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식 시 ' 마법사탕'
11월, 이제 교사들은 고난도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11월, 12월은 평가로 정신없는 데다 일교차로 인해 걸핏하면 감기에 걸린다. 비축해 놓은 에너지도 점점 떨어져 간다. 게다가 10월부터 불안한 조짐을 보이던 어린이들은 11월이면 '오늘도 무사히'를 기원할 만큼 하루 한 건씩 일을 터트린다.
어린이들 처지도 마찬가지다. 친구들도 거의 친해졌고 해야 할 공부는 어쩐지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선생님도 거의 파악이 된 듯하다. 이제 틈을 좀 만들어 공부 안 하고 넘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든다.
이성 친구를 사귄다고 들떠있는 친구들을 보며 은근 그 대열에 끼어볼까 탐색전도 펼친다. 11월은 이렇게 적응 좀 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원점으로 되돌아 간 듯 풀어지고 흔들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어김없이 학교는 가야하고 꼼짝없이 40분 수업을 견뎌내야 한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 상상의 세계에 다녀오는 일이다. 다행히 어린이와 선생님 모두를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시가 있으니 문현식 시인의 '마법사탕 '이다.
체념한 듯 끝나는 엔딩은 시시해 보이지만 한바탕 상상놀이를 한 뒤라 맥없는 앤딩은 아니다. 약간은 기분이 좋아진 그런 상태가 되어 해야 할 일을 하게 된다. 시를 필사하면서 어릴 때 절박하게 소망하던 사탕이 줄줄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자꾸만 번지곤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지났고 이제는 뭐든 심드렁한 나이가 되었다. 시험 볼 일도 없고 우주여행은 무서워서 싫고 인기라는 것도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퇴임을 했으니 영원히 방학인 것이고 투명인간이라..... 투명인간이그렇게 되고 싶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를 염탐할 열정도 없다.
어지러워서 하늘을 나는 것도 별로다. 큰돈도 이제는 필요 없다. 아, 생각났다. 내게 필요한 것은 밤사탕, 밤에 먹으면 오줌도 안 마렵고 잠이 푹 드는 그런 사탕이 필요하다. 또 눈이 밝아지는 사탕, 그 사탕을 먹고는 돋보기 안 쓰고 책을 읽고 싶다.
시요일 아침, 필사한 시를 전송했다. 잠깐 사이에 답글들이 올라온다.
- 갑자기 행복해졌어요
- 저는 화가 나지 않는 사탕이 있으면 좋겠네요. 요즘 자꾸만 화가 납니다.
- 나이를 먹을수록 꿈이 소박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감기 낫게 하는 사탕, 꿈 안 꾸고 자는 사탕 그런 거 있으면 좋겠어요.
- 하하하하하하, 마법 사탕 가게를 인수하고 싶어요. 얼마일까요?
- 수박사탕 좋아요! 11월. 뭔가 에너지가 바닥나고 지치는 요즘, 오늘 저의 마법 사탕 되어준 시!
- 아프지 않고,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사탕!
마법사탕으로 힘나고 위로받았어요, 행복해졌어요 하는 답글이 많았다. 시 한 편의 울림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잘 고른 듯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후배교사 한 분은 아침시간에 어린이들과 이 시를 감상한 뒤 어린이가 쓴 글을 보내왔다. 어린이들이 소망하는 사탕은 이랬다.
-고든램지 식사 매일 제공
-전교 1등
-물 위를 걷는 발
-용돈 일주일에 10000원
웃음이 났다. 사실 고든램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찾아보니 굉장한 요리사다. 그가 하는 식사를 매일 제공받고 싶다니, 나도 그 사탕을 먹고싶다. 전교 1등, 어린이면 누구나 소망할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1등이 정말 부러웠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이나 어린이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다. 그 과업이 때로는 못 견디게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상상놀이를 해보면 좋겠다.
힘들고 지칠 때면 상상의 마법 사탕을 먹어보는 것이다. 진짜 사탕도 좋지만 사탕이 없을 때는 연극을 하듯 주머니에서 사탕 꺼내는 시늉을 한다. 소망하는 주문을 외면서 먹는다.
이렇게 스스로 힘을 주고 위로를 해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