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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r 29. 2024

장철 (2)

8. 복수

장철 감독은 워낙 많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그러다 보니 이 감독의 작품들을 구분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장철의 작품들은 보통 장철 사단이라 불리는 영화를 함께 한 배우들 위주로 Phase 를 나눈다.

< 독비도 >부터 시작한 왕우와 함께 하는 Phase 1 시대,

< 복수 > 로 대변되는 강대위와 적룡의 브로맨스를 중심으로 대혈겁을 찍는 Phase 2 시대,

< 마영정 > 을 비롯한 본격적인 권격 영화를 찍기 시작했지만 29세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부성, 그리고 진관태의 Phase 3 시대,

< 오독 >을 시작으로 서양사회에 일종의 컬트를 만들어 낸 Venoms Film (독영화)의 Phase 4 시대가 그것이다. 마지막 Phase는 나망, 강생, 녹봉, 손건, 곽추라는 오인 체계였는데, 이들의 아크로바틱한 액션합은 당시에만 해도 기가 막힌 연출이었다.


< 독비도 > 로부터 시작한 장철 감독의 피칠갑 무협 영화는 < 금연자 (심야의 결투) > 까지 이어지며 수많은 아류까지 만들어 낸다. 한때 장철과 헤어졌던 왕우조차 자신의 이름으로 '독비도' 외전류를 만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이때만 해도 홍콩 영화는 마치 무협 영화 외에는 다른 영화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 독비도 > 의 대박흥행은 쇼브라더스를 중심으로 하는 홍콩 영화의 중흥기를 불러왔다.

반면에 이후 홍콩 영화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끝없는 자기 복제를 가져오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장철 감독의 작품에 망작이라 불리는 것들도 이런 홍콩 영화 시스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무협 영화를 말하고자 한다면 사실 중국의 대문호인 김용을 빼고는 시작할 수가 없다.

김용의 < 영웅문 > 시리즈와 < 천룡팔부 >, < 녹정기 > 등 그가 집필한 15개의 소설은 무협 영화들의 근간이 되어왔다. '동사서독', '남제북개' 등 여러 단어들이 그의 소설에서 왔으며, 기공이니 독공이니 하는 무공의 수법들도 홍콩 무협 영화의 단골 소재들이었다.

물론 그의 소설들 자체로도 많은 영화를 만들어 낼 정도다. 소오강호 > 번이나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김용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세익스피어나 톨킨 같은 '신필 (神筆)' 이며, 중국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중국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이다.

장철의 독비도 > 그렇다. 분명 그 스토리는 김용의  영웅문 > 시리즈 가장 인기가 좋았던 '신조협려'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장철 감독은 스토리를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감독이었다. 그래서 스토리들은 소설이나 고전에서 따오고 거기서 캐릭터들의 비장미나 의리, 복수를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장철의 무협 영화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캐릭터와 캐릭터의 목적성 (주로 복수) 을 놓고 같은 배우를 써서 다른 상황, 배경이나 다른 액션 장면을 넣는 걸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많은 작품을 하려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로 인해 그의 가치가 많이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장철 감독은 김용뿐만 아니라 '수호지'의 무송과 반금련 스토리도 자주 써먹었는데, 형수의 바람기와 그로 인해 죽는 형을 위해 복수를 하는 무송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고스란히 차용해 나온 것이 바로 < 복수 (報仇) > 란 영화이다.


< 복수 > 는 장철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여러 번 언급되는 작품이다. 여기에 나오는 브로맨스와 비장미는 이후에 여러 홍콩 영화들에서 오마주하고 재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부터 장철 감독은 강대위와 적룡이라는 두 배우의 브로맨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적룡은 강대위의 형으로 나오는데, 초반 장면에 바로 죽는다. 알다시피 반금련은 수호지에 나오는 최악의 바람기를 가진 요녀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적룡의 아내는 그런 역할로 나오고 결국 그로 인해 적룡이 한 무술 도장에 찍혀 수십 명과 대결 후 처절하게 죽는다.

적룡은 이로 인해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배에 도끼를 꽂은 채로 싸우다 눈이 파일 정도이니 폭력성은 둘째치고 이런 장면을 초반부터 배치한 장철의 대담함이 놀라울 뿐이다. 거기서 느껴지는 인물의 비장함이란 그야말로 남자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강대위는 형을 죽인 음모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찾아내서 죽이고, 마지막에는 도장을 찾아가 1대 다수의 역시나 처절한 싸움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 복수 > 에 이런 폭력씬 이외에 뭔가 색다른 스토리나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특징들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폭력의 비장미나 파워는 엄청났다. 그 폭력씬이 얼마나 장엄했던지 처음에 나왔던 형의 죽음을 처절하게 복수해 내는 동생의 모습은 눈물이 날 정도이다. 형제의 끈끈한 의리나 형제애를 폭력을 통해서 가득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장철은 이 영화 이후 적룡과 강대위 콤비를 계속 구사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 콤비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장철 감독이 같은 캐릭터를 너무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둘의 캐릭터는 항상 영화에서 정의롭고 정직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적룡이 불같은 성격으로 돌진하는 캐릭터로 나온다면 강대위는 항상 상대방을 비꼬면서 적룡이 저질러 놓은 일을 뒤처리하는 형식의 캐릭터로 나온다.

이 자기 복제의 반복되는 캐릭터성으로 인해 관객들은 후에 많이 피곤해한다.


장철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칼과 창이 난무하는 것에서 권격 (손과 발로 사람을 죽이는)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이런 액션스타일의 변화는 시대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해에 홍콩 영화는 영화사에서 다시없을 스타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이소룡이다. 이소룡은 골든하베스트와 손을 잡고 < 당산대형 >을 이 시기에 내놓게 되는데, 마치 실전 같은 타격감을 주는 액션에 홍콩 전체가 들끓었다.

사실 < 당산대형 >은 개인적으로 이소룡 영화 중에 < 사망유희 >와 더불어 가장 이상한 영화였지만, 이소룡의 실전적 무술은 이제까지 칼을 휘둘러대던 무협 영화와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했다.

장철 감독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빨리 감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 복수 >에서 마치 관객들의 요구를 알고 있다는 듯 모든 액션에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장검과 창을 이용한 액션에서 단검과 도끼를 사용한 액션으로 바꾸었다.

적룡이 사용하는 쌍단검이나 강대위가 사용하는 단검의 사용은 배우들의 액션 거리를 극도로 좁혀 놓았고, 이를 통해 화면에서 보이는 타격감이나 폭력의 느낌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 폭력의 근접성을 활용한 장철 감독은 최대 장점인 수많은 폭력으로 화면을 수놓는데, 이 영화에서 적룡은 11명을 죽이고, 강대위는 39명을 죽인다. 그것도 죄다 피칠갑을 만들어서.

이 영화 이후 장철 감독은 무협에서 무술 영화로 넘어와 주로 권격을 사용하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


게다가 이 영화만큼 장철의 가장 큰 특징인 스튜디오 세트장 촬영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는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없었다.

영화에서 세트장 촬영은 한정된 공간에서 인조 조형물로 짓다 보니 시각이나 공간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뒷배경 (지금은 CG가 있어 괜찮지만) 이라든가 사실적이지 않은 자연조형물들, 그리고 좁은 복도나 계단, 오르막이 없는 길거리 등. 그런데 이런 공간의 제약을 단검과 도끼를 가지고 휘두르는 근접전과 어마무시한 액션씬으로 한 번에 없애버린다.

아니 오히려 근접 액션을 통해 이런 세트장의 비좁음과 여러 제약들을 철저히 이용한다.

관객들은 장철이 펼쳐놓은 좁은 세트장에서의 근접전이라는 완벽한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이 영화가 장철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 독비도 > 만큼 크다.

물론 한국에서 상영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단순히 흥행면이 아니라 이 영화가 홍콩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이상이다.

물론 당대의 이소룡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홍콩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광둥어로 제작되는 영화에 피 한 방울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그의 타격감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이후에 가화삼보라고 불리는 성룡, 홍금보, 원표가 나오는 영화들도 이소룡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장철이 만든 < 복수 > 라는 영화가 직접적으로 더 많이 홍콩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철이 만들어내는 브로맨스의 비장미는 오직 그의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로 인해 이후에 나오는 대부분의 홍콩 느와르나 아니면 성룡 영화 같은 코미디에 바탕을 둔 무술 영화가 아니라 진지한 형사물 위에 바탕을 둔 무술 영화들도 이런 비장미를 많이 따르게 된다.

대표적으로 홍콩 느와르 영화의 오우삼 감독은 이런 장철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었고, 그의 모든 느와르 영화들은 이런 장철의 복수와 브로맨스를 따른다. 그래서 그냥 느와르가 아니라 홍콩 느와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낼 있었던 것이다.


< 복수 > 라는 영화는 개인적으로 꼭 추천하지는 않는다. 엄청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 폭력성과 피칠갑에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은 감상을 시도해 보길 바란다.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은 항상 하나의 심각한 주제로 와닿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 폭력성을 잘 다루는 샘 페킨파 감독이나 장철 감독 같은 사람들이 폭력의 장인으로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폭력만 있고 관객에게 어떤 인간의 감정도 불러올 수 없다면 그런 영화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장철 감독은 최소한 폭력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그의 영화에서 그 폭력을 통해 여러 감정을 느끼길 원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초적 성격을 담은 캐릭터들의 의리, 형제애 그리고 복수를 통해 비장미를 한껏 드러내놓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가 재미있는 것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는 놓치면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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