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시, '강아지' <파도는 파도 파도 파도>에서 고름
이번에 고른 시 '강아지'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이정록 시인의 동시집 <파도는 파도 파도 파도>에서 골랐다. 시는 짧고 단순하나 여운의 진폭은 크다. "손!", 하면서 강아지를 부르는 대목에서 오래전 내 목소리와 추억을 순식간에 마주한다. 시를 필사하고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1초도 되지 않아 하하하하 웃는다. 하하하하, 유쾌하게 또 웃는다.
강아지라는 낱말만큼 정감 주는 낱말이 또 있을까. 어른들의 추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눈물과 함께 아련하게 남아있는 강아지라는 이름.
내 첫 강아지 이름은 '재롱이'다. 1학년 즈음이었던 거 같다. 아버지는 어느 날 회사 사람에게 얻었다며 똥개라고 부르는, 동네 개와는 조금 다른 류의 강아지를 데려왔다. 말할 수 없이 귀엽고 작고 다부졌다. 강아지는 울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피웠다. '재롱이'라는 이름이 딱 떠올랐다. 당시 개 이름은 '쫑'같은 이름 들이었다. '재롱이'라는 이름은 내가 생각해도 세련된 이름이었다
불행히도 강아지는 내 품에서 하룻밤도 있지 못했다. 아버지는 밤이 되자 강아지를 밖에 내놓으라고 했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 날은 아직 찼다. 아버지는 부뚜막 옆에 두면 따뜻하니 된다고 했다. 마음이 쓰였지만 그렇게 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밤에 몰래 나와서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와 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다. 엄마가 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불길했다. 강아지는 그만 죽어있었다. 연탄가스를 맡은 것이다. 눈이 붓도록 울었다. 강아지는 뒤란 언덕에 묻었다. 판자를 구해 분필로 '재롱이, 여기 잠들다'라고 쓴 뒤 무덤 앞에 세웠다. 무덤 봉분을 국 대접 엎은 듯 자그마하게 만들었다. 무덤 앞에는 제사상 놓듯 종이를 깔고 과자랑 이것저것 먹을 걸 놓았다.
재롱이 무덤엔 날마다 찾아갔다. 적어도 비가 오기까지 정성껏 찾았다. 비가 왔다. 며칠 동안 많이도 왔다. 비 그치면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 비가 그친 뒤 가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덤은 사라지고 없었다. 50년 넘는 세월이 지났다. 그래도 강아지, 이름만 들으면 재롱이가 떠오르고 내가 만든 나무 비석이 보인다. 그러면서 마음이 아릿해진다.
류창근 어린이가 쓴 시에 백창우라는 작곡가가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우리 집 강아지'다.
우리 집 강아지는
누구라도 따라간다.
옆 집 큰 개가 어미인 줄 알고
졸졸 따라다닌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따라다닌다
저러다가 아무나 따라가서
집을 못 찾으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다
어리숙한 강아지 모습을, 그 강아지를 사랑하는 어린이 마음을 잘 나타냈다. 강아지를 키워 본 어린이만이 쓸 수 있는 시다. 한 번은 2학년 어린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치는데 여자 어린이 하나가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운다. 그 어린이는 죽은 강아지 생각이 난다고,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어린이 사연을 들은 친구들은 저마다 슬픈 생각으로 눈씨울이 빨개졌다. 그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도 잊지 못할 강아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정록의 '강아지'는 유쾌한 시인데 손, 이라는 낱말 하나로 온갖 추억들이 달려 나왔다. 시를 받은 지인들의 추억과 감상이 궁금해진다.
- 아 참 귀여운 시예요! 시요일이 있어서 수요일이 좀 더 기대되는 게 있어요! 애들이랑은 손발 척척 맞아갈 때쯤 헤어지는데, 그게 정말 아까우면서도 딱 맞다 싶어요. 올해는 유난히 아기 같은 5학년인데 이제야 좀 눈빛으로 교류하고 있으니...... 11월 즈음에는 손 척! 발 척! 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해봐야겠어요.
5학년을 맡고 있는 후배선생님이 답장을 보냈다. 시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 절로 머리가 끄덕여진다. 해마다 새로운 어린이들을 만나는 교사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는 답장이다. 11월 즈음이 되면 어린이들과 손발이 척척 맞는 순간들이 많다. 이 어린이들이 3월의 그 어린이가 맞나 하며 감탄할 때도 있다. 그 익숙함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후배 교사는 하루하루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 오늘은 선생님의 시 선물을 늦게 보게 되었네요. '손발이 잘 맞는다', 손발이 잘 맞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손발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고요. “내가 너의 손발이 되어 줄 게!”하는 마음이 없어 그렇겠지요. 같이 사는 사람의 손발도 되지 않는데 어찌 다른 사람과 손발을 맞출 수 있을까 싶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둘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발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 답장이다. 선생님은 손발이 잘 맞는 사람들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즘 세태를 생각했다. 여러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겨울에 큰 눈이 오면 교사들은 비상연락을 받고 눈을 치우러 학교에 갔다. 남자 선생님들이 눈을 치우면 여자 선생님들은 커피와 귤 같은 간식을 챙겨서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회 아침 날은 이른 7시에 선생님들은 만국기를 달고 운동장에 흰 금을 긋고 아침으로 김밥을 나누었다. 시간이 되는 선생님들 나오세요, 하면 어린아이가 있는 교사들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아서 나왔다.
이런 일도 있었다. 누군가 자동차를 사면 학교 한 쪽에 모여 고사를 지냈다. 선생님들은 주섬주섬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돼지머리 여기저기에 꽂았다. 돼지머리에는 돈꽃이, 둘러선 선생님들 사이엔 웃음꽃이 피었다. 간단한 제사를 마치면 그 돈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제 이런 일들은 점점 사라지고 교사들은 서로 왕래할 일이 많지 않다. 각자 교실에서 메시지로 업무 연락을 하는 게 일상이다. 만나는 일이 적으니 손발을 맞출 일도 없고 정을 쌓는 일도 드물다.
선생님은 답장 끝에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둘레 사람에게 손발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고 했다. 추운 겨울에 따슨 국물을 마신 듯 마음 한쪽이 따뜻해온다. '우리는 손발이 잘 맞는다'는 시의 구절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두루 생각하게 한다.
'손발이 맞는다' 넘 웃겨요. 저도 아가들이랑 손발 맞추러 가보겠습니다.
육아 휴직을 한 젊은 남자 선생님 답장이다. 아가 둘과 하루하루 씨름을 하며 지내고 있다. 아가들이랑 손발 맞추러 간다는 말에서 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들도 각자 생각도 다르고 하지만, 시처럼 손발 맞추고 사는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이 전근을 가세요. 금요일 아침 달리기 후에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요. 아이들과 선생님을 참 좋아해 주셨는데 아쉬워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나만 아는 교장 선생님 비밀'이란 그림책을 만들고 있어요. 교장선생님에게만 비밀로 하고요. 금요일에 드릴 거예요. 시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손 잘 맞추는 하루 보낼게요.
전근 가는 교장 선생님께 그림책을 비밀리에 만드는 선생님과 어린이들, 정말 손발이 척척 맞는다. 떠나는 교장선생님이 선생님들과 얼마나 손발을 잘 맞추었으면 이렇게 멋진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시요일에 전송한 시 한 편으로 세상의 따뜻한 구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