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식장

딸아 미안하다, 문정희

by 채송화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무능한 나라의 치욕과 적국을 향한 분노로 소리 지르다 말고!

목젖을 떨며 깊이 울어야 한다! 홍도를 팔고! 심청을 팔고!"



"평양방송 보는 줄!"

남편의 시낭송을 듣다가, 조카가 말했다.


엥? 이게 아닌데. 너무 비장했나?

초반에는 그랬다.

남편이 시낭송교실 가서 처음 받아 온 시.

하필 시도 <딸아 미안하다>

놈들을 향해 꾸짖는 어조가 딱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김정은 찬양하는 북한 아나운서가 낭독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속리산 법주사 앞 스피커에서 들리는 성우 목소리 같다.

부처님 말씀 전하는 성우.

어조는 여전히 비슷한 거 같다.

백구식장(白駒食場) 이라더니, 확실히 3년 만에 망아지가 말이 된 거다.


의미를 잃었지만, 소리를 얻었고, 기억을 잃었지만, 존재의 음성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시낭송을 하며 존재의 재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