로 쓰지 않은 채로 버린 것도 있고, 쓰다가 만 것도 있다. 어쨌든 ‘나’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집착하느라 불필요한 비용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욕실 수납장에는 제모용품, 각종 팩과 미용용품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찼고,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피부 관리도 제모를 향한 관심은 지나가고, 어느 날부터 화장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나는 손재주와 감각이 부족한 편이라 화장도 나에게는 참 어려운 작업이었다. 나에게 맞는 화장품을 사는 일은 어렵고, 나에게 어울리는 화장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왜 화장하지 않느냐는 압박이 늘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화장하는 것을 보니 조바심이 나서 도전을 했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화장품만 잔뜩 사고 거의 쓰지 않았다. 가끔 화장하더라도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서 잘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닐 때도 화장은 예의라며 하고 오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는 민낯으로 잘 다녔다.
그런 나이지만, 미국에 오는 짐을 챙길 때, 화장품을 챙겨야 하나 고민했다. 혹여나 화장할 일이 생길까 봐. 파운데이션 하나, 립스틱 하나. 딱 2가지만 챙겨 왔는데, 8개월 동안 파운데이션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다. 아기랑 얼굴을 맞대고 놀고 하다 보니 더더욱 화장을 멀리하게 돼서 그런 것 같다. 역시나 ‘~까 봐’라고 생각해서 챙긴 것은 꺼낼 일이 없다는 것이 여기서도 느껴졌다. 거기다가 피부 관리에 신경을 안 쓴 것 같아 마스크팩이라도 해볼까 하고 주문했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방치 중이다. 이렇게 화장품과 미용용품에 대한 욕심과 외면을 가꾸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지만, 현실은 ‘없어도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의 태도로 살아가는 중이다. ‘나’의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날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