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치유

뇌가 힘들 때 미술관에 가라지?

by 채송화

남편은 취미 부자가 됐다.


난생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남편.

동네 피아노 학원에 꼬마들이 있다. 그 속에 끼어 앉아 남편도 피아노를 배운다.

원장님이 남편의 왼쪽에 앉아 왼쪽 귀에 대고 크게 말씀하신다.

남편이 청각장애가 있어서 그렇다.

원장님은 뮤지컬 배우 같다. 노래하듯이 리듬감 있게 말한다.


남편이 혼자 도레미를 연습한다.

꼬마가 남편 옆에 가서 척 앉더니, "아저씨! 이렇게 하는 거예요."

건반에 손을 올리고 시범을 보인다.

마치 원장님이 된 양 짐짓 진지하다.

"어 그래? 이렇게?"

남편이 따라 한다.


초등학교 앞에 학원이 있어서 그런지 많지는 않아도 오후에는 다 아이들이다.

어른 아저씨가 끼어 앉아 배우는 모습에 누구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원장님과 얘기할 때도 아이들은 계속 끼어들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남편이 혼자 구석에 가서 이론 문제집을 풀면 자연스레 그 옆에 와서 같이 공부하는 아이도 있다.

또 남편이 혼잣말로 "어 연필을 깎아야겠네." 하면,

말없이 벌떡 일어나 연필깎이를 가져오는 아이도 있다.

반전은 자기가 먼저 깎으려고 선수 쳤다는 것. 이것조차 너무나 귀엽다.


아이들과 나눠 먹으라고 빵을 보냈다.

아이들이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했다고 한다. 세상에 예의도 바르지.


이렇게 또 취미를 같이 하는 남편의 동기가 한 팀 더 늘었다.



남편이 제일 먼저 시작한 취미는 시낭송 교실에 가는 거였다.

알츠하이머병 진단받고 처음 했으니까 2년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시 제목도 시인 이름도 1초 지나면 잊어버릴 정도였다.

지금 20편을 외우는 건 아무리 봐도 기적에 가깝다.

여전히 지금도 제목과 시인을 외우는 첫 일주일은 힘들다.


취미 생활을 하는 연령대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 많다. 성별은 여성이 압도적이다.

그나마 시낭송은 남자 회원이 서너 명은 된다. 나머지 취미반은 남편만 혼자 남자다.

여자들 많은데 남자 하나 끼면 서로 껄끄러울 텐데.

그래도 꿋꿋하게 남편은 다녔다. 민화, 합창, 명상, 브이로그, 동화구연까지.


주민센터나 평생학습관이 있으니 망정이지.

없는 살림에 질병은 돈과의 싸움이다.

노령 인구는 점점 느는데 중년 취미도 수강신청이 치열하다.

통기타는 몇 번이나 추첨에서 떨어졌다. 수강을 원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그림을 좋아하는 남편은 민화반은 일 년 반을 다녔다.

연말에 전시회도 했다. 민화 그림도 석 점이나 표구했다.

선생님도 남편한테 내년에도 꼭 다녀요 했다면서 올해 기대를 품고 또 등록했다.

셀레며 가더니 실망으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선생님이 바뀌었다고 했다.


남편은 말수가 적지만 솔선수범 하는 편이다.

수업시간에 제일 일찍 가고 알아서 눈치껏 앞정리 뒷정리를 한다.

오죽하면 식당 하는 회원 가게에 가서 회식하고 설거지까지 해주고 왔다.

몰랐는데 단체 카톡에 여성회원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집에서도 그렇게 설거지를 하더니 나가서도 그랬나 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남편한테 총무를 하라고 다들 권유했다는 것이다.

일찍 오고 출석부도 잘 챙기고 쓰레기도 치우고 처음 다닐 때만 해도 차에 회원들도 태우고 다녔었다.

공간 감각력이 떨어져서 주차할 때 자꾸 기둥에 긁혀서 작년에 차도 팔았지만.


치매 때문에 총기가 없어져서 돈 관리는 못하고 대신 몸 쓰는 일은 다 하겠다고 했다 한다.

총무 시킬 거면 그만 다닐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남편이 이렇게 되고 보니 총무하고 다니는 건 복중에 복인 것만 같다.

부럽기 이를 데가 없는 것이다.

치매만 아니라면 노년을 느긋하게 취미 생활 즐기며 살 텐데.

치매 인지강화를 위해 시작한 이 활동.


이건 남편한테는 취미라기보다, 예술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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