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벌레의 세계에 접속하다
남편과 마트 가는 길이었다. 5월 연둣빛이 아름다워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함께 걷던 남편은 혼자 마트에 다녀온다며 그동안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남편이 오기까지 30분정도 시간이 있었다. 얼른 화첩을 꺼낼 마음에 가방지퍼를 열었다. 하지만 생각지 않은 일에 난감해졌다. 늘 들고 다니던 화첩이 안 보였다. 혹시나 해서 몇번이나 찾아봤지만 끄적거릴 종이 하나 없었다.
가방 뒤적이기를 멈추고 천변 한쪽에 놓인 쓰레기봉지를 들여다봤다. 종이는 없었다. 아름다운 약사천(춘천)변이지만 그 어디에도 쓸만한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물이나 바위에라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계단을 올라 도로 쪽으로 갔다. 도로변 어딘가에 박스가 있다면 그걸 잘라서 쓸 생각이었다. 그것도 없으면 부근 문구점에 가야하는데 그러다 시간이 다 지날 것이다. 이렇게 30분은 마모되고 있었다.
다행히 길가 가로수 옆에 박스가 있었다. 안도하는 마음에 쓸만한 상자를 찾아 상자 날개 한쪽을 북 찢었다. 찢은 박스 몇조각을 들고 서둘러 다리 밑으로 갔다.
다리 밑에 도착했지만 정신없이 움직여 그런지 마음이 어수선해져서 뭘 찾아 그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차분해지려고 자리에 앉았다. 멍하니 종이를 보고 있는데 작은 벌레 하나가 솔솔 기어왔다. 하려던 일을 다 잊고 벌레 움직임에 집중했다.
한눈에 무당벌레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봐온 무당벌레는 빨강 바탕에 검은 점 무당벌레다. 그런데 내 앞에 기어다니는 벌레는 누르스름한 바탕에 일자 모양 검정 점이 그려있다. 좀 다르다. 하지만 이 정도면 무당벌레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이제 그림 그릴 시간은 없었다. 대신 자투리 시간에 무당벌레 검색을 시작했다.
대번에 벌레의 정체를 찾아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과 달랐다. 몇 번을, 여기저기를 검색해도 내 앞의 벌레와 비슷한 무당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봐도 확인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식물앱 ‘모야모’앱이 떠올랐다. 염치불구하고 식물앱에 벌레 찍은 사진을 올렸다.
답을 기다리며 다시 작은 벌레를 구경했다. 나도 혼자, 벌레도 혼자이다 보니 묘한 유대감이 생기는 듯 했다. 벌레는 조금 가다 멈추더니 제자리에서 더듬이와 앞발을 한참 움직였다. 갈 방향을 가늠하는 거 같기도 했다. 가만히 보니 무당벌레보다는 조금 몸체가 갸름하고 긴 것도 같았다.
벌레 움직임을 보면서 저 작은 벌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무리는 어디에 두고 혼자 여기에 있는지, 어디를 가려고 움직이는지, 방향을 잃은건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이다. 움직임을 지켜보며 영상을 찍었다. 다시 ‘모야모’앱에 들어갔다. 올라온 답은 없었다. 다시 벌레를 보려고 하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은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돌아왔다. 나는 결국 작은 벌레에 대한 별 정보를 얻지 못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찍은 영상을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남편은 모양이 딱정벌레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십구점 무당벌레에서 멈췄다. 내가 본 벌레와 바탕색이 비슷했는데 아쉽게도 몸체가 전부 검은 색 점이 찍혀있었다. 내가 본 벌레는 머리쪽이 검정이었다.
벌레 이름을 찾다가 샛길로 새기도 했다. 별별 이름을 가진, 갖가지 색과 무늬를 가진 이 작은 무당벌레에 심취된 것이다. 무당벌레를 봐온 세월이 수십년인데 무당벌레에 대해 알아본 건 처음이다. 무당벌레 이름들은 수첩에 적어두고 싶을 만큼 이뻤다. 홍점무당벌레, 애기 무당벌레, 베달리아 무당벌레, 열점박이 잎벌레, 큰이십팔점박이 무당벌레, 남생이 무당벌레, 칠성무당벌레....... 한참 이름을 읽고 있는데 무당벌레 영어명이 나온다. 'lady Bug' 라고 써 있다. 무당벌레가 숙녀처럼 차림이 이쁘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불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숙녀가 아닌 무당으로 부른다. 찾아보니 무당이 입는 옷이 화려해서 그렇게 붙였을 거라고 한다. 난 어쩐지 무당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무당이라는 이름은 뭔가 무섭기도 하고 신비롭다. 어릴 때 동네에 무당집이 하나 있었다. 문을 꼭 닫아놓는 집이었다. 몇 번 무당을 본 적이 있는데 늘 무서운 얼굴이었다. 무당집에서 굿을 할 때면 문밖으로 북소리, 쇳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으면 친구들과 우르르 달려가서 대문에 바짝 붙어 벌어진 틈으로 장면을 훔쳐보았다. 화려한 음식과 무당의 복식은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을 주면서도 신비로웠다. 무당이 입고 있는 옷과 춤은 눈을 뗄수 없게 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무당벌레, 하면 어릴 때 그 무당집과 춤추는 무당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그 시절 감정과 겹치어 묘한 신비감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무당벌레는 귀엽게 생긴데다 해충을 잡아먹기까지 하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벌레다. 무당벌레는 여러 문화권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데 유럽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벌레라고 여긴다. 굉장한 표현이다. 부디 내가 발견한 작은 벌레도 꼭 무당벌레가문에 속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결국 검색창과 모야모에서 벌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문득 이 벌레가 무당벌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생각 끝에 곤충밴드에 가입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곤충이라는 낱말을 치고 검색을 하니 ‘곤충이야기’라는 밴드가 나온다. 주저없이 가입했다. 급히 사정을 쓰고 내가 만난 벌레 사진을 올렸다.
세 시간 뒤 답이 올라왔다. 아, 무당벌레가 아니었다. 버들잎벌레였다. 딱정벌레목, 잎벌레과다. 정보를 찾아들어갈수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버드나무와 포플러류의 잎을 식해한다고 써 있다.
다리 밑에서 만난 벌레는 해충이었다. 지식백과에는 버들잎벌레 성충과 유충이 묘목이나 어린나무에 큰 피해를 입힌다고 적혀있었다. 반나절 애쓴 끝에 찾아낸 벌레 이름이 버들잎벌레여서 뭔가 낭만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해충이다.
얼마전 알게 된, 소리쟁이만 집요하게 먹는 ‘진남색좀벌레’는 해충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면 버들잎벌레도 해충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내가 만난 그 벌레가 해충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버들잎벌레는 약사천(춘천) 부근에 포플러가 없으니 아마도 버드나무 잎을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다음에는 천변을 따라 가며 버드나무잎에 버들잎벌레가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만약 내가 만난 그 벌레를 다시 만나게 되면 드디어 네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덕분에 곤충밴드에도 가입하고
곤충 세계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고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