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산에서 내려오다 눈길을 끄는 작은 버섯을 보았다.
겹겹이 쌓인 나뭇잎을 뚫고 뽀얗게 올라온 가늘디 가늘고 여린 버섯이다.
이름도 모른다. 식용은 아니겠지 싶다.
그렇다고 검붉은 독버섯처럼 보란 듯이 표독스럽거나 우왁스럽지도 않다.
이름 모를 이 버섯을 보며 알게 되었다.
진흙을 뚫고 피는 건 연꽃만은 아니라는 걸.
내 눈에는 비 내린 축축한 야산에서
겹겹이 누르고 있는 나뭇잎의 무게를
그 작은 머리로 떠밀며 올라온
뽀얗고 여린 버섯의 모습이, 연꽃 못지않았다.
꽃이 따로 없다 싶을 정도로 버섯은 꽃처럼 예뻤다.
약인지 독인지 몰라도, 그 순간 이 노란 버섯 또한
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벌써 2년 전 시월이다.
추석즈음 주민센터는 발표회를 한다. 1년 동안의 취미활동 프로그램의 결실이랄까 축하랄까 그런 행사다.
댄스, 요가, 서예, 시낭송, 드럼.. 등등 그동안 배운 것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시낭송 대표로 남편과 여성회원이 듀엣으로 무대에 올랐다. 둘은 <나자리노> 음악에 맞춰 낭송했다.
그 발표 시가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었다. 그를 계기로 남편은 지금 총무와 단짝이 되었다.
동장인지 센터장인지 주는 상장도 받고, 뽑기도 뽑혀서 미역과 김세트도 받아왔었다.
작년에도 남편이 대표로 나가서 2년 연속 상을 탔다. 상으로 받은 식사교환권은 단짝인 총무한테 전해줬다.
올해는 아직 안 했다. 아마 추석 지나고 시월 말쯤 할 것 같다.
남편이 외울 때 들어보면 모든 시들이 참 절절하다.
남편의 목소리 때문인지 진정성 때문인지 남편이 암송하는 시는 애절함이 묻어있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은 특히나 남편이 마치 그 대나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효근 시인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대나무의 모습을 말해 주고 싶었나 보다.
속이 텅 빈 대나무는 겉모습이라고. 그 안은 다르다고.
텅 빈 속은 칸칸이 어둠으로 채워져 있고,
그 어둠은 공허와 회의로 터질 듯하다고.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대나무.
내가 버섯을 보았듯이 시인은 대나무를 보았나 보다.
내 고생 덜기 위해 결과적으로 남편한테
내가 의리 지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곁을 지킨 건 남편이었다.
남편은 늘 나한테 의리 지켰던 것이다.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어 가면서도,
참새 한 마리의 무게에도 휘청이면서,
과거는 지워져도 현재를 지키려
생의 맨 끄트머리에 꽃을 피우려
칸칸이 들어차는 어둠과 공허의 치매를 견디며, 서 내는 중일 것이다.
남편은 늘 내 곁에서 나를
하늘인양 우러르며,
견디고 서 있었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