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위를 내겠습니다

안진영 동시를 필사하다

by 강승숙

11월이다. 날은 추워지고 감기바이러스가 어슬렁거린다. 인사이동으로, 연말 평가서와 서류정리로 해결할 일은 늘어나는데 체력은 바닥나고 인내심은 줄어든다.


지난주엔 마법사탕으로 한 주간을 넘어왔다. 이번 주엔 새로운 주문이 필요하다. 찾았다. 열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시, 안진영 시인의 '어떤 가위바위보'!


시를 필사했다. 짧아서 좋다. 절로 외워진다. 암송 시 목록에 넣어둬야겠다.


시를 쓰면서 두어 달 전 남편과 맨발 걷기 대회에 참가한 일이 생각났다. 우린 맨발 걷기에 익숙한 터라 부담 없이 참가했다.


시에서 하는 행사는 이런저런 기념품, 참가 물품. 경품이 있다. 은근 무얼 줄지 , 어떤 걸 받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체조를 한 뒤 걷기 시작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맨발 걷기에 낯선 참가자는 신발을 다시 신기도 했다. 우린 가볍게 걸었다.


천변을 따라 걷는 일이라 다리를 여러 개 지나야 된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재미를 주려고 주최 측은 미니 공연, 게임 코너를 만들어 놓았다.


첫 번째 다리에서 마술공연을 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공연만 하면 좋을 걸 마지막에 퀴즈 같은 걸 내면서 상품권을 줬다. 상품권 받는 이들을 보자 불안했다. 그게 뭐라고 긴장되고 떨렸다. 남편의 재치 있는 답으로 상품권이 생겼다. 안도가 되었다.


두 번째 다리에 이르니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이번에는 뽑기 코너였다. 기다린 끝에 기회를 얻었는데 이럴 수가, 꽝이다. 한번 더 기회를 얻었다. 운영자와 가위바위보를 하는 거였다. 아, 내가 졌다. 내 앞뒤로 선 여자들은 모두 상품권과 상품을 받았다. 펄쩍펄쩍 뛰고 야단법석이다.


이게 뭐라고, 되게 서운했다. 반환점까지 가서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시 게임코너를 지나는데 패자부활전이 있었다. 이번엔 행운이 올까......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는 실패하고 또다시 운영자와 가위바위보를 하게 되었다. 또 질 거 같아 지레 속상했다. 막 가위바위보를 하려는데 운영자가 재치를 발휘한다.


- 전 가위 냅니다!


세상에, 답을 알려주었다. 마음 졸이며 주먹을 냈고 이겼다. 상품을 받고는 몇 번이나 조아리며 운영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날 듯 기뻤다. 나이고 뭐고 소용없었다. 그저 좋았다. 센스 있는 운영자의 배려에 큰 위로를 받았다. 힘이 나고 흥도 났다. 세상이 갑자기 분홍빛이 된 듯했다.


이 시를 그 게임 코너 운영자에게 전송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이런 가위바위보를 해야겠다.


- 난 가위 낼게, 넌 힘을 내!



시를 전송했다. 여러 사연이 도착했다.


-걷기 대회 운영자께서 복 많이 받겠는데요.

저는 얼마 전에 배 축제에 갔다가 배를 사고 응모권을 넣고 추첨을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사람이 50명 정도고 상품은 30개 정도였는데 저는 꽝이었습니다. 추첨에서 당첨이 된 적이 없어요... 저도 힘을 받고, 기운을 내야 하겠어요.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게 큰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작은 배려, 작은 관심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힘을 줄 수 있잖아요.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에게 힘과 기운을 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가위바위보를 유난히 못해요. 그래서 늘 하기 전에 긴장해요. 나는 못하는 게 왜 이리 많나 하고 씁쓸해했어요.
그런데 어쩜 져주는 것이 상대방을 더 힘나게 한 거라고 이 시를 보며 위안 삼아요.


시 한 편이 속상했던 마음을 토닥거려 준다. 누군가에게 힘을 줘야지, 하는 착한 맘을 먹게 한다.

목요일 연재
이전 15화나의 외톨이왕을 추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