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외로운 친구가 있었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식에 대해

by 강승숙

학교폭력 예방주간 기간이었다. 어린이들은 ' 어떻게 하면 학교 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를 주제로 글을 썼다.


-대단하고 큰 사건이 아니어도 좋아. 나한테 또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쓰면 된단다.


가까이에서 겪은 일을 쓸 때 글을 읽는 사람이 더 크게 공감하고 실감을 느낀다고 했다. 무얼 쓸지 머뭇거리던 어린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글쓰기에 집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슬슬 지나다니며 어린이들이 쓴 글을 슬몃슬몃 보았다. 어느새 한 장 가득 채운 종이에는 저마다 겪은 절실한 사연들이 쓰여 있었다.


시호(가명) 자리를 지날 쯤이었다. 고통, 괴로워서 같은 낱말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갔다.


- 좀 읽어도 될까?


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에는 친구 관계로 몹시 힘들었던 4학년 때 이야기가 쓰여있었다. 4학년 때 시호 담임이었던 나로서는 어느 정도는 시호 사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의 고민이 5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토록 시호를 힘들게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시호는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충격이 자못 컸다는 걸 어머니와 상담으로 알았다. 어머니는 시호를 걱정했지만 시호는 도리어 어머니를 걱정했다. 시호 엄마는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시호는 엄마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엄마의 한숨과 눈물, 슬픔과 불면증을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 징후들은 시호 마음에 불안을 키운 듯했다.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어느 날 자기를 떠날까 봐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시호가 보이는 걱정스러운 증상을 종종 어머니께 알리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시호는 글을 쓰면 처음 글자 크기와 나중 글자 크기가 아주 달랐다. 도레미파, 음이 변화하듯 글자 크기는 자꾸 변했다. 첫 15포인트로 시작한 문장의 첫 글자는 문장이 끝날즈음 7포인트나 8포인트 크기로 줄어들었다. 어떤 글자는 점처럼 작아져서 암호처럼 찍혀있곤 했다. 문장은 수평이 아니라 대각선을 이루며 흘러가기도 했다. 공책은 뒤죽박죽 암호문처럼 되어갔다.


-시호야, 선생님이 시호 글 읽고 싶은데 너무 글자가 작네.

-앗, 죄송해요. 다시 쓸게요......


시호는 굉장히 미안해했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는 식이다. 정말 그런 거 같았다. 나는 고쳐주려고 애썼지만, 시호도 애를 쓰는 듯했지만 습관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4학년을 지나 5학년을 마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중에는 꽤 좋아지긴 했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글을 쓸 때만 글자 크기가 오락가락한 건 아니었다. 말을 할 때에도 이와 비슷했다. 마음속에 할 말이 가득한지 시호는 공부시간에도 자주 손을 들어 발표를 했다. 하지만 발표를 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시작할 때 말소리가 조금 들리고 뒤로 가면 우물거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도 답답할 때가 있었다. 친구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시호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을 계속 들었다.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거 같기도 했다.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종종 애절한 눈빛으로 손을 드는 시호는 발표할 기회를 얻으면 역시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답답한 분위기를 만들곤 했다.

친구들은 눈치가 조금 없는 시호의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호가 또래보다 어려 보였을 수도 있다. 시호는 아빠의 부재로 인해 하루아침에 달라진 일상에 대해 누군가에게 계속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얘기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이클 로젠 글, 퀜틴 불레이크 그림의 <내가 가장 슬플 때>라는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은 사랑하는 아들은 잃은 남자가 하루아침에 달라진, 사랑하는 아들이 없는 상황을, 너무도 힘든 나날을 견디느라 애쓰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서......'


친구들은 아빠가 다 있는데 시호 아빠는 있다가 없어졌다. 그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는 날마다 현실로 다가와 시호 마음을 어지럽혔을 것이다. 다행히 시호는 나를 잘 따랐고 종종 아빠 꿈을 꾸었다거나 무서운 꿈 꾼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시호를 생각하려고 애썼다. 시호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려고 했다. 한 번쯤, 어떤 방식으로 시호가 실컷 자기 얘기를 하고 친구들도 시호를 더 이해할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로 문제를 다루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조심스러웠다.


그림책 <내가 가장 슬플 때>나 <무릎딱지> 같은 그림책을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죽음이에요 > 같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 자신이 뭔가 준비가 되지 않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뜻밖의 학교 행사로 글쓰기를 하면서 시호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시호의 글을 읽은 뒤 내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시호를 불렀다. 친구들은 아직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호에게 물었다. 쓴 글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면 어떻겠느냐고, 힘들게 지내는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반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호가 쓴 글은 속으로는 힘들면서도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 여러 친구들에게도 힘이 될 거라고도 했다. 잠시 고민하던 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시간 연구실에 가서 시호가 쓴 글을 복사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시호 글을 나누어주면서 다 같이 읽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시호 글을 읽는 시간, 교실은 갈수록 차분해졌다. 시호 글에는 고통, 무시, 춥고 괴로워서, 눈물 같은 낱말이 나오고 ‘다음 생에는 동물로 환생할까’ 같은 문장도 나왔다.


어느 순간 우진(가명)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게 보였다. 장난기 많은 00 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걸 보는데 갑자기 나도 눈물도 나왔다. 눈물은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었다. 눈시울을 붉히거나 우는 어린이는 자꾸 늘었다. 눈물을 흘리는 친구에게 휴지를 갖다 주는 어린이, 울지 말라고 달래는 어린이로 교실은 한동안 어수선했다. 시호는 연신 괜찮다고 했다.


나도 어린이들도 차즘 진정이 되어갔다. 우린 시호를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모둠씩 시호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힘내라고 하는 어린이, 미안한 얼굴로 시호를 꼭 끌어안는 어린이,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눈물 속에서 마지막 6교시를 마쳤다. 재희는 뒷문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시호를 안아주었다.


그날 시호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교실에서 시호 글을 반 친구들이 읽고 위로해 준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어머니께 주말신문 '선생님 이야기' 꼭지에 시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부모님은 주말 꽃씨 신문을 읽고 깊이 공감해 주시거나 응원해 주셨다. 시호 어머니도 답글을 써주셨다.


▪하루는 재희(가명)가 울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날이 아마도 시호 얘기를 들은 날인 거 같습니다. 저 역시 눈물이 나더군요. 괜찮다고 한 시호가 대견하고 기특했습니다. 친구들이 서로서로 위로하고 안아주는 순수한 마음이 변치 않고 쭉 갈 거라 생각합니다. (재희 어머니)

▪시호가 겪은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준 용기, 그리고 그걸 잘 받아준 민서 반 친구들 너무 고맙네요. 삭막할 줄 알았는데 아직 우리 아이들은 순수하게 이쁜 거 같네요. (시호 어머니)

▪지연(가명)이가 시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며 마음 아팠습니다. 저도 마음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시호가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고 씩씩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지연 어머니)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미안하다고 말한 까닭, 꼭 안아준 까닭은 그렇게 큰 아픔을 가진 친구들, 외롭고 슬픈 친구를 돌아보지 못해 온 데 대한 자책감이었을 것이다. 놀리거나 놀이에 잘 끼워주지 않았던 일도 기억났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악의 없이, 귀찮아서 한 일이 한 친구에게 그토록 큰 슬픔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시호를 모두 위로해 주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호의 진심 어린 글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의 따뜻한 마음이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호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그 따뜻한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많이 발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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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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