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외우며
시를 외운다는 건 몸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하는 일이다.
조선시대 김득신도 그렇게 외웠다.
그는 스스로 "타고난 둔재"라 불렀지만 결국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백곡 김득신은 조선시대 시인이자 최고 비평가다.
하지만 오십이 넘어서야 벼슬을 했다.
어릴 때부터 암기를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독서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모든 것은 하기 나름이니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고 했다.
'만 시간의 법칙'은, 이미 조선 중기 한 선비가 실천하고 있었던 거다.
그의 일화는 유명한데 정작 마음이 가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마님, 쇤네가 다 외웠습니다요."라고 한 하인의 얘기.
김득신은 타고난 기억력부족이지만 하도 많이 읽어서.
늘 옆에서 듣던 몸종마저 저절로 다 외워졌다는,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뇌과학자들은 사람 장기 가운데 뇌만 유일하게 늙지 않는다고 말한다.
뇌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고 한다.
심지어 한 군데가 막히면 우회하는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치매를 잡아 끄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알츠하이머병 연구에서 가장 유명한 논문이 바로 '수녀님들의 뇌'이다.
미국 노트르담 수녀원 소속 600여 명의 수녀님들이 사후 뇌를 기증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전혀 치매로 안 보였던 한 수녀님은 치매였고, 치매처럼 보이는 한 수녀님은 치매가 아니었다.
의사들은 사회활동의 중요성, 생활습관, 식단, 운동, 환경이 모두 치매에 영향을 미치며, 꾸준한 관리로 치매가 왔는지도 모르게 노후를 맞이하라고 당부한다.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는 이 연구의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한 『우아한 노년』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통찰을 주었다.
그렇다. 뇌는 늙지 않는다.
끊임없이 단련되는 기억의 힘을 믿으며.
치매인 남편도 시를 외웠다.
아침마다 아파트 앞 산에 맨발로 간다. 맨발 걷기를 하며 시를 외운다.
2년 가까이 하니, 스무 편 정도 외우게 되었다.
나야말로 그제야 "쇤네가 다 외웠습니다요" 남편한테 우스갯소리할 여유도 생겼다.
남편이 잊어버리면 내가 대신 첫음절을 말해준다.
처음에는 제목 외우는데 일주일도 더 걸렸다.
제목 다음에 지은이 외우는데도 일주일.
시 한 편 외우는데 한 달도 더 걸렸다.
열 편 정도 외웠을까.
뇌는 끊임없는 도전과 자극이 있어야 활발해진다고 해서.
작은 시 낭송 대회에 도전했다.
남편은 산에서 뿐 아니라 동네를 걸을 때도
정호승의 시, 『연어』를 반복해 연습했다.
결과는 기적이었다.
남편이 최우수상을 타왔다.
'거친 파도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는
바로 남편이었다.
기억도 근력이 붙는다.
꾸준함에 장사 없다.
반복과 연습만이 살 길이다.
몸도 좋아졌다. 맨발로 날마다 겨울에도 걸었으니.
몸도 기억한다. 뇌도 박자를 맞춰준다.
몸은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