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의 나를 기록하다
아침 두 문장, 핵심어 쓰기를 날마다 하면서 어린이들은 글쓰기 근육을 꾸준하게 키워왔다. 드디어 5월, 긴 글쓰기에 도전한다. 이미 국어시간에 설명글에 대해 배웠다. 설명글을 쓰는 방법에는 열거와 대조, 대비 방식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익힌 것이다.
이젠 실제로 써봐야 한다. 운전 영상을 아무리 본다 해도 운전을 할 수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예시문을 읽고 공부했다면 한번 써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이해를 하게 된다.
설명문의 글감은 '나'다. 이를 글감으로 고른 까닭이 있다. 어린이들이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기회를 갖기 바라 서다. 그간 50m 단거리를 뛰듯 쉼 없이 짧은 글을 써 왔다. 드디어 긴 호흡을 가지고 글을 쓴다.
-이제 여러 시간에 걸쳐 긴 글쓰기에 도전합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 각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시간입니다
첫 문단은 출생 이야기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말까지 써가며 기억의 조각을 찾게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이는 주말을 이용해서 부모님께 잘 듣고 오라고 했다. 예은이는 기억나지 않는 일을 어머니께 여쭙고 그 내용을 받아쓰면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부모님이 자신을 기르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분명 부모님은 출생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녀가 소중한 존재임을 강조했을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태어난 연도와 시간, 장소가 생각나지 않아 끙끙대는 어린이가 있었다.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생각나지 않는 부분은 괄호를 하고 부모님께 들은 뒤 보충하기로 했다.
첫 시간에 어린이들이 쓴 글을 읽었다. 자꾸 웃음이 비져나왔다. 짜장면 집에서 부모님이 만난 이야기부터 아빠가 졸라서 엄마랑 결혼했다는 이야기까지 솔직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부모님께 들을 일도, 글로 쓸 일도 거의 없는 귀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1 문단: 나의 출생
<글 1>
나는 춘천에서 태어나 전학 또는 인사 없이 오로지 춘천에서만 살았다. 엄마는 서울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춘천으로 전학을 왔다. 그 덕분에 엄마가 4학년이 되던 해에 6학년인 아빠를 처음 만났다. 엄마와 아빠는 중고등학생 때 떨어져 있다가 대학교 때 다시 만나 약 3년 정도 연애를 한 끝에 결혼을 했다. 엄마는 24살 때, 아빠는 26살인 2009년에 나를 가졌다. 그리고 약 10개월 뒤에 내가 태어났다. 원래는 3월 20일쯤에 태어나야 하는데 도무지 태어나지 않아 4월 1일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뱃속에 있는 나는 수술이 무서웠는지 3월 31일 00대 병원에서 드디어 태어났다. 돌잔치에서는 마우스를 잡았다고 했다.
<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디냐면 제일병원이다. 엄마가 분만을 10시간 가까이 하셨는데 아침 8시 45분에 태어났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춘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고양에서 이모, 이모부가 오셨다. 나는 다섯 살 때 돌밭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을 다섯 번이나 해서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고 다리와 손바닥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다음엔 기억이 안 난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자 신생아실에서 나를 봤는데 할머니는 그게 나인지 모르고 음, 저렇게 못생긴 얘가 있나 했는데 그게 나였다고 한다. 근데 클수록 얼굴이 하얘져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1학년 때 전봇대에 부딪쳐서 정신을 읽은 적이 있다. 일어나 보니 기억이 없었다.
출생에 대한 글은 주말 신문에 실렸다. 월요일에 어린이들이 가져온 답글에는 출생에 대한 글을 읽은 소감이 많았다. 부모님도 자녀 외 12살 친구들의 출생 이야기를 읽으면서 큰 재미를 느끼시는 듯했다.
-선생님 이야기를 읽으면서 ‘긴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에서 뭔가 엄청난 일에 도전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박준*)
-긴 글쓰기가 좀 재미있어진 거 같고 5학년 1반이 되면서 글씨체도 좋아진 거 같다. 김민* 글이 마음에 든다. 할머니가 못생겼다고 한 아기가 민*라는 게 웃겨서다. (이태*)
-'열두 살 나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진진합니다. 꽃씨신문 12호, 13호가 발행되길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네요. 솔직 담백한 아이들의 표현이 하나같이 사랑스러워서 글을 읽는 내내 웃음 지었습니다. 꽃씨반 친구들의 긴 글쓰기 도전! 정말 대답하고 멋집니다. (김* 어머니)
출생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시작점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어지는 국어시간에는 두 번째 문단을 썼다. 2 문단은 자신의 몸, 그러니까 외모와 체력 등에 대해 썼다. 이 부분에서 그간 몰랐던 어린이들의 고민이나 특징을 새롭게 발견했다. 평발이어서 힘든 어린이도 있었고 땀을 너무 흘려서 불편한 어린이도 있었다.
나도 어린 시절, 너무 말라서 젓가락 같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젓가락이라는 말이 듣기에 거북했다. 괜히 부끄럽고 속상했다. 코가 큰 것도 고민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피노키오처럼 코가 점점 커지는 상상을 하면서 겁에 질리기도 했다.
2 문단:나의 몸
<글 1>
나는 어릴 때부터 저체중이라서 허약했다. 그래서 금방 지치고 매일 피곤하다. 그리고 나는 머리숱이 별로 없다. 나는 얼굴이 작고 손목도 되게 얇다. 그래서 애들이 종종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마른 게 싫다. 왜냐하면 질병에도 약하고 자주 체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또 난 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시원한 걸 좋아한다. 나는 눈도 작다. 하지만 안경을 써서 좀 크게 보인다. 나는 화를 잘 낸다. 그래서 쌍둥이 자매 효*와 잘 싸운다. 또 나의 성격은 좀 급한 성격이 있고 차분한 성격도 있다. 어떤 날은 여유롭고 어떤 날은 급하다는 말이다. 또 난 새로운 걸 도전하는 스타일이다. 왜 도전하는 걸 좋아하냐면 새로운 걸 도전을 많이 하면 경험이 많아지고 용기가 생긴다. 나는 또 활동적인 성격이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냥 내 성격이다. 그래서 과목 중에서 체육을 가장 좋아한다.
<글 2>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키가 크다. 한 155cm다. 최근 키다. 우리 반에서 남자 얘들 몇 명 빼면 내가 제일 크다. 그리고 나는 체격이 좋다. 근데 체력이 별로다. 특히 달리기가 부족하다. 내 눈엔 쌍꺼풀이 있다 코는 비교적 낮다. 입술은 작다. 얼굴형이 길쭉하다. 옛날에는 얼굴이 둥글했다. 눈은 쌍꺼풀이 없었다. 코는 살짝 높고 이목구비가 지금은 진하다. 눈이 안 좋아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안경을 끼면 눈이 커진다.
<글 3>
나의 생김새는 일단 눈이 크다. 쌍꺼풀도 있으며 진한 쌍꺼풀이라고 많이 들었다. 그리고 코가 조금 낮은 편이다. 난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큰 편이다. 키도 좀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며 뱃살도 많다. 나의 음식 취향은 양식과 한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시 몸으로 돌아와서 난 눈동자가 살짝 갈색이다. 그리고 춥게 자는 걸 좋아하며 침대에 누웠을 때 바로 잠들지 않는다. 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고, 춥게 자는 걸 좋아한다. 이불을 안 덮고 자거나 창문을 열고 자는 걸 좋아한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한테 혼났다. 엄마 내가 더위를 많이 타는 걸 알면서 자꾸 두껍게 입으라고 한다.
3 문단은 성격이나 내면에 대해 썼다. 좀 막막해하는 어린이들이 있어서 성격을 나타내는 낱말을 화면에 띄워주었다. 훑어본 뒤 자신의 장점을 나타내는 성격을 두 개 이상 고르게 했다. 그런 뒤 하나씩 예를 들어 썼다.
예시를 보고도 여전히 장점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심지어는 없다고 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그런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장점을 찾아주었다. 부족하거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성격은 문단 끝부분에 조금만 쓰라고 했다. 장점을 많이 찾아보라는 뜻에서였다.
-덜렁대는 게 단점이에요?
단점일 수도 있지만 장점도 된다고 했다. 덜렁대는 사람은 꼼꼼한 사람보다 사람들에게 편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성격을 쓴 문단을 보면서 어린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3 문단: 성격
<글 1>
나는 리더십과 끈기가 있고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을 잘 이끌고 전체적으로 많이 도와줘서 리더십이 있는 거 같다. 과제를 못하는 친구가 있어서 내가 도와준 적이 있다. 나는 한번 도전한 것은 끝까지 한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한다. 친구들은 다 하는데 내가 옆 돌기를 못한 적이 있다. 속상해가지고 이틀 넘게 한 번도 빠짐없이 연습해서 결국 됐다. 또 나는 좀 용감하다. 뱀, 도마뱀, 곰 이런 동물들을 좋아한다. 친구들이 무서워서 못하는 걸 웬만하면 내가 먼저 한다. 그래서 용감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단점은 내가 승부욕이 너무 많고 덜렁거린다는 점이다. 승부욕이 진짜 나만큼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체육시간만 되면 나는 꼭 이겨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잘 안 되면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울고 그 정도로 승부욕이 많다. 저번에 문구점에 가서 사탕 세 개를 샀는데 돈만 내고 지갑이랑 사탕을 두고 가서 다시 간 적이 있다. 등교를 할 때 설레는 마음으로 챙겨야 될 것을 다 챙겨놓고는 가방을 집에 두고 온 적이 있다. 때론 학교에다 가방을 두고 집에 온 적도 많다. 이렇게 덜렁거린다.
<글 2>
나는 원래 화를 잘 내지 않았는데 사춘기가 되고 4학년부터 스트레스나 화가 많아졌다. 엄마 말로는 가족을 잘 도와주고 동생과 놀아준다며 착한 편이라 하는데 사춘기라 그런지 내가 착한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빠를 닮아 유리 멘탈이다. 아빠는 날 강한 마음으로 키우려고 하지만 유전의 힘은 어쩔 수 없다. 나는 가정에선 장난기가 많고 밝지만 3학년 때 놀림받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학교에선 더 소심해졌다. 당장 일을 기억하기보단 5,6년 전 일을 더 잘 기억한다. 나는 목소리가 작고 성격이 급하다. 단 조용하다. 나는 동생이 말을 안 들을 때 화를 많이 냈다가 사춘기에 본능이 꺼지면 동생을 달래준다. 나는 걱정이 많다.
마지막 문단인 4 문단은 취미와 특기, 소망 등에 대해 쓰기로 했다. 꿈이나 소망은 한 달 만에 이루고 싶은 것도 있고 일 년 또는 몇 년 뒤에 이루고 싶은 것도 있다고 했다. 4 문단 쓴 글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할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에 대해 쓸 때에는 그 취미를 갖게 된 사연, 어떻게 그 일을 즐기며 더 잘하기 위해 애쓰는지, 그 일을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하고 싶은지 쓰라고 했다. 여전히 생각이 많은 어린이도 있고 생각이 쏟아지는지 집중해서 쓰는 어린이도 있었다.
4 문단을 읽으면서 동화를 쓴다면 등장시키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났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데 물고기 일곱 마리밖에 키워 본 적이 없다는 예*이는 얼마 전 어린이들에게 읽어준 동화 <금붕어> 속 주인공을 떠오르게 했다. 춤이 좋아서 숙제할 때도 춤을 춘다는 예*이, 그림을 그려 코팅을 하거나 종이 인형을 만드는 *이, 상황극을 즐기는 태*이, 앱에 소설을 쓰는 예*이, 수학문제를 계산하면 머리가 풀린다는 준*...... 이 글을 쓰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할 만큼 어린이들은 하나하나 자신만의 풍부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4 문단:취미와 특기, 소망
<글 1>
나는 가족과 여행을 꿈꾸고 있다. 가족과 여행은 즐겁고 좋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면 외롭지 않고 즐겁다. 그래서 여행하면 가족과 꼭 함께 하면 좋다. 가족과 여행할 때, 여행하기 전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야 한다. 호텔 같은 곳도 미리 예약해 놔야 된다. 어디로 여행 갈지 정하는 등 한다. 여행하기 전에는 너무 기대되고, 설렌다. 그래서 좋다. 또 가족과 쇼핑하고, 밥 먹고, 펜션 같은 곳에서 노는 것이 너무 좋다. 가족과 여행도 꿈꾸지만 친구와 노는 것도 꿈꾸고 있다. 친구 집에 가서 보드게임 하고, 휴대폰 게임 하고, 숨바꼭질 등을 하면 너무 즐겁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친구와 함께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꿈은 다양하다. 나의 성격, 꿈 등 다양한 것이 있다. 나의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무엇이 더 있을까?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은 축구이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매일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많이 했다. 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 그런데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건 피아노다. 피아노는 내가 좋아하는 명탐정 코난 OST노래들을 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명탐정 코난 OST노래를 피아노로 많이 친다.
<글 2>
나의 취미는 메카드볼 장난감 갖고 놀기와 레고조립이다. 메카드볼은 동생과 함께 모으고 있다. 다 모으면 진짜 재밌는 걸 하기 위해서다. 그 재밌는 건 아주 멋진 상황극을 하는 거다. 남들 은 좀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재미있다. 만화스토리가 정말 재미있어서 매주 챙겨본다. 캐릭터의 기술도 외우면서 인터넷으로도 장난감을 검색해 본다. 다음으로 레고는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만든다. 상상력으로 주로 만들고 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진 않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과는 다르다. 어떨 때는 메카드볼과 함께 사용해서 상황극을 한다. 하지만 장난감 정리를 하지 않아 엄마한테 맨날 혼난다.
어린이들이 쓴 글은 세 차례에 나누어 주말신문에 고루 실었다. 후기를 보니 글을 쓰면서 스스로 놀란 어린이들이 꽤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길게 글을 쓴 적은 처음이라는 어린이도 여럿이었다. 부모님도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해서 자녀가 쓴 글을 보고는 보람을 느낀 듯했다.
예*이가 엄마 아빠의 연애 이야기와 출생 이야기 등을 자세히 물어보았는데 아주 멋진 글로 탄생된 걸 보니 너무 귀엽고 뿌듯하네요! 다른 꽃씨 친구들 이야기도 잘 봤습니다. 꽃씨반 친구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고 느꼈습니다.(유예* 어머니)
네 시간에 걸쳐 쓴 나의 12살 이야기, 어린이 마음속에 숨어있던 씨앗 하나가 꽃을 피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