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처럼 청소를 하고 간 어린이
현욱이는 등교하면 교실 한 켠 책장으로 간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그림책 <안돼, 데이빗!>을 꺼내 제자리로 돌아온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처음 펼치듯 <안돼, 데이빗!>을 읽는다. 두 달이 넘도록 그러고 있다. 읽고 나면 맡아놓은 책인 양 책상 한쪽에 턱 하니 둔다. <안돼, 데이빗!>이 수호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종일 끼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은 현욱이가 보는 책을 건드리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현욱이 책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시비에 말리지 싶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
가끔 책임감이 발동한다. 고루 책을 읽혀야 하는데 내내 같은 책만 보고 있으니 애가 타는 것이다. 보름이나 한 달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저학년도 아닌 4학년이 두 달 넘도록 <안돼 데이빗>을 읽는다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도록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혀왔지만 한 달 넘게 한 가지 책만 보는 일은 없었다. 지도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에 참지 못하고 현욱이 옆으로 다가간다. 다정하게 <세 강도>를 내밀며 속삭인다.
- 현욱아, 어제 선생님이 읽어준 <세강도>도 재미있지 않았니? 이 책 한번 더 볼래?
-아니요, 그 책도 재미있지만 저는 이 책이 더 좋아요.
전 날 <세강도>를 읽어줄 때 현욱이는 꽤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질문도 하고 대답도 했다. 그러면 다음 날은 그 책을 볼만도 한데 여지없었다. 오로지 <안돼, 데이빗!>뿐이었다. 현욱이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미안한 듯 엷은 웃음을 띠고는 다시 <안돼, 데이빗!>에 몰두했다. 그 뒤로도 종종 다른 그림책을 현욱이에게 내밀어 보았다. 현욱이는 번번이 거절했다.
내 취향이 아닌 <안돼, 데이빗!>이 교실에 들어온 건 사연이 있다. 어떤 모임에 갔을 때다. 어린이 책에 조예가 깊은 S 씨가 <안돼, 데이빗!>이야기를 꺼냈다. 조카가 그 책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했다. 책을 본 적이 없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S씨는 그 책이 남자 어린이들한테 핫한 책이라고 덧붙였다. 책 속에는 어른들이 도저히 좋아하기 힘든 캐릭터가 등장한다며 농담 어린 투로 말했다. 그 책이 끌리진 않지만 어린이들은 무지 좋아한다고 했다.
호기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았다. 예상한 대로였다. 표지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악동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종종 어린이들이 요청하는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안돼 데이빗>은 읽어주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재미있어한다는 그 책을 학급문고 신청 목록에서 뺄 수는 없었다. 책에 대한 궁금증도 은근 있었다. 책이 도착하자 <안돼, 데이빗!>부터 찾아 읽었다. 역시였다. 아무리 보아도 주인공 캐릭터는 호감을 갖기 힘들었다. '데이빗 섀논'은 주인공을 꼭 이렇게 그려야만 했을까. 현실에서도 악동들에게 시달리는데 그림책에서 까지 그런 어린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작가는 교사도 어른도 아닌 어린이를 위해 만든 책이니 이런 불만은 애초에 소용이 없었다.
날마다 <안돼, 데이빗!>을 읽는 현욱이는 친구들과 떨어져서 섬, 독도처럼 혼자 앉아 있다. 물론 부모님의 동의를 얻은 뒤다.
-잘됐어요. 저도 혼자가 좋아요!
아무도 현욱이하고 짝을 하려 들지 않아서 따로 앉히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날 현욱이가 한 말이다. 너무 당당했다. 조금도 기죽지 않으니 자리를 옮기는 내 체면이 영 서지 않았다. 아무튼 현욱이가 섬으로 이주하면서 교실은 한동안 평온을 되찾았다.
현욱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글씨도 반듯하게 쓰고 예술적 감각이 있어서 만들기도 잘한다. 학습활동도 괜찮게 한다. 문제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잘 지내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크게 소리치고 싸우는 건 아니지만 현욱이는 온몸에 가시 돋친 듯 뭐 하나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짝 공책이 제 책상 쪽으로 조금만 넘어오면 기분 나쁘게 툭 밀쳐낸다. 조금만 닿아도 짜증을 낸다. 그냥 고슴도치다.
짝이나 모둠끼리 활동할 때면 이것도 싫다, 저것도 아니다 하면서 모두를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다른 모둠은 의논을 마치고 노는데 현욱이네 모둠은 반대만 일삼는 현욱이 때문에 난항을 겪는다. 다른 모둠은 시간 내에 과제를 완성하고 성과를 내지만 현욱이가 속한 모둠은 시비에 휘말려 나까지 달려가 말리고 조정하다 끝난다. 현욱이만 빠지고 나머지 친구만 발표하는 날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현욱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짝을 한번 하면 이틀이 채 못 되어 케이오된다. 제법 이해심이 있는 친구도 현욱이 옆에서 일주일을 ㄱ버티지 못한다. 모두 지쳐서, 울먹이면서, 도저히 현욱이와 짝을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 나 역시 여기저기 다니며 현욱이 짝을 구걸하다 지쳤다. 이렇게 지난한 여정 끝에 현욱이는 혼자 앉게 된 것이다.
-저도 문제인 거 알아요.....
현욱이는 자신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뿐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더 이상 혼자 둘 수 없어서 현욱이를 원래 자리로 들여보냈다. 별 소득 없이 현욱이는 제자리로 갔다. 그 뒤로도 현욱이는 <안돼, 데이빗!>만 읽었고 비슷한 문제를 반복하다 학년을 마쳤다.
겨울 방학이 지나 새 학기가 되었다. 2학년을 맡게 되었다. 새로 맡은 반에도 유명한 어린이가 있다고 들었다. 듣던 대로 실력자였다. 첫날부터 그 어린이와 씨름하느라 기진맥진했다.
수업을 마치자 모두 보냈다. 원래는 재미있게 청소놀이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만두었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체력이 방전되어 좀처럼 충전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5학년에 갓 올라간 현욱이가 스윽 문을 열고는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꿈인가 싶었다. 늘 그랬던 거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현욱이를 보고 나도 자연스레 답했다.
-오, 선생님 도와주려고! 마침 잘 됐다. 일이 많은데 청소 좀 도와줄래!
너무 힘든 상태여서 현욱이가 우렁각시로 보였다. 현욱이는 의자부터 책상 위로 올렸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하게 하나하나 다 올렸다. 이어 비질을 했다. 거기까지 하고 의자를 내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마포걸레를 빨아오더니 걸레질을 한다. 느리고 꼼꼼하게 한다. 힐끗힐끗 보았는데 예사 솜씨가 아니다. 청소 장인이나 된 듯 솜씨 있게, 즐기듯이 청소를 했다.
-교실 다 했는데 이제 복도하고 올게요.
-복도는 안 해도 되는데....
현욱이는 바람처럼 빠르게 복도로 나갔다. 나는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난지도 몰랐다. 30분쯤, 어쩌면 그 이상 지났을지도 모른다. 문득 현욱이가 왜 안 들어오는지 궁금해서 복도로 나가보았다.
놀라웠다. 현욱이는 우리 교실 복도뿐 아니라 다른 반 복도까지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신바람이 나서 마포를 밀고 있었다. 복도가 길어 힘들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청소를 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현욱이는 교실로 들어왔다.
-저 이제 갈게요. 내일 또 올게요.
-그래, 현욱이 덕분에 선생님이 일을 빨리 끝냈어.
다음 날, 현욱이는 다시 왔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묵묵히 청소를 했다. 교실과 학년 복도 전체를 쓸고 닦았다.
삼일 째 되는 날, 청소를 다 마친 현욱이가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저 오늘까지만 할게요. 내일부터는 안 와요.
-어, 그래. 할 일도 많을 텐데 삼 일씩이나 와줘서 고마워. 가끔 놀러 와!
-네.
돌아서는 현욱이에게 과자와 사탕을 쥐어주다가 문득 <안돼, 데이빗!>생각이 났다.
-현욱아, <안돼, 데이빗!> 읽었던 거 생각나지?
현욱이는 쑥스러운 듯 웃기만 했다. 이제 컸는데 동생들이나 보는 그 책 얘기를 하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런 현욱이에게 <안돼, 데이빗!>을 왜 그렇게 날마다, 석 달씩이나 보았냐고 묻기가 뭐 했다. 물어도 답해 줄 거 같지 않았다. 현욱이는 뭔가 어색한지 가려고 했다. 다급해진 나는 뭐라도 물어야 했다. 그때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저기 현욱아, 데이빗하고 너하고 누가 더 장난꾸러기 같아?
-아이 선생님도.....
잠시 현욱이는 생각하는 듯 했다
- ...... 그야 데이빗이죠!
나는 현욱이가 제가 심하죠, 라고 말할 줄 알았다. 답을 마친 현욱이는 미끄러지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뒷모습을 보면서 현욱이가 <안돼 데이빗>을 그렇게 끌어안고 읽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일만 저지르는 데이빗은 종일 안돼,라는 말만 듣고 살았다. 현욱이는 그 데이빗을 보면서 심하네 심해, 하고 말했을까.
현욱이는 자신도 장난꾸러기지만 데이빗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현욱이는 어떤 장면을 가장 좋아했을까, 물어보지 못해 아쉽다. 짐작컨데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장면은 현욱이에게 희망의 전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데이빗에게 반전이었다. 종일 혼나던 데이빗이 엄마가 나를 싫어할지도 몰라, 하고 생각할 즈음 엄마가 부른다. 꼭 안아주려고 데이빗을 부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에게 가장 행복한 장면이다. 엄마도 데이빗을 야단만 쳐서 미안했을 것이고 데이빗도 장난만 해서 미안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들이 만나 사랑이 되었다.
묻지 않았지만 현욱이는 마지막 장면을 날마다 보면서 위로받았을 것이다. 자기보다 심한 장난꾸러기 데이빗도 엄마 품에 안기는데 자신은 훨씬 더 엄마 품에 안길 자격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도 엄마처럼 자신을 얼마든지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현욱이는 어떤 마음으로 찾아왔을까. 어떻게 삼일씩이나 혼자 청소할 생각을 했을까. <안돼 데이빗>을 오래도록 볼 수 있게 놔두어서 좋았을지도 모른다. 짝을 구하려고 전전긍긍 애쓴 일이 고마웠을지도 모른다.
현욱이는 청소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했을 것이다. 그 뒤로도 현욱이는 잊혀질만 하면 나를 찾아왔다. 열린 창문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십여 년 전 제자 현욱이의 삼 일간의 청소, 아니 사랑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