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과 위치추적
남편을 사거리 빵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일행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 당부하고 돌아섰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았다. 5분쯤 지나 승용차 한 대가 도착했다. 남편이 차에 탔다.
그제야 숨을 돌렸다.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 위치추적 앱을 켰다. 남편 워치와 폰 아이콘이 나란히 찍혀 있다.
시낭송 대회 장소를 향해 잘 가고 있다.
모든 것이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표시. 위치가 확인된다는 것, 그 자체가 안도였다.
내가 만약 바람난 배우자를 쫓는 흥신소 직원이었다면, 이 장면은 꽤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어쩌면 바람은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넘겨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내 남편의 진단명은 불륜과는 거리가 멀다.
알츠하이머병.
남편은 환갑 전에 진단받았고, 작년이 환갑이었다.
65세 이전에 발병한 경우 '초로기 치매'라 부른다.
의사는 젊은 치매는 진행이 빠르다고 했다. 3~4년이 고비라고.
우리는 지금, 그 고비의 초입에 서 있다.
사랑할 때는 사랑을 모르고, 젊으면 젊어서 모른다.
그래서 젊을 때의 이별은 비극이고, 바람은 절망이다.
모든 아픔에는 '때'가 있다.
그때가 지나면 아파서 우는 일도 없다.
울창한 여름 숲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가린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드러난 겨울이 되어야 비로소 보인다.
여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결혼도 마찬가지다.
푸르름이 절정일 때, 그때가 결혼할 때다.
삶이 어떻게 바뀔지 알지 못하고, 빙산 아래 얼마나 거대한 덩어리가 숨어 있는지도 모를 때.
그 무지를 견디지 못하고 사랑에 뛰어드는 것이다.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어떤 이는,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덮치듯 우울은 그런 거라 말했다.
그렇다면 사랑도 거대한 우울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남편을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 주기 시작한 것도 병의 한 단계일 것이다.
무엇이든 초·중·말기가 있다.
감기든 암이든. 치매도 그렇다.
예전 멜로드라마에서 질병은 가장 극적인 장치였다.
백혈병이나 암은 마지막 관문이었고, 그 관문을 넘으면 사랑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치매는 다르다.
치매는 극복이 없다.
극복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현상 유지'일뿐이다.
현상이 유지되지 않으면, 그게 곧 치매다.
현상유지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 철학자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개념인 **코나투스(conatus)**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뜻한다. 만물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 애쓴다. 이것이 본성이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조차도 정지하려는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는 것 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운동일 것이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기억을 잃은 스페인 시인을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가?”물었다.
어쩌면 스피노자 철학 최대 난제는 '치매'일지 모른다.
'기억'은 윤리의 문제다.
기억이 있는 자만이 책임질 수 있다.
기억은 존재의 바탕이다.
하지만 치매는 어떤가.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만큼 하루하루 발버둥 친다.
문화재를 관람할 때 우리는 ‘현 위치’부터 확인한다.
지금 이곳에서 어디로 향할지를 그려보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다.
그러나 치매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삶의 방향을 잃은 것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던가.
치매는 속도도 방향도 잃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 <길>처럼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현재의 시간과 위치,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잃는다.
나는 남편의 현 위치를 수시로 확인한다.
그의 보폭에 맞추고, 그의 방향을 따라간다.
그가 멈춰 서면 이끌고, 그의 걸음이 느려지면 재촉한다.
이제 우리의 시간은 과거처럼 앞을 향해 흐르지 않는다.
돌고 도는 원형의 시간 안에서, 우리는 매 순간 현재에 발을 내딛는다.
멈춰 서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오늘도, 우리는 걷는다.
현상유지. 그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현재만 사는 것. 치매의 생존법일지도 모른다.
시낭송 대회가 끝났을 시간.
앉아서 천리를 본다더니 요즘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위치추적 앱을 열어본다. 남편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 동네 지도 위에 남편의 워치와 폰이 떠 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다. 우리 동에 있다.
현관을 열어 놨다.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난다.
휘~~~ 익!
남편의 긴 휘파람소리가 들린다.
연애할 때부터 우리만 아는 암호다.
남편 손에 황금색 트로피와 파란색 상장케이스가 들려있다.
우와! 상 탔어?
3년 연속 상 탔네!
남편이 무덤덤하게 들어온다.
3년을 하루같이 남편은 시를 외웠다.
아침마다 맨발로 산길을 걸으며 시를 암송했다.
뇌는 까다롭다.
반복하고 연습하고 도전하더라도 리듬을 타줘야 한다나.
제목과 지은이와 1연까지 외우는데 한달 넘게 걸린다.
요즘은 그마저도 더디고 늦어진다.
남편은 중단하지 않았다.
일상의 습관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지성이 개선될 수 있는지 물었던 스피노자.
그 방법을 남편은 실천하고 있다.
치매 이전부터 읽고 쓰던 습관이 치매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남편의 현 위치.
아직은 내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