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탐색하기, 책 만들기
나에 대해 표현하는 일은 흥미로운 듯 하지만 은근히 어렵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이럴 때 한 문장 정도의 글과 간단한 그림으로 만든 '나' 그림책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뜻밖의, 괜찮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해 볼 만하다.
새 학기,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주로 네 쪽 그림책 만들기를 한다. 어린이들 거의가 한두 시간 안에 실패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다. 아코디언 북이나 책의 형태로 접어서 만들면 뭔가 뿌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먼저 공책에 나를 주제로 네 문장을 써 본다. 표지에는 '나'라는 글자를 화면에 꽉 차게 쓴다. 그리고 자신의 특징을 담은,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그린다.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쓰도록 안내한다.
1쪽에는 나는 00를 좋아해.
2쪽에는 나는 00를 잘해.
3쪽에는 나는 00가 힘들어.
마지막 장면인
4쪽에는 나는 00이 되고 싶어.
짧은 문장인데 어린이들은 뜻밖의 정보를 내보인다. 글을 읽으면서 이 어린이에게 이런 장점이, 이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하고 놀라기도 한다.
과학에 흥미가 크고 남다른 재능이 있는 어린이는 예상한 대로 글을 썼다. 그런데 평범한 흐름 속 눈에 확 띈 문장이 있다. 브로콜리를 싫어한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지나치게 모범적인 듯한 문장에 활력소가 되었다.
나는 과학을 좋아해!
나는 컴퓨터를 잘해!
나는 브로콜리를 싫어해!
나는 화이트 해커가 되고 싶다.(홍진*)
이 어린이는 모든 면에서 반듯한 어린이다. 리코더의 경쾌한 소리가 좋다는 첫 문장이 좋다. 그림을 잘 그리는 어린이인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다니,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리코더의 경쾌한 소리가 좋아!
나는 책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어서 좋아.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영어를 배우는 게 힘들고 어려워!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이희*)
수학은 조금 떨어지지만 뭐든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어린이다. 이 어린이가 책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축구를 좋아해. 처음에는 못했는데 연습해서 잘 해.
나는 학교에서 독서가 엄청, 제일로 좋아.
나는 처음에 책 한 권을 읽고 책이 좋아졌어!
나는 구몬이 싫어!
13년 뒤에 축구 선수가 돼 있을 거야!(황준*)
힘든 이야기를 쓰는 장면에서 '나는 동생과 놀아주는 게 지루해요. 이 세상에 동생과 놀아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하고 쓴 어린이가 있다. 그 어린이 마음이 솔직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느껴졌다. 친구들인 이 문장에 크게 공감했다.
'나는 바지를 좋아해. 바지는 편하잖아. 하고 쓴 어린이가 있다. 생각해 보니 이 어린이는 늘 바지를 입고 다닌다. '싫어하는 것은 큰 개야!'하고 쓴 문장도 신선하다. 누구나 큰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데 그걸 생각해서 쓴 어린이는 거의 없다. 친구들은 이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웃었다.
이렇게 문장을 쓰고 난 뒤 만든 책자에 표현을 한다. 문장에 그림이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림 1>
이 어린이는 집중력이 높은 어린이다. 자신도 그걸 알고 있으며 자신의 그런 장점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뒷모습만 보아도 누군지 알 듯하게, 세밀히 그렸다.
<그림 2>
<그림 1>을 그린 어린이다. 차분하고 좀처럼 흥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어린이가 비교당하는 게 싫다고 했고 이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압박을 느끼는 듯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이의 고민과 바람이 느껴진다. 겨우 네 개의 문장이지만 그림과 함께 놓고 보니 이전에 보지 못한 한 어린이의 내면이 보이는 듯하다. 그림책의 매력인 듯하다.
<그림 3>
이 어린이는 조용한 편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표현력이 좋다. 네 쪽 그림책 만들면서 새로운 면을 보았다. 해보고 싶은 게 많은, 꿈틀거리는 열정으로 가득한 어린이였다.
<그림 4>
발랄하면서도 성실한 어린이다. 스스로 친구들 웃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니, 이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친구들이 즐거운 하다니,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림 4>
이 어린이는 가만히 있는 걸 잘한다고 했다. 집중력도 좋고 모든 활동을 잘하는 어린이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그냥 서 있는 걸 표현했다. 이건 무슨 능력일까, 궁금해진다. 뭘 잘 참는다는 뜻인 거 하기도 하다. 물어봤을 때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림 5>
이 어린이는 소심하고 말이 없으며 사교성도 부족한 어린이다. 너무 수줍어서 말을 하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글 쓰는 걸 좋아하고 표현력도 좋다. 이 어린이가 잠이 안 와서 힘들어한다는 걸 그림책 만들기를 하면서 알았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든다.
<그림 6>
이 어린이는 다정한 어린이다. 남자 어린이인데 말씨이나 행동이 참 부드럽다. 스마일을 좋아하는 이 어린이는 스스로 위로를 잘한다고 썼다. 정말 그렇다. 체육시간에 다쳤거나 공부시간에 아픈 어린이를 잘 챙겨준다.
나를 주제로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어린이들을 나름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도 힘든 것도 많을 텐데 한 가지만 고르게 되어 있으니 선택을 위한 고민이 당연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떠오르는 걸 쓴 어린이도 있고 고민 끝에 한 가지를 겨우 고른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고민과 선택 모두 자신의 성격이며 특징인 것이다.
어린이들은 나를 주제로 책 만드는 일에 만족해했다. 이런 활동은 분기별로 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학년을 마칠 즈음엔 제법 시간을 들여 분량이 꽤 있는 책을 만든다. 그간 글 쓰고 그리는 활동을 열심히 해 왔기에 12월쯤 되면서 상당한 역량을 갖추게 되고 제법 모양 나는 책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에 만드는 그림책은 나의 일 년을 주제로 한다. 12살 자신의 일 년 여정과 성장을 표현해 보는 것이다.
공책에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종종 책을 만들어보면 어린이들의 남다른 면을 발견한다. 그림은 문장을 풍성하게 해 주고 손 글씨와 그림은 그 어린이만의 특징을 담아낸다. 어린이들은 친구들이 만든 책을 돌려보면서 자신과 달리 친구들의 생각을 알 수 있고 남다른 표현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멋진 일은 어린이들이 작가가 된 기분을 맛본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완성하는데서, 자신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생각이상으로 큰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