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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Apr 01. 2024

장철 (3)

9. 오독

장철 감독의 Phase 3 는 주로 권격 영화였다. 

난 이 시대 그의 영화들에 대해 쿵푸보다는 권격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데, 그 이유는 이소룡과 성룡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소룡과 성룡의 영화는 분명 쿵푸 영화가 맞는데, 장철의 영화들은 그들의 영화와는 너무나 결이 달랐다.

남자들 간의 유대와 의리, 복수, 우정 등을 주제로 넣고 거기에 피칠갑을 이루는 그의 영상은 쿵후라기보다는 주먹을 사용해 상대방을 죽이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소룡이나 성룡 영화와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나 할까?

이 시대의 장철 사단은 부성과 진관태 등이 부상하게 된다. 물론 적룡과 강대위도 나오지만, 주로 황비홍과 홍희관, 방세옥이라는 실존했던 무술가들에 대한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스타였던 부성이 29세의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데, 이와 맞물려 장철의 영화들도 점점 시들시들해진다. 

그러면서 쇼브라더스와 마찰을 심하게 겪은 후 대만으로 건너가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는 동양이 아닌 서양 사회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감독이 된다. 

나망, 강생, 녹봉, 손건, 곽추라는 다섯 명의 서커스 출신의 배우들과 만들어 낸 이 시기의 영화들은 Venoms Film 이라고 불리며 서양 영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 첫 번째 영화가 바로 < 오독 > 이고, 그 영화부터 장철 감독의 Phase 4 가 시작된다. 


장철 감독의 Phase 4 에서는 의외로 많은 영화들이 호평을 받았다. 

특히 < 오독 >, < 잔결 >, < 차수 > 는 아크로바틱한 액션으로 북미 영어권에서 컬트적 인기를 얻는다. 

이 중에 대표작을 고르라고 한다면 사실 난 잘 모르겠다. 

< 오독 > 은 장철의 새로운 시발점이고, < 잔결 > 은 장철 감독의 최대 특징인 신체훼손을 아예 대놓고 주인공들에게 적용시켜 악당에 의해 불구자가 된 5명이 서로를 보완하며 무술을 펼치는 이야기다. 게다가 < 차수 > 는 도, 검, 창을 다루는 액션이 기가 막히다. 

이 시기의 장철 감독의 작품들은 여전히 비장미를 뿜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Phase 1,2 시기보다는 많이 떨어진다. 등장하는 메인 캐릭터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 시기에 장철 감독은 의리, 우정, 배신, 복수라는 비장미를 뒷받침해주는 주제에서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런 주제들보다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멋있게 사람을 잘 죽일 수 있는 액션을 선보일까에 더 고민을 두었다. 

그래서 스토리들도 주로 악당의 무공은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데 거기에 맞서기 위해 다른 무공을 사용해야 한다는 둥 액션에 많은 대사와 장치를 활용한다. 

그리고 그런 스토리의 시작이 바로 이 < 오독 > 이다. 


< 오독 > 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도마뱀, 두꺼비, 전갈, 지네, 뱀의 동작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오독문의 무공들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다섯 가지 모든 무공을 깊게는 아니지만 다 배운 잡종이다. 다른 하나는 이 오독문에서 무공을 배운 후 떠난 다섯 명의 사형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미스터리한 지점은 사실 무협영화에서 자주 쓰인 방식 중 하나인데, 이 영화 개봉 당시에 북미(North America)사회는 이런 부분에 열광했다. 

무공으로 특화된 캐릭터들과 미스터리의 결합이 이 필름을 컬트필름으로 숭배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로 인해 홍콩 무협영화들을 좋아하게 되는 북미 골수팬들이 많이 생기게 되고, < 오독 >은 마치 그런 무협영화의 입문서처럼 다루어졌다.  


이 필름이 북미에 얼마나 많은 추종자들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이후의 영향을 봐도 알 수가 있다. 

1990년대 초기에 무당파 (Wu-Tang Clan)라는 무협세계의 9파 1방에서 가져온 이름을 한 유명 힙합그룹이 있었다. 뉴욕에서 만들어진 이 힙합그룹은 대놓고 < 오독 >에 대해 찬양하는 가사를 집어넣거나 많은 부분에 인용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비디오가게 오덕출신인 쿠엔티 타란티노 감독도 그의 명작 중 하나인 < 킬빌 1,2 >에서 대놓고 이 < 오독 >의 다섯 명 캐릭터를 차용해 쓴다. 

그럴 정도로 이 영화는 북미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3년에는 그 유명한 엔터테이먼트 위클리 잡지에서 반드시 봐야 하는 컬트무비 50선에 들 정도였으니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고 봐야 한다. 

 

컬트무비란 20세기에 팽창했던 일종의 문화현상이었다.

대중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열광적인 지지팬들을 거느리게 되는 이 현상은 여러 문화적 형태를 표출하게 된다. 

가장 유명한 것이 < 록키 호러 픽쳐 쇼 > 다. 이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영기간을 가진 컬트무비다. 갖은 성페티시, 판타지와 글램 룩을 SF 호러라는 장르를 빌려 표현한 뮤지컬이 엄청난 지지층을 가지게 되자 20세기폭스사가 이를 동명의 영화로 만들게 되는데, 그 영화가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또 보는 폐인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한 심야극장에서 벌어진 배우와 대사 하는 형식의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은 모든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여주인공인 쟈넷이 비를 맞고 걷고 있으면 '우산을 사란 말이야. 이 XX아.'라고 관객이 소리치는 형식이다. 

게다가 내가 독일에 갔었을 때 마침 심야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하고 있었는데 관객들은 모두 두루마리 휴지를 준비해 와 정말 스크린위에 투척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이런 일련의 문화적 행동들이 사회이슈화 되면서 만들어진 말이 컬트무비다. 이런 컬트는 영화자체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종교적 숭배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런 집착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라는 컬트무비를 세계적인 명작의 반열로 올려놓기까지 한다. 

게다가 오히려 후일에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까지 한다. 

< 오독 > 이란 영화가 바로 북미에서 그런 지위까지 올라갔으니, 이 영화의 영향력은 말도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의 인트로는 일단 강렬하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오독문의 사부가 강생에게 사형들의 무공에 대해 설명해 주며 각 사형들이 가면을 쓰고 나와 도마뱀, 두꺼비, 전갈, 지네, 뱀의 각기 다른 무공들에 대한 장점과 파괴력을 설명해 준다. 

이때 장철은 여러 기물들을 파괴하는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면서 이 액션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려고 애쓰는데, 마치 한 편의 발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그 모습이 유려하다. 

게다가 다음 무공은 어떤 게 나올까 하는 관객들의 궁금증까지 유발해 여전히 장철 감독의 액션 연출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초반에도 이야기했지만 장철 감독의 Phase 2 시절인 적룡과 강대위의 작품들처럼 강한 비장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 오독 > 은 철저하게 재미만을 추구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개성의 무술들을 연구하고 파훼하는 과정에서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건 마치 방법론을 풀어놓은 듯한 스토리구조를 가지게 된다. 

방법론이란 어떤 학문이 사용하는 방법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인데, 이 무술의 기원과 원리를 이해하고 어떤 식으로 파훼할지를 보여주는 것은 마치 방법론 중의 변증법을 보는 듯하다. 

두 무술이 충돌하고 양적인 연습을 통해 정반합을 일으키는 모습이 그런 오묘한 철학까지 느끼게 한다. 아무런 감정개입이 있을 수 없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오독 > 은 장철의 Phase 4 영화들 중에 가장 아크로바틱한 엔딩을 창출한 영화 중 하나이다. 물론 < 차수 > 나 < 잔결 > 에서도 그렇지만, 이 영화가 Venoms Film 중 첫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전의 영화들과는 정말 그 궤를 달리한다. 

무엇보다 그 흔한 와이어 하나 쓰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홍콩 무협영화는 성룡도 그렇고 많은 부분을 와이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와이어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사람의 육체만으로 여러 액션들을 경험하게 만든다. 

특히나 마지막에 주인공 2명이 벽의 장식에 발을 걸어 지탱하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이렇게 장식에 발을 걸고 벽에 서 있는 장면은 이후에 많은 영화들에서 차용하기도 한다. 

Phase 1,2 영화들의 엔딩 중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일대다수의 대결이었다면, 이 영화부터는 소수의 대결이지만 어떤 식으로 액션을 포장하고 크게 보여줄지를 시작한 영화였다. 

비장미나 브로맨스의 느낌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서로의 타격감과 아크로바틱 액션에 의지해 적을 물리치는 장면은 이후에 많은 액션 영화들에도 영감을 주게 되고, 장철은 이후에도 이 5인의 배우와 함께 많은 영화를 찍게 된다. 


사실 이 5인의 배우 중에 왕우나 적룡, 강대위처럼 크게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일단 잘 생기지도 않았고, 연기가 그렇게 출중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그 근육들과 아크로바틱 액션은 지금까지의 장철 사단이 보여준 것과는 너무나 달랐고 반할 수밖에 없는 남성미를 자랑했다. 

그렇기에 이후에 많은 홍콩 영화감독들이 이들을 조연급이라도 불러서 함께 하곤 했다. 이 5인의 배우는 분명 개성이 강한 최고의 액션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 오독 > 은 장철 감독을 영어권에 알린 굉장한 영화 중 하나이다. 어떤 이는 스토리의 유치함에 웃을 수도 있지만, 70년대 말 정서에서는 이런 아이디어들과 액션들을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은 장철이 유일했다. 

제작사와 틀어져 더 이상 영화를 못 찍을 것 같던 옛 흥행 감독이 대만으로 건너가 저예산으로 자신의 열정을 보여준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고, 여기서 감독의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한번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장철 감독의 철저한 액션 프로로서의 영화를 보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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