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노래

동요, 화음, 어디서나 부르기

by 강승숙

학교에 피아노가 없던 시절이었다. 군내 합창대회를 앞두고 우리는 토요일 오전 작은 교회에 모였다. 열댓 명의 어린이들은 모두 파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지휘자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경쾌하게 몸을 움직이며 노래를 불렀다. 대회를 앞둔 마지막 연습이었다.


초록빛 바다 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다 물에 두 발을 담그면

내가 맡은 파트는 알토였다. 노래를 시작하면 저마다 다른 음색을 가진 친구들의 목소리가 모여 화음을 이루었다. 덜 익은 듯하면서도 풋풋한 음색은 어린 마음에도 아름답게 들렸다. 화음을 넣어 노래를 부를 때면 내 마음도, 노래도 둥글어지는 듯했다. 합창대회에서 상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하면서 노래를 익힌 덕분에 언제까지나 즐겨 부를 동요를 온전히 갖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노래는 늘 가까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화음을 넣어 찬송가를 불렀다.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때면 안정감을 느끼면서 행복해졌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40여분 거리였다. 그 길을 오가면서도 자주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곤 했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스타도라 스타도라 스타도라 품바 스타도라 붐바 스타도라 품바

스타도라 스타도라 스타도라 품바스타도라 품바 품품품!


이 노래를 부르던 친구는 지금 저 멀리 미국, 뉴저지주에 산다. 그 친구랑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흔들며 발을 맞추어 걸으면서 아름다운 서양의 목장을 떠올렸을 것이다. 언젠가 만날 고운 님도 생각했을지 모른다.


단음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화음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다. 친구들 두셋이 소프라노를 하면 난 알토를 맡아서 노래에 볼륨감을 넣었다. 우리는 걷는 내내 아는 노래들을 구석구석 찾아내어 부르고 불렀다. 그러다 보면 40여분 걸리는 긴 길이 짧게 느껴지곤 했다.


노래는 교회 오가는 길에서도 불렀다. 교회 성가 대원이라서 토요일이면 중등부 모임보다 일찍 교회에 갔다. 다음날 예배 때 부를 특별 찬송 연습을 위해서였다.

사진 이미지 출처;픽셀스

찬송가 대부분은 화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음의 조화를 즐기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어둑한 길을 걸을 때면 큰 소리로 친구들과 찬송가를 불렀다. 도로를 따라 걸으며 산길을 넘으며 노래를 불렀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 어느 노래보다 두근거리게 하는 노래였다. 추운 겨울밤, 입에선 하얀 입김이 나고 발이 시려 동동거리면서도 화음에 젖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노래를 불렀다.

사진 이미지 출처:픽셀스


캐럴송의 절정은 크리스마스이브 날 새벽송을 부르는 시간이었다. 성탄절을 앞둔 전날 밤, 밤 10시쯤이었을 것이다. 나이 있는 집사님과 중학생인 나, 몇몇의 청년 예닐 곱은 팀을 이루어 밤길에 나섰다. 늦은 밤부터 자정을 지나 새벽까지 띄엄띄엄 있는 교인들 집을 찾아다니며 창가에서, 대문 앞에서 성탄절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첫 음을 잡아주시던 집사님의 굵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듯 하다. 높은음 '고'와 낮은음 '고'를 잡아주면 다 같이 고요한 밤 노래를 불렀다. 가로등도 없던 시절, 두 시간 넘게 걸으며 노래를 불렀던 일, 노래를 듣고 나온 성도님이 과자와 따뜻한 차를 주신 일들은 그림책같은 장면으로 남아있다.


팥죽을 먹기로 한 마지막 집에서 권사님이 깊이 잠드는 바람에 그냥 돌아온 일도 있다. 나는 밤새라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일곱 곡쯤 부른 뒤 집사님의 결정에 따라 노래를 마쳤다. 노래와 관련한 가장 아름답고 쓸쓸한 기억이다.


K팝이 세상을 주름잡으면서 어린이들은 지난날보다 다양한 노래를 더 많이 알고 부르며 즐겼다. 틈만 나면 어린이들은 폰을 열고 노래를 익혔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어린이들도 꽤 있었다. 대중가요나 K팝 노래도 관심이 없었고 가정에서도 특별히 노래를 즐길만한 경험이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동요는 점점 구닥다리 유물이 되어가는 듯했다. 더 이상 동요를 부르지 않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음악 교과서 속 노래도 그저 배워야 하니까 배우는 걸로 여기는 현실 또한 아쉽기만 했다. 노래에 대한 풍부한 추억을 간직한 나로서는 어린이들도 그런 추억을 조금씩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학기 첫 음악 시간,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작년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 하나 불러 보럼!

-......


어린이들은 말이 없다. 서로 얼굴만 본다. 어린이들은 교과서에서 익힌 노래를 가사 하나도 외우지 못한 듯했다.


-그전에 배운 거라도 불러보렴.

-학교 종이나 애국가 부르면 안 돼요?


12살이 되었지만 어린이들은 지난해, 그전 해에 배운 노래를 기억하지 못했다. 배우기는 했는데 외울 만큼 즐겨 부르지 못했던 것이다. 교과서 노래를 충분히 익혀보기로 했다. 예순이 넘는 지금도 산책 길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고마운 바람'을 부르듯 내가 만난 어린이들도 '숲 속을 걸어요', '고향의 봄', '도레미송'을 외워 부르게 되기를 소망했다.


음악시간에 한 차례 노래를 익히고 나면 그 주간은 내내 배운 노래를 익혔다. 첫 공부를 시작할 때, 수업 중간에 나른해질 때, 점심을 먹고 나서 그리고 집에 갈 때도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외우게 되자 어린이들은 더 자신감을 갖고 노래를 불렀다. 혼자도 부르게 하고 짝을 지어 또는 모둠원끼리, 또는 학급 어린이 전체가 일어나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서서 부르기도 했다.


음악시간에는 합창단이 된 듯 다양한 대형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선선한 날은 바깥으로 나갔다. 여러 그룹으로 나눈 뒤 음정 잘 잡는 어린이를 팀장으로 해서 노래 연습을 하게 했다.


교실이 아닌 밖에 나오면 어린이들은 새로운 기분으로 노래연습을 했다. 새로운 노래를 익힐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익혔다. 그리고 수시로 발표를 하며 감상을 했다.



음악교과서에 있는 노래를 민요까지 해서 거의 익히고 외우고 나면 책을 읽은 뒤에 고난 받는 주인공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모둠친구들끼리 의논을 하여 익힌 노래 중에서 한 곡 골라 부른다. 가사를 조금 바꾸어 부른다.


작가 만남 행사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미리 노래 가사를 책 내용으로 바꾸어 놓은 뒤 작가가 이야기를 마치고 사인회를 시작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인을 하는 작가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 작가 행사 많이 다녔지만 내가 쓴 이야기를 넣어 노래로 불러주는 건 처음인데요!


작가의 말에 어린이들은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12월, 역사공부가 거의 끝나가고 3.1절을 배울 때였다. 낮고 비장한 노래 3.1절 노래를 가르쳤다. 어린이들은 이미 수많은 노래를 익히고 외운 터라 3.1절 노래를 어렵지 않게 익혔다. 어린이들은 한동안 유행가처럼 이 노래만 불렀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어린이들은 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며 이 노래를 불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목소리가 굵어진 남자 어린이들의 음성이 긴 복도를 울리며 지나갔다.


어린이들이 친구들과 교실과 복도에서 운동장과 목련 나무 아래에서 불렀던 노래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불렀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렀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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