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현 시, 외톨이왕
외톨이왕,
아름답고 슬프고 고귀한 시다.
시인은 외톨이에게 왕이란 칭호를 주었다. 외톨이가 가진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 주었다. 읽을 때마다 아릿하다.
시를 읽으니 지난 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톨이였거나 외톨이를 지켜보았거나 외톨이에게 다가갔던 시간이 여러 겹으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잊히지 않은 오래 전 어린이가 있다. 20년 전에 만난 그 어린이, 6년 내내 외톨이왕이었던 그 어린이는 우리 반이 아닌 옆반 어린이였다.
그 어린이는 투명인간이었다. 외톨이왕은 학급 이 이동할 때면 친구들보다 늘 두어 걸음 뒤떨어져 걸었다. 피구를 할 때면 외톨이가 맞은 공을 아무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괙괙 소리 지르며 그 공이 더럽다는 듯 여자 어린이들은 도망 다녔다.
그렇게 소리 지르던 소녀들은 이제 서른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궁금하다. 자신의 그런 날들을 기억할까, 부끄러워할까, 여전히 그 외톨이가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주제넘게 옆반 어린이를 위해 비운의 흑기사를 자청했다. 외톨이에게 다가가려는 모든 시도를 음흉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을 무심히 여기며 외톨이왕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점심을 먹고 나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었다. 산책도 했다.
-선생님, 그반 여자 얘들이 선생님 더럽대요. 선생님 손 썩었대요. 속상해요.
외톨이왕이 속한 학급의 여자 어린이들 몇은 집요하게 우리 뒤를 쫓으며 수군거렸다. 우리 반 어린이들도 움직였다. 수호자처럼 나와 외톨이왕 주변을 서성이며 호위하고 있었다.
외톨이왕은 나랑 함께 한 석 달간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나 혼자 그림책을 읽었고 나 혼자 이야기했다. 그저 이유 없이 다정한 사람도 세상에 있다는 걸 외톨이왕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 외톨이왕은 내게 쪽지를 주었다.
-선생님이랑 그림책 읽는 거 좋아요. 계속 읽고 싶어요......
그때 흔들렸던 내 마음은 잊지 못한다. 외톨이왕은 내가 준 수첩을 친구들이 가져갈까 봐 늘 손에 쥐고 있기도 했다. 그 수첩은 구깃구깃해졌다. 시간은 흘렀고 외톨이왕은 졸업했다. 중학교 때 오디션을 볼 거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그 후 지금까지 소식을 모른다.
난 외톨이 왕이 분명 자신의 소우주 속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니 정말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그 외톨이왕을 생각하며 화분에 물을 줄 것이다.
시를 필사하며 내내 그때 일을 생각했다.
시 '외톨이왕'은 아침부터 읽기에 조금 어두울 수도 있다. 약간 고민이 되었지만 시를 전송했다.
늘 책을 읽는 후배가 답을 보내왔다.
........
아름답고 슬프고 고귀해서 한 단어도 보탤 수 없어요. 외톨이왕과 언니가 보냈던 석 달의 시간 역시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건 단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단한 삶을 사는 동안 내 손을 잡아 준 단 한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후배는 자신도 한 때 외톨이왕이었다는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때 손을 잡아준 친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친한 벗이 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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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인 우리 어머님은 무릎이 아프니 방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누가 찾아오지 않으면 항상 혼자서. 우리의 미래를 보는듯해서 나는 슬플 때가 종종 있지. 일터에서 돌아온 아들 며느리를 보면 정말 반가워하셔. 옆반 아이가 너를 보며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 외톨이왕으로 사는 노년... 그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도록 연습해야겠다.
교감으로 있는 선생님이 답장을 보냈다.
......
시를 읽으며 예전에 만났던 00이란 아이가 생각났어요. 늘 혼자였고 나랑 밥을 먹었어요.
다 집에 간 방과 후 시간에도 교실에서 오래 있다 갔어요. 그때 그 아이가 혼자 흥얼거린 노래가 생각나요.
<시>
가을 편지
가을엔
나무가
나뭇잎 편지를 쓴다.
바람에 띄워 보낸다.
너도 외롭니?
나랑 같이 놀자.
교내 시 쓰기 대회가 있어 흥얼거리는 걸 받아 적어
냈는데 우수상을 탔어요. 그때만 해도 운동장에서 상을 주었는데 '김 00'을 여러 번 외쳐도 00이도 아이들도 두리번거려요. 내가 00를 툭 치며 나가라 하자 아이들이 모두 놀라던 기억이 났어요. 그냥 나름 통쾌했어요.
00이 어떻게 살까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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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했다. 외톨이왕의 저력을 찾아서 만천하에 보여준 선생님, 외톨이왕의 빛나는 순간을 보고는 눈을 의심하는 친구들이 그려졌다.
나이가 들면서, 한때 친구라 여겼던 이들이 희미해지고 거리가 생긴다. 이젠 스스로 외톨이왕의 왕관을 써본다. 나만의 정원에 물을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