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 감독의 유명한 사망플래그는 '흰 옷을 입은 캐릭터는 처참히 죽는다'이다. 그리고 이런 사망플래그는 오우삼 감독도 그대로 차용해 쓰는데, '흰 옷을 입은 캐릭터는 수많은 총을 맞아 죽는다'라는 것이 바로 포스터부터 드러나는 < 첩혈쌍웅 > 이다.
주윤발은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며 임영동 감독의 홍콩 느와르 최고 걸작 중 하나인 < 용호풍운 >에서 만난 이수현과 함께 공동주연을 한다. < 용호풍운 > 에서는 주윤발이 잠입형사였고, 이수현이 갱단의 두목이었다. 여기서도 둘은 의형제를 맺고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여준다.
< 첩혈쌍웅 > 에서는 반대다. 이수현이 형사고, 주윤발이 범죄자다. 하지만 여전히 이 둘의 관계는 의리로 넘친다.
서극과 오우삼 콤비는 < 영웅본색 1,2 >, 장철 감독을 기획자로 두고 서극이 제작자로 오우삼과 우마가 감독으로 만든 < 의담군영 (장철 사단을 다 불러놓고 찍은 헌정 영화) >을 찍는다. 그리고 이 < 첩혈쌍웅 >을 마지막으로 '영웅본색3' 기획에 대한 견해차이로 찢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 첩혈쌍웅 > 은 < 영웅본색 2 > 의 홍콩 흥행 기록을 깨지는 못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 영웅본색 2 >를 앞지르는 흥행기록을 세운다.
게다가 사무엘 잭슨을 비롯해 쿠엔티 타란티노, 니콜라스 케이지 등 여러 헐리웃 감독과 배우들의 팬덤을 일으키기까지 할 정도로 이 영화의 총격 액션씬은 여러 영화들에서 오마주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오우삼이 제목에서 말하듯 작정하고 장철의 피칠갑 영화를 느와르로 탄생시킨 영화이다.
장철 감독은 위의 사망플래그에서 말했듯 죽여야 하는 배우들한테 자주 흰 옷을 입혔는데, 흰 옷의 붉은 피색은 그야말로 선명하기 때문이었다.
1996년에 상영한 코엔 형제의 유명한 영화 중 하나인 < 파고 > 도 알고 보면 흰 눈 위에 뿌려지는 피를 그 형제 감독이 보고 싶었다는 악취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피칠갑을 좋아하는 감독들에게 흰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오우삼 감독은 피가 낭자한다는 '첩혈'이라는 뜻을 고스란히 영화에서 표현하며 그야말로 장철의 피칠갑 영화를 넘어서는 총격씬의 선혈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컷 (Cut) 이라 함은 감독이 현장에서 테이크를 끝내는 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물리적인 힘을 이야기한다. 필름으로 찍던 시절에 필름이 현상된 후 필름의 스토리를 잇기 위하여 말 그대로 필름을 가위로 (스플리터) 자른(cut) 후 테이프로 붙였다. 거기서 유래된 것이 컷이다. 감독은 현장에서 이런 편집점들을 잡기 위해 컷을 부른 것이며, 이 지점을 찾기 위해 편집자들은 암실에서 조명과 어둠 속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지금은 모두 디지털로 하기에 암실이나 스플리터 등은 볼 수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컷은 영화가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강렬한 기법 중의 하나였다.
컷을 가장 인상 깊게 보여주며 완벽한 형태로 구성한 것이 세르게이 에이젠스타인 감독의 1925년작, < 전함 포템킨 > (무성영화)이다. 여기서 발현한 그의 몽타쥬 기법은 변증법이라는 정반합의 철학을 영화로 형상화시킨 것으로서 특히 오디세이 계단씬은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면으로 이 영화와 오손 웰즈의 < 시민 케인 >, 장 르느와르의 < 게임의 규칙 > 은 영화를 하거나 배운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3대 작품으로 불린다.
러시아 제국군들의 진압 장면과 민중들의 시위 장면, 그리고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굴러가는 유모차와 거기에 놀라는 엄마의 클로즈업 등, 이 장면에서 많은 컷들이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컷과 컷이 충돌하거나 결합해 만들어지는 효과는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몽타쥬 기법이라 불리며 현대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법이 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 < 전함 포템킨 > 이후 많은 감독들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컷과 컷을 구성할지를 연구했고, 여러 기법들이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가장 흔한 것은 빠른 컷들이다. 시간당 들어가는 컷 수가 장르 영화로 넘어오면서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금의 액션 영화나 히어로 영화에 있어서는 그 컷 수가 장난이 아니다. 예전의 서부 영화와 지금의 액션 영화만 비교해 봐도 알 수가 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 카메라가 작아져서 20세기에 영화를 제작하던 때와는 다르게 쉽게 이동이 가능하고 여러 대의 설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20세기의 필름 카메라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컷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은 카메라를 더 고용하거나 더 컷을 넣기 위해 카메라를 이동해 다시 세팅해야 하는 비용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감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날 찍어야 될 컷을 다 채우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은 < 네 멋대로 해라 > 에서 원샷에서 찍힌 필름을 중간에 계속 잘라 점프컷을 만들었고, < 지옥의 묵시록 > 은 인트로에서 호텔방 선풍기에서 헬기 프로펠러로 바뀌는 매치컷을 구사했고, 스탠리 큐브릭은 <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서 단 두 컷을 매치시켜 인류진화를 설명했다. 이렇듯 컷은 가장 강렬하면서도 가장 흔한 영화의 표현기법으로 감독들이 가장 잘 다뤄야 할 기본 덕목이기도 했다.
오우삼 감독은 < 첩혈쌍웅 > 에서 이런 컷에 대한 생각들을 마구 펼쳐 놓으며 자신의 강호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영화야 말로 가장 오우삼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바에서 시작되는 슬로우모션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총격씬은 이미 < 영웅본색 > 시리즈에서 경험했기에 재미있지만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곧바로 드라시니구프 저격총의 반복컷이 나오면서 그때부터 오우삼이 원했던 액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드라시니구프를 배 위에서 견착 하는 장면은 반복컷의 편집을 통해 킬러로서의 실력을 확연하면서도 멋있게 보여준다. 반복컷을 쓰는 것에 있어서 어떤 스토리적 연관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때부터 오우삼은 화려한 컷 기법들을 사용하며 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감정적으로 주윤발과 이수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둘이서 서로 총을 겨누거나 성당에서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함께 싸우는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의 브로맨스는 초반에 서로 만나지도 않은 채 오우삼이 만들어 놓은 제로컷에 의해 결정 나 버린다.
주윤발이 자신의 은신처에서 선배인 주강을 1인용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다 그가 빈 가방을 가져온 것을 미리 알고 같이 온 킬러들을 처치한다. 그리고, 이수현이 곧 그 현장을 찾아 살인의 경위를 살필 때 그 소파에 앉는데 거기서 오우삼 감독이 교묘한 제로컷을 사용한 것이다.
제로컷이란 교묘한 편집기술 중 하나인데 배경이나 벽을 이용하는 기법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까 컴퓨터 그래픽이 크게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 벽을 이용해 만드는 컷을 제로컷이라고 불렀다.
카메라가 벽을 관통하거나 벽을 넘나드는 것처럼 이동하면서 인물을 보여주는 기법이다. 카메라가 벽을 관통하기 전에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이었는데, 벽을 관통하고 나면 어른이 된 주인공이 나오는 식이다. 현장에서 촬영은 두 번을 했지만 컷을 붙일 때 그 벽의 어두운 부분을 중심으로 두 개의 샷을 붙이면 컷이 아니라 마치 원샷으로 찍은 느낌이 나는 것이다. 인물이 바뀌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 제로컷을 이용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소파신이 완성되게 된다.
창문 너머에 카메라가 있고 창문을 옆으로 달리(dolly)하는 카메라. 그리고 창문과 창문 사이의 벽을 지나 다음 창문이 보일 때마다 교차하는 주윤발과 이수현. 그야말로 두 명이 어떤 식으로 엮일지 앞으로 뻔히 보인다. 초반부터 이 둘은 극 중에서 만나지도 않았지만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한다.
오우삼은 이미 이런 컷들을 통해 관객들의 감정을 어떻게 끌어올리고 캐릭터의 관계에 어떻게 집중시킬 수 있는 지를 장인의 실력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액션에도 여러 교차컷과 슬로우모션 컷으로 총격씬을 그려내며 강호의 의리를 그려낸다. 마치 장철이 구사했던 적룡과 강대위의 시대가 떠올리도록 말이다.
이 영화부터 그는 성당과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그의 스타일은 헐리웃에서도 계속되어 < 하드 타겟 >, < 미션 임파셔블 2 >, < 페이스 오프 > 등에서도 화면에 비둘기들을 날린다. 비둘기를 날리는 이유에 대해 오우삼의 종교 이야기도 하지만, 중요 액션 전에 시작하는 비둘기들이 난 딱히 어떤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는 되도록이면 하얀색 비둘기를 보여주려 애쓰는데 사실 피칠갑 전에 보여주는 이 흰색 비둘기들이 나에게는 묘하게 다가온다. 마치 여지없이 흰색에 피를 묻히고 죽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 오우삼은 배경이나 나오는 인물들, 특히 죽는 인물들에 대해 모두 흰색 옷을 장착시킨다. 초반에 나오는 하얀 빨래들 위로 펼쳐지는 총격씬에 거기서 사고로 총을 맞는 여자 아이도 하얀색의 옷을 입고 있다. 주윤발을 습격하는 킬러들도 하얀색 작업복을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흰색 위에 피를 물들이게 된다.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의 비둘기는 흰색이 빨갛게 물들기 전에 관객들의 감성을 짧은 폭풍전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장철의 < 철수무정 >이라는 작품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왔다. 범죄자와 추격자의 우정과 눈먼 여인까지 많은 부분을 장철의 영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철 영화와는 또 다른 부분인 세련된 편집과 슬로우모션, 그리고 무술을 하는 것처럼 펼쳐지는 총격씬들은 이 영화가 전혀 다른 영화이며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가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 용호풍운 > 에서 보여주었던 그 강한 브로맨스를 이번에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를 보여주는 방법은 너무나 달랐다. < 용호풍운 > 에서는 에피소드를 연결 지어 서로 속고 속일 수밖에 없는 잠입형사의 고뇌를 중심으로 그렸다면, < 첩혈쌍웅 > 에서는 거듭되는 액션씬을 통해 이수현과 주윤발의 관계를 그린다. 그래서 그 둘은 제로컷으로 시작한 소파씬부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병원까지 갔다가 발생한 대치씬, 그리고 눈먼 엽천문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총격씬까지 서로를 향해 죽도록 총을 겨누게 된다. 절대 상대방을 죽이고 싶진 않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무기를 집어든 것이다.
이런 대치씬들은 절묘하게 관객들이 착한 킬러인 주윤발과 고집 불통인 정의로운 형사 이수현의 관계를 계속해서 형제가 아님에도 형제처럼 보이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이수현이 주윤발의 복수까지 행하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즉, 스토리가 아닌 서로 죽이려고 하는 폭력씬들만으로도 오우삼은 브로맨스와 비장미를 살린 것이다. 마치 < 복수 > 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흰 옷과 피, 비둘기들이었다.
만약 오우삼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 첩혈쌍웅 > 은 반드시 보길 바란다. 이후에 그가 헐리웃으로 진출해 유명해지는 시그니처들을 여기서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