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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n 02. 2022

정리를 잘하려면 수납용품을 꼭 사야 할까.

비움보다 어려운 정리


  미니멀 라이프 하면 떠오르는 집의 모습은 바깥에 보이는 짐 하나 없이 깔끔한 공간이다. 짐이 적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수납공간을 잘 활용해서 정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비움과 정리를 같이 안내하고 있는 책도 많이 봤다. 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을 잘 정리해야 한다.


  정리를 하는 것은 비우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각자 자기의 자리를 정해주고, 쓰고 나면 그 자리에 두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리’를 정해주는 일부터 막막하다. 어디에 둬야 평소에 사용하기 편한지, 아기가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이지만 자주 쓰는 것은 어디 둬야 할지, 어떻게 둬야 보기에도 깔끔한지 등 어느 하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만 비어 있는 자리가 보이면 툭, 턱, 척. 남편은 이런 나의 습관으로 답답함을 자주 느끼고 물건을 쓸 때마다 찾느라 고생을 했다.


  남편은 나보다 비움과 정리에 능한 편이다. 내가 비움을 망설일 때도 결심을 도와주고,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젓기도 한다. 나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부응해주고 싶지만, 어쩐지 내 몸과 마음은 더디게만 흘러간다. 남편이 정리하면 나보다 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장강박증’의 증상 중 하나인 누가 물건에 손대는 것이 싫은 그 마음 때문에 아예 못 하게 하거나 옆에서 종종거리며 지켜보기 바쁘다.



  어쨌든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해본다. 그러면 자질구레하면서도 작은 짐들이 나를 멈추게 한다. 이 짐을 어딘가에 두려면 ‘바구니’ 혹은 ‘수납용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납용품이 부족해서 정리가 잘 안 된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가, 일단 수납용품부터 산다. 짐을 줄여야 하는데, 또 짐이 늘어나는 것이다. 각종 선반, 수납함 등을 사서 나름대로 ‘분류’를 한 다음 짐을 담는다. 이렇게 담으면 눈에 보이기에는 깔끔하게 느껴지니, 짐을 더 줄이지 않게 된다. 담아뒀다가 나중에 쓰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출국을 앞두고 이 짐을 다 갖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짐’을 비우기 시작했다. 수납용품에 그저 담겨만 있던 짐을 꺼내서 살펴보니, 왜 여태껏 담아뒀나 싶은 것이 가득 쏟아졌다. 꼭 필요하다고 느꼈던 수납용품도 오히려 담을 것이 없어서 ‘빈’ 상태가 되었다. 정리를 잘하려고 샀지만, 오히려 여기에 담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를 미뤄온 것이다. 물건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비움도 정리도 하지 않은 채로 자리만 내어준 것이었다.

  물론 비우고 난 뒤에 남은 필요한 짐을 깔끔하게 보기 좋게 정리해두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수납용품은 필요하다. 그런데 처음 비움과 정리를 할 때부터 지나치게 수납용품에 의지하다 보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수납용품도 언젠가 비워야 할 짐이 된다는 것을 이번 정리에서 배우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불편했던 것 중 하나는 ‘신발장’과 ‘팬트리’가 없는 것이었다. 정리하기 애매한 짐을 ‘눈속임’처럼 내 눈에 안 보이게 밀어 넣던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수납공간이 있긴 하지만, 너무 높아서 평소 쓰는 물건을 두는 것이 어려웠다. 낮은 곳은 아기가 수시로 열어대고 꺼내느라 둘 수 있는 물건이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수납용품으로 이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기도 어려웠고 지난 경험으로 봤을 때 그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 쓴 생수병을 잘라서 투명한 수납함을 만들기도 하고, 빈 상자를 활용하기도 했다. 번듯한 수납용품은 아니더라도 공간 활용에도 도움이 되고, 눈에 잘 보이니 찾기도 쉬웠다. 아직 정리는 끝나지 않았지만, 정리를 위해 수납용품 먼저 마구잡이로 사던 때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비움과 정리, 그 중심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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