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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흔드는 직업, 흔들리지 않는 소명

by 남상석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직업 세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은 빠르게 기계로 대체되고, 심지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조차 AI가 해내고 있다.

매킨지 연구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수억 명이 직업을 잃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창의성과 윤리적 판단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효율만 추구하다 보면 노동의 의미가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직업은 변할 수 있지만, 인간 존재를 부르는 목소리 ― 소명(召命, calling) ― 은 여전히 유효하다.

직업을 가리키는 말들

영어에는 직업을 뜻하는 다양한 단어가 있다.

occupation: 생업, 누구나 가지는 일

career : 전문적 훈련과 자격이 필요한 직종, 경력을 쌓아 가는 경로

job : 임금을 전제로 하지만 단순히 “맡은 일”에 가까움

vocation / calling : 부르심, 곧 소명(召命)에 가까운 말

소명

소명은 단순히 직업 선택이 아니다. 나의 적성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자리가 곧 소명의 자리다.

프레드릭 부케너는 말했다.

“소명은 나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배고픔이 만나는 장소이다.”

어떤 이는 사회의 필요를 보고 즉시 기쁘게 반응한다. 어떤 이는 방황과 시행착오 끝에 소명을 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적성과 사회의 필요가 겹치는 자리에서 보람되게 살아가는 일이다.

일상의 소명

소명은 거창한 무대가 아니라, 내가 기쁘게 봉사하고 책임을 다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드러난다. 브라더 로렌스라는 수도사는 주방에서 냄비를 닦고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그것을 신의 임재 속에서 드러나는 소명으로 보았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일조차 신께 드리는 예배다.”

작은 자리에서도 소명은 드러난다. 선진 사회가 장애인을 고용해 일터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사람이 소명의 자리를 찾도록 돕는 것은 사회 전체의 책무다.

세대와 직업

미국에 온 한인 1세대는 세탁소, 식당, 주유소 같은 일터에서 땀 흘리며 살았다. “Fresh Off the Boat(FOB)”라는 말은 이민 초세대를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지만, 그들의 노동과 희생 덕분에 다음 세대는 더 다양한 직종과 기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와 전쟁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내 아들이 수학과 철학을 공부할 수 있다. 내 아들이 학문을 배운 후에야, 손자는 예술과 문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세대의 희생과 기회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오늘의 세대는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투자하고, 미래 산업과 직업군에 도전하며, 공동체 전체의 기회를 확장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AI 시대의 소명

토인비는 사회 발전이란 “도전에 대한 성공적 반응”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자동화와 AI는 콜센터, 데이터 입력, 단순 제조·번역 같은 규칙적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 번 배운 기술로 평생 살아가기 어려워졌고, 직업의 수명은 짧아졌다.

그러나 모든 직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돌봄, 윤리적 책임, 창의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남는다. 간호사, 교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변호사, 경찰, 예술가, 작가, 지도자 같은 직업은 대체될 수 없다.

동시에 데이터 과학자, AI 윤리 전문가, AI 활용 강사,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트레이너 같은 새로운 직업군도 등장하고 있다.

결국 AI는 일자리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하지만 고용 불안, 재교육의 필요성, 윤리적 논란도 함께 동반한다. 무엇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책임 있는 선택이다.

새로운 일터를 찾는 세대가 기억할 두 가지

새로운 일터를 모색하는 젊은 세대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자신의 적성을 분명히 파악할 것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영역을 정확히 읽을 것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 곧 소명의 자리다. 직종은 가능하다면 평생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장은 보수나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원하는 자리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나는 한 길을 찾고야 만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를 만들 것이다.”

마무리

소명은 이미 주어진 길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 도전이기도 하다.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결국 소명은 단순한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직결된 물음이다. 그 물음에 응답할 때,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든 기쁨으로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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