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야 쓸 수 있는 시

2학년 어린이 시 '추위'

by 강승숙

영하로 뚝 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겨울 시를 찾기로 했다. 겨울, 하면 할 얘기도 떠오르는 낱말도 많다.


유년시절엔 아무리 추워도 덜덜 떨며 밖에서 놀았다. 놀이를 찾아 미친 듯 헤매던 시절이다. 오빠들은 서툰 솜씨로 썰매를 만들었고 제대로 날지도 못한 채 고꾸라지는 방패연을 만들었다.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조금 날다 떨어지는 방패연을 주워 몇 번이고 다시 날렸다. 볼이 빨개졌고 콧물, 눈물이 났다.


<겨울어 사전>이라는 책이 나왔다. 나도 겨울어를 찾아본다. 내 인생에 들어있는 겨울어들......


고드름, 살얼음, 아궁이, 할머니 이야기, 꿩, 눈사람, 연날리기, 썰매, 양지바른 곳, 군고구마, 찐빵, 연하장, 크리스마스실, 성탄절 칸타타, 새벽송, 눈 치우기, 구세군, 돼지 저금통, 털신, 벙어리장갑, 뜨개질, 난로, 눈, 김장, 연탄, 호떡, 찐빵, 가죽잠바, 얼음, 시래기 처마, 수정과, 양지 툇마루 할아버지들, 무......


<시랑 먼저 놀 거야!>에 실린 '추위'를 필사했다. 2학년 어린이의 겨울어가 들어있는 시다.


필사한 시를 전송하자 순식간에 답글이 온다

제주도 사는 친구다


<답글>

아침부터 제주도는 춥다. 바람이 불고 공기가 찼다.
목도리 하고 털부츠에 장갑까지 무장하고 출근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농원으로 왔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던 기억이 새로웠다. 39년 잘 견뎌낸 자신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추워도, 더워도
출근 시간은 정해졌다. 그러나 오늘은 내 맘대로 움직였다. 왜냐면 나는 자유인!


*퇴임한 지 일 년도 안 되는 내겐 먼저 퇴직한 친구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알 것만 같다. 나도 40년 만에 첨으로 12월이 느긋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친구의 답장이다


<답장>

나 어릴 땐 추운데 썰매 타러 갔던 생각도 나고
울아부지가 언니 오빠 거만 스케이트를 사주셔서 맞지도 않는 걸 양말 서너 개씩 신고 타던 기억도 난다. 추운 줄도 모르고 타다가 손도 얼고 얼굴도 얼고..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행복한 추억이다.

원주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선생님 답장이다


<답장>

오늘 아침은 겨울 맛이 조금 나네요. 춥고 매운 추위까지는 아니지만 콧속까지 차가운 맛이 느껴집니다. 추운 아침 잘 지내고 계시지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 읽고 아침에 아이들과 학교 둘레를 한 바퀴 걸었습니다. 목련 꽃눈을 만져보며 지난겨울 선생님 퇴임 기념 교실을 방문에서 아이들과 목련 꽃눈 관찰한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눈앞에 사물을 관심 있게 보는 힘을 아이들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엉이와 보름달> 그림책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어주고 난 뒤 볼 기회가 없었는데 다시 찾아 읽어봐야 하겠어요. 하얗게 눈이 내린 숲에 보름달이 떠서 훤한데 아빠와 아이가 부엉이를 보러 가는 모습은 현실이 아니라 꿈속 같겠지요?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참 따뜻합니다.


*어린이들과 시를 읽고 아침산책을 했다니 괜히 기분이 좋다. 어린이와 함께한 시간이 문득 그리워진다.


6학년을 담임하고 있는 후배교사의 답장이다


<답장>

선생님. 그새 올 겨울 첫눈이 내렸네요.. 점심시간에는 눈싸움하는 아이들 안전지도 하려고 운동장에 나가서 서있었는데요. 어린이들이 신나게 노는 걸 보니까 '지도'하려는 마음 잠깐 잊고 멍하니 아이들을 보게 되더라고요.
눈 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하는 마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고 말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아기를 낳아 기르며 엄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인의 답장이다


<답장>

일주일 동안 선생님의 시요일을 기다려요. 그리고 일주일 내내 읽어요. 망망대해 홀로 있는 기분일 때가 있는데 시와 선생님의 감상을 읽을 때는 한가로이 배에 누워 있는 기분이에요


*지인은 얼마 전 아기가 아파서 입원을 했다. 아기 열이 내리지 않아 맘고생을 했다. 얼마나 애가 탔을까...... 시를 기다리는 마음, 필사를 하며 읽는 마음, 인생의 망망대해를 느끼는 마음이 아름답고 슬프다.


시를 사랑하고 책을 즐겨 읽는 후배교사의 답장이다 보내준 시를 칠판에 자주 필사하고 어린이와 외우기도 한다. 마음 맞추기가 몹시 어려웠던 어린이들하고 이젠 척하면 쿵, 할정도로 마음이 맞는다고 한다.


<답장>

"선생님, 저 학교 가는 길 처럼 손을 쑥 집어넣고 목도 쏙 집어넣고 어깨도 그렇게 하고 학교에 왔어요. 그러니까 하나도 안 추웠어요."

"저두요, 저두요"

아이들이 교실문을 열면서 그럽니다.


인생은 지루하고 신나고 슬프고 기쁘며 억울하고 아릅답다. 산다는 일은 외로운 시간, 다정한 시간을 지나는 일이다.


시를 보내고 많은 답글을 받는다. 전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던 이들과 시 한 편으로 깊은 교감을 한다. 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목요일 연재
이전 16화저는 가위를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