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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Dec 21. 2021

꼭 이루고 싶었던 꿈, 선생님.

돌아가면 잘할 수 있을까.

몇 명이나 될까.

평생 동안 만나는 선생님의 수.

그들 중

잊히지 않는 선생님은

몇 명이나 될까.


한때 초등학교 1학년-6학년,

중학교 1-3학년, 고등학교 1-3학년 동안

지도해주신 담임선생님의 성함도 다 기억하고

각 교과 선생님들 성함이나 얼굴도 기억했었다.


좋아하는 과목의 교과서는

20대 후반이 될 무렵까지도 버리지 못할 만큼

나는 학교, 선생님, 관련 교과목을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과서도 비우고

선생님들의 성함도 거의 잊혔다.

대부분 그렇게 잊어가며 살 것이고.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 피노키오 미술학원.

그 학원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

이유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잘 웃어주시고 챙겨주셨던 느낌이 떠오른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정말 다정다감한 분이셨다.

방학 중  각자의 집으로 써주신 손편지는

그 시절 나에게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자

3년간 사회 교과 담당 선생님이셨던 H선생님은

사회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결심하게 했다.


끝으로 고등학교에서 만나게 된 K선생님.

'지리'라는 교과에 흥미를 갖게 되고

살아가는 태도를 알려주신 롤모델.


대학에 떨어져서 재수 준비를 하던 때도

임용에 거듭 떨어져서 좌절하며 힘든 때도

가정사로 인해서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도

언제나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도 좋은 기운을 나눠주시고

불안함과 예민함이 가득 차 있던 나에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동안 만나온 선생님들의 모습 속에서

나도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꿈을 키워왔고

몇 번의 실패 끝에 꿈을 이루었다.




잘하고 싶었다.

수업도, 업무도, 아이들 지도도.


그러나

현실이 된 꿈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나의 기질은

이 직업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며

수십 번씩 좌절을 하곤 했다가

역시 하길 잘했다 라는 보람을 느끼며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곤 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동반휴직을 하게 되어

그동안 해오던 일을 멈추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교직생활을 종종 돌아본다.


마음만 앞서고 서툴디 서툴었던 것들,

좀 더 차분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것들,

중요한 것은 못 보고 겉만 훑었던 것들,

이렇게는 하지 말걸 하고 후회로 남은 것들.


좋았던 것보다 아쉽고 미안하고 부족한 것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럴수록 시간이 흐른 뒤에 다가올 복직 생각에

두렵고 초조해진다.




학급 아이들에게

뭔가 해주는 것이 참 좋았다.


직접 쿠키를 구워주기도 하고

고사 기간에는 간식 선물을 해주고

생일에는 편지와 작은 선물을 주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학습 습관 형성을 위한 활동도 하고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도 만들어보고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학급 이벤트를 고민해서 실시하고

사진으로 앨범이나 엽서를 만들기도 하고

마지막엔 영상 편지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자율학습에도 함께 남고

방학 보충에도 함께 하고

상담도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그저 나만의 만족이 아니었나,

아이들은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내 마음은 과연 진심으로

애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선생님으로 남아있을지,

어차피 잊히긴 하겠지만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지,

혼자만의 그리움에 빠지다 보면

괜스레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헤어지고 나면

잊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함께하는 순간 동안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데

자꾸 중요한 사실을 잊게 된다.




고 3 아이를 맡은 적이 있다.

40명의 아이들,

40개의 꿈을 함께 고민했다.


결국 결정은

아이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 결정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참 많이 고민했었다.


아쉬운 결과를 얻은 아이들도 있었고

원하는 결과를 얻은 아이들도 있었다.


살다 보면 반대가 될 수도 있을 거고

그 끝을 가봐야 아는 것이지만

모두 원하는 결과를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졸업 선물로 준비했던 형광펜 세트.

무슨 선물을 할까, 무슨 말을 적을까,

정말 고르고 골랐던 기억이 난다.

어떤 결과를  얻은 아이에게든

쓰임이 유용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며칠 전

지도했던 고 3 아이가 연락을 했다.

자신이 원하던 시험에 최종 합격했노라고.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선생님들께도 예의 바르고

친구들에게도 신뢰가 두터운

학급에서 참 든든한 아이 었다.


여러 고민 끝에

대학을 안 가겠다고 선언하더니

정말로 원서도 안 쓰고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를 간다고 해서

밥을 사주며 응원했었다.


대학을 가지 않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그 직업이 되기 위한 계획을

나름대로 철저히 세웠던 아이였기에

어디서 무얼 하든 이뤄내리라 믿었다.


그런 아이의 합격 소식이어서

정말 자랑스럽고 기뻤다.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눈물이 났다.


아이의 소식을 듣고 나니,

아이들과의 시간들이

더욱 그리워졌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고

그 꿈을 이룬 뒤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느라

나 자신에게 까다롭게 굴어왔다.


돌아가면 잘할 수 있을지

아직도 불안하고 자신 없지만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들을 잊지 않고

나를 보람차게 하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복직을 위한 준비도 꾸준히 하고 싶다.


삐그덕거리는 책걸상 소리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수다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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