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을꾸다 May 26. 2022

물건을 사는 것은 미니멀 라이프가 아닌 걸까.

미니멀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소비’에 대한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나의 공간이 필요한 행위이므로. 쓰지 않는 물건을 짐에 두는 것은 그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만큼 비용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집 정리를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으로 비용을 내고 있었는지 실감하였고, 물건을 사는 행위와 두는 행위에 조금 더 의식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사는 행위를 멈춘 것은 아니다. 대신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가진 물건 중 불필요해졌거나 사용 빈도가 낮거나, 대체가 가능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건을 사기 전에도 이런 기준으로 고민을 한 뒤 구매를 했다. 흔히 1개를 사기 전에 2개를 비워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미국에 온 뒤, 짐을 늘리지 않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대표적인 물건 중 하나는 ‘온수 매트’였다. 이것을 갖고 오지 못해서 아쉬웠고, 추위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오기 전부터 열심히 제품을 비교했고, 몇 가지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라디에이터 난방으로도 따뜻함이 유지됐고, 아기도 추워하지 않았다. 살까 말까 고민을 한동안 했는데, 끝까지 구매하지 않고 겨울이 끝났다. 그리고 아마 다시 돌아갈 때까지도 사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기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혹은 난방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일단 구매 먼저 했을 것이다. 조금만 춥게 느껴져도 ‘아, 샀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없어도 충분하구나.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비가 하고 싶었구나.’ 등으로 생각이 달라졌다. 뭔가를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그 마음을 조금만 시간과 거리를 두고 지켜보니, 그 속의 진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아기 옷과 신발도 그랬다. 몇 번이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지만, 아기 옷과 신발은 충분했다. 주변 아기들이 예쁜 옷과 신발, 장식품 등으로 꾸민 모습을 보면, 나는 우리 아기를 위한 소비를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예쁘기만 하고, 아기가 더 커서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사줘도 늦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누군가 ‘왜 아기는 맨날 그 옷만 입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에게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로 소비를 하지 않았다. 내 삶의 기준을 찾아가는 중이니까.



  그런데 최근에 제법 부피가 있는 물건을 샀다. 그건 바로 ‘식기세척기’이다. 남편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사고 싶던 물건이다. 그러나 나는 ‘청소’는 청소기가 하더라도 ‘설거지’를 하는 일은 어쩐지 기계에 의지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부피가 크기도 하고, 어차피 떠날 미국에서 굳이 짐을 더 늘려야 하나 싶었다. 반대를 거듭하다가 청소든 설거지든 ‘살림’에 지쳐버린 어느 날, 남편에게 구매해버리자고 말했다. 실제로 설치하고 나니 부피는 예상보다 작았고, 편리함은 예상보다 컸다. 왜 이걸 진작 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공간은 식기세척기에 양보했지만, 식기세척기는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주었다. 설거지는 짧든 길든 나 또는 남편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로 했기에, 우리는 지친 일상 속에서 서로 미루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구매 후 휴식 시간이 한결 가벼워졌다. 미니멀의 기준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두니, 만족스러운 소비가 되었다. 물건을 산다고 해서 미니멀 라이프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건을 사는지와 어떻게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기준을 잘 세워야 한다. ‘공간’과 ‘시간’, 두 가지 모두 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이전 12화 정리를 잘하려면 수납용품을 꼭 사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