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어무이 주고, 요건 아부이 주고
엄마는 옛날 얘기의 달인이면서 속담을 뛰어넘는 비유의 달인이기도 했다.
비유는 이해다. 삶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다. 엄마의 비유야 말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해하라'에 대한 적확한 이해다.
"부모 노릇도 자식 노릇도 힘드다"던 엄마는 종갓집 외며느리 역할과 4남매 부모 노릇. 그 낀 역할을 하다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생신 준비를 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시부모 모시랴 자식 챙기랴. 식구들 나눠 주느라 정작 엄마 몫 없이 살며 그 손은 얼마나 시렸을까.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가장 리얼한 장면이 그 집 엄마가 밥을 안쳐놓고 죽는 장면이었다.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썼나 싶을 정도였다. 죽음은 그렇게 느닷없었다.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 생신 준비하느라 믹서에 콩을 갈다 말고 쓰러 졌었다.
살면 살아진다던가. 나는 살려고 남편과 결혼했다.
언니네 땅에 농사를 지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의외로 농사에 소질이 있었다. 요것조것 그때그때 심을 수 있는 건 조금씩 다 심었다. 상추, 골파, 감자, 고구마, 토마토, 가지, 호박, 오이, 수세미, 땅콩, 무까지 다양했다.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계속 수확했다. 농사를 지어 보고 알게 되었다. 좋은 건 다 남을 먼저 준다는 걸.
농사지은 것도 자랑이라고 여기저기 선물했다. 땅주인 언니네는 제일 먼저 달린 실하고 좋은 것으로 상납했다. 겨우내 먹을 무는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그런데 언니네가 땅을 팔았다. 그 바람에 무를 다시 꺼냈다.
할머니는 무가 이쁘다고 먹기도 아깝다고 했다. 좋은 것만 골라 선물하고 나니 정작 우리 것은 파치만 남았었다. 그래도 뿌듯하고 좋았다.
"불든 손이 시리다"더니 딱 맞네 싶었다.
감자를 골라 담으며 나는 저절로 "요건 우리 할머니 주고, 요건 우리 아버지 주고, 요건 내 먹고, "하면서 실하고 좋은 것은 다른 집으로, 파치는 우리 집으로 분류했다.
세상에 어릴 때 들었던 혹부리 영감류 이야기 교훈이 체화 됐었던 건가? 이래서 옛날 얘기는 어린이들한테 어쩌면 가스라이팅이 될 수도 있는 건가? 교훈이라는 이름아래? 음...
아무튼, 어릴 때 엄마가 해준 옛날 얘기 속 대사가 리드미컬하고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나왔다.
혹부리 영감류 얘기는 두 혹부리 영감을 대비시켜 보여 주며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쁘면 벌을 받는다는 줄기다.
엄마가 해 준 얘기는, 한 사내가 산에 나무 하러 갔다가 늦어졌는데 깨금이 한 알 떨어졌다. 하나를 주우며 요건 우리 어무이 주고, 또 하나 떨어지자 요건 우리 마누래 주고, 또 하나 떨어지자 요건 우리 아들 주고, 마지막 떨어지자 요건 내 먹고. 하면서 식구들 먼저 챙겼다. 당연히 소식 듣고 찾아간 욕심쟁이 사내한테도 깨금이 탁 떨어졌다. 하나 딱 떨어지자 요건 내먹고, 또 하나 떨어지자 요것도 내 먹고.
결말은 모두 알듯이 도깨비한테 혼이 난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 살 수 있는 강원도. 그리고 그 지역에 많이 나는 열매 깨금.
지금은 나무는 고사하고 깨금도 귀하지만 있다한들 함부로 따면 안 된다. 다 사 먹는 시대가 됐다.
싫으나 좋으나 치매에 좋은 식단을 차리는 나는 남편위주일 수밖에 없다.
연어 버터 구이도 남편, 소고기도 남편, 찐계란도 남편, 영양제도 남편.
그러고 나면, 정작 나는 서서 한 술 뜨거나, 쉬운 라면을 먹게 된다. 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서 먹는 건 앉아서 먹는 것보다 편해서 그렇다. 라면은 워낙 내가 좋아한다.
그러니 생색낼 것도 없다.
엄마. 나는 불 든 손이 시리지 않아.
서서 먹는 건 편해서 그렇고 라면은 원래 좋아해. 그런 거야.
걱정 마.
엄마는 쉰이 넘어서 자주 아팠다.
한 번은 수술하러 대학병원에 갔을 때다.
언니가 잠깐 왔다. 얘기하고 병원 바깥에 나가서 배웅하고 왔다.
다시 수술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내 또래 어린 여의사가 나오더니 두리번두리번 나를 찾았다.
내가 얼른 일어나 다가갔다.
"엄마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래요.
막내딸 밖에서 걱정할까 봐
전해달라고 하고 수술 들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