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
이십 대 시절 pc통신으로 날새는 줄 모르던 때가 있었다.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한 달 동안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는 숯불갈비 무슨무슨 가든이 많았다. 나는 숙식제공되는 곳으로 찾아봤다. 산속 별장 같은 규모가 큰 가든으로 갔다. 주방아주머니, 정육담당자 둘, 주인부부, 숯불담당 겸 허드레일하는 아저씨, 나까지 거기서 기거했다. 주인 내외는 아래층, 종업원들은 2층에서 지냈다. 여자 종업원 방에 tv가 있어서 남자 종업원들이 드라마를 보러 왔다. 나는 고단했고 자고 싶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아이와'카세트테이프로 '마크 노플러'의 '고잉홈'을 들었다. 그래도 말소리 웃음소리 거슬리게 들렸다. 주방장의 자랑, 그 밑에서 일 배우는 젊은 애의 허세, 장단 맞추는 주방 아주머니. 그리고 숯불 피우는 아저씨. 그 아저씨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말을 더듬으며 웃으며 입가에 침까지 하얗게 묻은 그 사람이, 왠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스메르쟈코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늘 웃으며 구부린 채 손님들 신발도 가지런히 놓고, 개도 돌보고 가축도 돌보고 그렇게 번 돈은 몽땅 그의 아버지가 가져간다고 했다.
그 한 달, 눈 덮인 숲 속 겨울밤이 너무 길고 지루하고 답답했었다. 마치 <샤이닝>의 잭 니콜슨이 된 것 같았다. 한 보름쯤 지났다. 직원들이 노래방을 간다며 같이 나가자고 했다. 주방장 차를 타고 나갔다.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손사래를 치는 나한테 한사코 한 곡 하라고 했다. 나는 분위기에 맞지도 않게, 박완규의 '론리 나잇'인가 불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숯불아저씨'의 리사이틀이 이어졌다.
너무나 유창하다. 나훈아 뺨치는 너훈아 같았다.
한 달 후 월급을 받고 나는 그만뒀다.
겨울밤. 한 참을 걸어 나가야 택시를 부를 가게가 있었다.
혼자 나가기 무서웠다. 나는 '숯불아저씨'를 꼬셔서 가게 뭐 사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저씨는 침 흘리며 웃으며 "그그그.... 그... "더듬으며 따라왔다.
과자 한 봉지를 아저씨 손에 들려줬다.
나는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
30년 지났다. 그때 그 가게서 밤마다 남편과 전화했었다. 낙이라면 유일한 낙이었다.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고 씻고 자러 올라가기 전. 남편과 짧은 통화. 결혼 전 썸 타던 때다.
그 숯불아저씨의 노래 잘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째서 그럴까? 말을 할 때 더듬던 사람도 노래할 때는 잘한다.
치매 관련 정보를 찾다 보면 알고리즘에 이끌려 관련 영상을 계속 보게 된다.
치매 걸린 노인이 백조의 호수 음악이 나오자 우아한 발레 동작을 한다.
또 치매로 난폭해진 한 남성이 비행기 안에서 '유어 마이 선샤인'을 부르자 진정하고 승객들과 함께 합창을 했다. 그 노래는 부부의 추억이 담긴 노래라고 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감동한다.
생로병사의 비밀에도 자주 나온다. 치매 할아버지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피아노를 친다.
젊어서 음악을 했다며 해맑게 웃는다.
몸의 기억이란 뭘까.
<생활의 달인> 호떡집 청년이, 뜨겁지 않냐고 묻는 리포터한테 "손이 먼저 알아요" 대답했다.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박혀있다.
예술의 본질이 그런 건 아닐까. 아 예술이다. 와 예술이네..
감탄의 다른 표현.
인간한테 끝까지 남는 것은 예술이 아닐까.
예술의 마지막 한 방울.
구원을 이야기할 때 양파한뿌리의 예는 유명하다. 신의 은총은 양파 한 뿌리에, 지옥에 떨어진 모든 인간이 타고 올라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술이 곧 구원이라고 믿었다는데, 예술도 그런 것일까.
한 방울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