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하지만 가볍지 않은 식사하기
식재료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우리 집 냉장고에 관한 내용도 썼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작아진 냉장고를 보고 참담했던 내 마음과 달리,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지내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냉동실을 따로 구매해서 쓰는 집들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 그렇게 하지 않고 잘 지내볼 것이다. 그런 다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미니멀 장보기와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니멀이라 하기엔 애매할 수도 있지만, 내 기준이니깐.
흔히 상차림을 말할 때 등장하는 3첩 반상은 밥, 국, 찌개, 김치, 종지(장류), 찜, 탕, 전골은 제외하고 나머지 반찬의 개수를 기준으로 3가지 반찬이 있는 상차림을 말한다. 3첩은 주로 나물 1가지, 구이나 전, 조림 중 1가지, 마른반찬이나 젓갈과 장아찌 중 1가지라고 한다. 일반적인 가정식 상차림이라는데, 어릴 적 엄마도 밥, 국 혹은 찌개, 김치와 반찬 3가지 이상을 준비하려고 애쓰셨다. 그것도 끼니마다 새로운 국까지 준비하려고 하셨으니, 얼마나 바쁘고 힘드셨을까. 그래서일까, 그 당시 우리 집 냉장고는 늘 가득 차 있었다.
자취를 하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끼니마다 식사 준비를 하고, 미리 장을 봐 두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이며 고민을 해야 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의 집밥이 뚝딱 차려진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식사 시간이 반갑지 않을 줄은 몰랐다. 매일 먹는 밥이고, 먹지 않을 수 없는 밥이지만, 매일 그 밥을 차려야 하는 누군가는 그 모든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이유식을 지나 유아식을 먹기 시작하니 영양소 관리와 식습관 교육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늘어났다.
식사 준비가 버거워지니 외식이나 배달을 찾게 되고, 레토르트나 냉동식품을 쟁여두는 일이 늘어났다. 할인 행사를 하는 제품이 있으면 무조건 사야 할 것 같고,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불안해졌다. 번듯한 식사를 떡하니 차려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싫어지기도 했다. 건강하고 즐거운 식사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저 한 끼를 채우기 위한 사료를 먹는 느낌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먹기 바빴다.
그러다가 미국에 오니, 외식과 배달을 할 수 있어도 가격이나 메뉴의 종류 등의 이유로 한국에 있을 때만큼 자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마트의 식재료 코너에 가면 대부분 재료가 낯설고 어떤 재료를 사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남편 도시락도 챙겨주고, 아이 유아식도 해야 하고, 나도 밥을 먹어야 하니 장보기와 식사 준비를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마트에 적힌 낯선 재료명을 검색해보고 레시피를 찾아서 새롭게 도전해보기도 하고, 익숙한 재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보기 시작했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 하나 또는 국물 요리나 면 요리처럼 단품 요리 하나를 준비하되 고기, 채소 등 식재료의 영양, 색깔을 조화롭게 준비했다. 아이의 식사도 식판식이 아니라 한 그릇 요리로 주는 날이 많지만, 그 속에 부족함이 없도록 영양과 사랑을 가득 담았다. 3첩 반상은 아니지만, 영양도 놓치지 않고 식사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정량만큼 요리하니 잔반을 버리는 일도 사라졌다. 냉장고에 다시 들어가는 일도 없다 보니, 냉장고에 넣을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다. 식탁이 간소화되니, 식사 전후의 과정도 가벼워진 것이다.
장보기도 미리 일주일 혹은 최소 3일 정도의 식단을 생각해서 리스트를 적어보거나 구상해보고 갔다. 예전에는 습관처럼 마트에 가서 구경하며 먹고 싶은 것, 쟁여두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구 담아왔었다. 그런데 식단을 고려해서 장보기를 하니 충동구매가 줄어들고, 먹지 못해 버리는 식재료가 사라졌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그저 먹을 만큼만 사서 신선할 때 바로 요리한다. 행사하는 제품이나 충동적으로 먹고 싶은 제품이 있을 때 종종 구매하기도 하지만, 구매한 것을 다 먹기 전에는 더 사지 않는 것도 좋은 변화이다.
아직 장바구니에서 비워내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탄산음료와 커피이다. 장 볼 때마다 구매하는 품목인데, 육아 일상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두 가지인지라 차마 비울 수가 없다. 이런 낙은 있어야지. 그 외에는 우유, 달걀, 식빵, 두부, 파, 양파, 감자, 고기 등 떨어지면 아쉬운 식재료를 꼭 담는다. 별것 담지 않아도 헉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물가 속에서 장바구니에서도 낭비를 줄이고, 외식과 배달도 줄이니 식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집밥이 일상이 되고, 매일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막막하고 버거웠다. 그런데 이제는 채워지는 장바구니를 보면서 완성된 식탁 위를 떠올리는 일이 설레고 즐거울 때도 있다. 장바구니도 식탁 위도 가득 채우지 않아도 든든함이 채워지고, 3첩 반상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식사를 준비하는 내 마음을 내려놓고 비워본다. 여전히 장보기와 식사 준비는 어렵지만, 그 과정을 가볍게 천천히 즐겨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