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연 시 '나' , 동시집 <개미야, 미안해>
오래전 어머니와 살 때였다. 퇴근하고 집에 갈 때면 시장을 들러서 가곤 했다. 괜히 두리번거렸다. 장 보는 아주머니들 속에 혹여 우리 어머니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찾는 날 어머니는 이미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장에 들어선 날, 무심코 고개 한 번 들었는데 한눈에 엄마가 보이는 날도 있었다. 장 보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으로 그토록 붐비는 좁은 시장길이었다. 파랑 블라우스 때문이었을까, 자그맣고 동글동글한 실루엣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는 한눈에 엄마를 알아보곤 했다. 엄마도 그런 식으로 나를 알아보았다. 그때 기쁨은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리움 때문일까. <개미야, 미안해>에 실린 오지연 동시를 읽다가 '나'에서 눈길이 멈췄다, 이 시를 필사할 시로 정했다.
시인은 첫 연에서 '나를 보면 환한 빛이 둘러보인대'하고 썼다. 필사한 시를 카톡으로 전송하고 나니 톡! 하며 이십 대 후반에 나를 만났던 후배가 답장을 했다.
- 맞아요. 그곳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느낌. 나도 누군가에게는 환한 빛이 나겠죠! 전철역에서 정*이를 만날 때도 샘을 뵐 때도 느껴졌어요.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느낌!
우린 그 시절 서로 반짝였다. 출근길에 전철에서 내려 저 멀리 걸어가고 있을 때도 우린 금방 알아보고 찾을 수 있었다. 그 뒤 후배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소식이 잠잠했다. 십 년도 더 지난 작년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후배들과 어울리던 시절 나는 마흔 중반이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자주 어둑한 시간까지 학교에서 일했다. 후배들은 맑은 시냇물처럼 순수했다. 그날 수업에 대해, 다루기 힘들었던 어린이에 대해, 학부모 상담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읽어줄 재미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퇴근길에는 역 부근 간이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사 먹곤 했다. 그렇게 팔랑거리던 시절이 지나 자신의 삶에 몰두하며 서로를 잊고 있다가 이렇게 시요일로 이어지고 있다.
아들을 둔 분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사연을 보내왔다.
- 아들이 군에 갔어요. 훈련소 퇴소식에 갔는데 모두 짧은 머리에 같은 군복을 입었는데도 아이가 보이더라고요. 빛 같은 게 있어요.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키우셨겠죠. 얼마 전 어머니 계신 시골에 가서 이야기 나누는데 엄마는 저를 키우며 못해준 것만 생각나시나 봐요. 전 정말 많이 받으며 컸는데도요. 시가 아이도, 엄마도 생각하게 하네요.
- 우리 아들이 신병교육대에 입소했을 때 다들 빡빡이로 있는 데도 바로 눈에 들어오는 신비한 힘! 이런 지독한 사랑이 있을까요.
신기한 일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머리도 다르고 옷도 달라서 자식을 알아보는 게 수월 할 수 있다. 그런데 군대 간 자녀를 무리 속에서 한눈에 알아보았다고 했다. 똑같은 머리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어쩜 그럴 수 있을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는 초감각이 있는 듯하다. 잠자리처럼 3만 개의 겹눈이 있는지도 모른다. 자녀의 숨소리와 걸음걸이, 실루엣, 앞모습, 옆모습, 뒤통수까지 모조리 마음에 담고 감각하고 계시는 거다.
시는 '숨소리만 들어도/ 우리 진영이, /눈감고도 맞출 수 있네.'로 끝난다. 시를 읽은 어머니들은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래전 큰 아이가 입학하는데 멀리서 수많은 아이들 가운데 빨간 겨울 옷을 입은 애를 딱 알아봤던 생각이 나네.
-아이들 한 바구니 쏟아져 나와도 우리 딸아이 찾을 수 있겠더라고요. 손가락만 발가락만 봐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그러셨겠죠!
알아본다는 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듯하다. 오늘은 부모님 생각으로 자꾸 먹먹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