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그리고 자발적 군대
비행기 창밖으로 황사 낀 하늘이 보였다.
그날따라 하늘은 뿌옇고,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스무 살, 나는 낯선 나라로 향했다.
‘성해 재경대학교.’
이름부터 낯설었다.
공항을 나서자,
매연과 향신료, 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그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이게 중국이구나.’
그 순간, 이상하게 외로움이 확 밀려왔다.
기숙사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도착한 첫날, 룸메이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니하오! 워스 리펑!”
“어… 헬로. 코리아.”
“코리아! 김치! 싸랑해요~”
리펑은 그렇게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순간만큼은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수업은 전부 중국어로 진행됐다.
교수의 말은 공중에서 흩어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노트를 펴고도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교실 창밖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는
낯선 향신료 냄새가 가득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 눈앞에 놓였다.
한입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때 리펑이 웃으며 내 접시를 가져갔다.
“너 이거 싫어하지? 나 줘.”
“그래, 너 먹어.”
“너 맨날 라면 먹으면 얼굴 노랗게 돼.”
그의 농담이 웃기지 않았지만,
그 웃음이 유일한 위로였다.
밤이 되면 옥상에 올라갔다.
도시 불빛이 멀리 반짝이고,
별은 이상할 만큼 많았다.
헤드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SG워너비의 ‘살다가’.
가사 한 줄 한 줄이
내 이야기 같았다.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영 아,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나는 짧게 답했다.
“응, 잘 지내.”
사실은 아무렇지 않았다는 그 한 줄이,
그날 밤엔 이상하게 무거웠다.
하루는 리펑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 요즘 왜 그래?”
“그냥… 좀 답답해서.”
“너 생각 너무 많아. 생각 그만.”
“그게 잘 안돼.”
리펑은 내 등을 툭 쳤다.
“친구,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이 그날 밤, 내 유일한 위로였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 물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나는 뭘 하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걸까?
며칠 뒤, 아무 말 없이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귀국편, 편도.
집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게이트를 나올 때,
손에 남은 건 혼자 내린 결정뿐이었다.
그날 밤, 조용한 집.
부모님은 중국에, 누나는 서울에 있었다.
방 안엔 내 숨소리만 남았다.
노트북을 켜고, ‘군 자원입대’라고 검색했다.
신청서 마지막 줄에 나는 짧게 썼다.
“나를 찾기 위해.”
군대는 생각보다 덜 무서웠다.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그 규칙적인 하루가 나를 잡아줬다.
“김영 이병! 정렬!”
“예!”
“목소리 작다!”
“예!!!”
그 외침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제대로 내뱉는 기분이 들었다.
2개월 뒤, 조교로 선발되었다.
훈련병들의 발소리가
‘탁, 탁, 탁’ 맞춰질 때마다
내 안의 혼란이 조금씩 정리됐다.
어느 날, 신병 하나가 울면서 말했다.
“조교님, 저 너무 힘듭니다.”
“괜찮아. 나도 그랬어.
하지만 울면서도 버티는 게 진짜 강한 거야.”
그날 밤, 그 병사가 내게 쪽지를 건넸다.
“조교님, 덕분에 버팁니다.”
나는 그 쪽지를 전투화 속에 넣었다.
전역할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말년휴가 마지막 날,
카페 구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력서를 썼다.
‘건축 모형 제작 지원.’
커서가 멈춰 있는 화면을 보며 속삭였다.
“이제는 세우는 일을 해보자.”
그날의 커피 냄새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쓴맛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냄새로.
〈삶을 짓는 남자〉 시리즈 예고
다음 편 ― “모형으로 세운 나의 16년”
: 본드 냄새와 커터칼,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