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크 Apr 12. 2024

오우삼 (3)

12. 첩혈가두

홍콩 뉴웨이브 영화 시대를 가져온 서극과 오우삼, 이 둘의 콤비는 거의 역대급이었지만, '영웅본색 3' 를 만들면서 견해차이로 서로 찢어지게 된다.

'영웅본색 3'를 기획하면서 둘은 베트남이라는 로케이션에는 합의를 했지만 베트남 화교 출신이었던 서극은 베트남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오우삼이 못마땅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가장 큰 이유는 < 영웅본색 > 때부터 시작한 둘의 충돌이었다.

서극은 프로듀서였지만 감독인 오우삼에게 계속 간섭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서극은 제작자이기도 하지만 연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우삼은 자신의 연출에 계속 간섭했던 서극이 좋았을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서극은 < 영웅본색 > 속의 주윤발 캐릭터의 프리퀄을 하고 싶어 했고, 오우삼은 적룡의 프리퀄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이 둘은 여기서부터 갈라서게 된다.

이렇게 갈라서면서 이 둘은 베트남을 소재로 각자 다른 '영웅본색 3' 를 만들게 되는데, 서극은 < 영웅본색 3 > 라는 타이틀로 주윤발이 M16 자동소총을 두자루나 들고 휘두르며 매염방이라는 여인 캐릭터를 내세웠다. 오우삼은 양조위와 장학우, 이자웅 ( < 영웅본색 1 >의 악당 보스)을 내세워 < 영웅본색 > 타이틀이 아닌 < 첩혈가두 >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내놓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영화는 모두 폭망 해서 이후 몇 년 동안 둘 다 재정적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오우삼 영화 중에서 이 < 첩혈가두 > 가 가장 오우삼이 하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오우삼 자신도 자신의 작품 중에 이 작품에 가장 애착을 가졌다. 슬픈 것은 오우삼 스튜디오가 불에 타는 바람에 이 < 첩혈가두 >의 원본 필름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편집본은 3시간짜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홍콩 개봉작은 여기서 50분 정도가 잘린 145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여기서 25분이나 더 잘라내는 짓을 한 것이 한국 개봉 극장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개봉할 때는 120분 두 시간이었다.

뭐, 이러니 당연히 한국에서는 흥행을 못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감독이 만든 3시간 넘는 영화를 자르고 또 잘라서 3분의 1 이상을 날렸으니 그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변화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정우비디오에서 상하로 나누어 홍콩 개봉판 버전을 들고 VHS 테이프로 내놓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싶다. 화질이야 어떻든 말이다.

지금은 이 영화 블루레이 판은 홍콩 개봉판에서 더 늘어난 165분 정도의 디렉터스컷이다. 하지만 정말 오우삼 감독이 원하는 편집본은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원본 필름이 없으니 말이다.


난 이 영화야 말로 오우삼의 인생작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기준으로 이 전이나 이후의 오우삼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는 홍콩이 최악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획득한 홍콩을 중국 본토에 반환해야 되는 1997년이 다가오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본토는 일국양체제를 이야기했지만 홍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불안감은 영화계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 90년대의 홍콩이었다.

거기에는 왕가위처럼 홍콩의 불안한 마음을 화면에 수려하게 그리려던 이도 있었고, 두기봉처럼 홍콩 느와르의 장인이 나타나 어두운 색채로 그린 이도 있었다.

그렇게 홍콩은 90년대 들어서 엑소더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을 떠나 캐나다나 미국으로 가기도 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을 누볐던 가화삼보 중 홍금보와 성룡은 헐리웃의 문을 두들기고 있었고, 주윤발도 미국에서 데뷔를 하며 이민을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불안감이 시작되던 1990년에 오우삼이 만든 영화가 바로 이 < 첩혈가두 >이다.


< 첩혈가두 >는 기존에 오우삼이 만들었던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 영웅본색 > 시리즈와 < 첩혈쌍웅 > 이 남자들의 브로맨스를 바탕으로 의리와 희생, 복수라는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 액션에 더 많은 강조를 둔 것과는 달리, < 첩혈가두 >에서는 처음으로 관계가 어떻게 깨지는지, 그리고 왜 복수를 해야만 하는지 스토리에 집중한다. 마치 샘 페킨파 감독의 < 관계의 종말 > 처럼 말이다.

물론 그 영화에서 오우삼이 스타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우삼의 액션 스타일을 주연이 아닌 조연인 임달화(아락역)에 한정시키며, 그가 만드는 액션 외에 나머지 액션은 오우삼의 스타일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임달화는 하얀색 양복에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그야말로 무쌍의 킬러로 나오지만, 사망플래그와는 다르게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큰 싸움으로 인해 팔을 잃은 불구가 되고 만다.


반대로 주인공인 양조위, 장학우, 이자웅의 액션은 헐리웃 액션에 기반한 것이 많았다.

특히 북베트남에 잡혀 < 디어 헌터 >를 연상시키는 러시안룰렛을 하는 장면이 그랬다. 러시안룰렛을 강요당하는 모습은 홍콩 느와르에서도 여러 번 쓰이지만 이 < 첩혈가두 > 의 러시안룰렛 장면은 홍콩 느와르라고 하기보다는 헐리웃의 진지함에 가깝다.

또한 이자웅이 친구인 장학우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때도 이렇다 할 비장미나 배신의 장면이라기보다는 조여 오는 일촉즉발의 상황과 금괴를 가져야 하는 이자웅, 그리고 이자웅을 구하다 배에 총을 맞은 장학우 등 많은 디테일을 그려놓으며, 보다 캐릭터의 관계와 변화에 대해 집중한다.

중반 중반에 화려한 무술 총격 액션을 집어넣고 마지막에 몰아붙이는 액션을 조합했던 지금까지의 오우삼과는 분명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초반에 베트남으로 넘어가 폭탄 테러로 인한 사건 등은 여러 가지 사건을 조사해 입혀놓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단순히 킬러나 뒷골목 세계처럼 환상적인 모습은 걷어내고 세 명의 친구들이 어떻게 해서 암흑가에 발을 들여놓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며 그리고 왜 배신을 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물론 여러 장면들은 기존의 홍콩 느와르나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따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 용호풍운 >의 세 명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 (이 장면은 여러 홍콩 느와르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다.)이나, 양조위가 장학우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할 때 장학우가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총을 내리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홍콩 느와르의 비장미라기보다는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관계의 집중에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내겐 오우삼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분명 전체적인 조명이나 미쟝센은 홍콩 느와르에 기반해 멋지게 빠진 장면들이 많았다.

초반에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나 베트남의 술집씬, 그리고 1달러 폐인 킬러가 된 장학우의 등장장면 등은 지금 봐도 빠지지 않는 장면들이다. 블루나 그린 라이트를 사용하는 홍콩 느와르 영화의 특이함부터 인물을 실루엣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법까지 장인이 아니면 연출할 수 없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곳곳에 있다.

중요한 것은 오우삼이 이런 장면들을 충분히 더 연출할 수 있고, 더 자극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음에도 그는 자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주인공들의 액션을 최대한 자제시키면서 장학우의 최후를 그렸고, 마지막 이자웅과 양조위의 자동차 총격씬은 이 영화의 백미로 초반의 자전거 경주씬과의 교차편집을 통해 이들의 관계가 이미 처절하게 망가졌음을 가슴에 와닿도록 설명한다. 이 마지막 액션씬은 기존에 오우삼이 < 영웅본색 > 이나 < 첩혈쌍웅 >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기가 막히게 다르다.

이제까지 그는 마지막 액션 장면에서 오로지 액션에만 집중하며 캐릭터들이 어떻게 죽이고 죽어나가는지에 집중해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 첩혈가두 > 에서는 그런 액션의 집중이 아니라 그 액션을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의 이유를 자전거 경주씬의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며 파국으로 치달은 세 친구의 비장미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그 마지막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오우삼다운 영화였으며, 오우삼의 가장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로 오우삼은 헐리웃에 가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헐리웃 액션을 적절히 사용하는 감독이 되었고, 흥행 감독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헐리웃 액션 영화에서 < 첩혈가두 >의 아름다운 마지막 교차편집 액션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주저 없이 < 첩혈가두 >를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물론 헐리웃으로 넘어가기 전에 만든 < 종횡사해 > 라는 코메디가 그나마 그의 재정을 돕고,  < 날수신탐(첩혈속집:한국 수입사가 만든 제목이다) >에서 원 없이 쌍권총을 뿌려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내가 보기엔 오우삼이 마치 헐리웃으로 가기 전에 연습을 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그 두 작품 이후 바로 헐리웃으로 가서 < 하드 타켓 > 이라는 거의 컬쳐 무비급 영화를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 첩혈가두 > 의 개봉 당시에는 그리 심각하거나 정치적으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상황이나 친구들의 관계가 묘하게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홍콩을 어쩔 수 없이 빠져나가야 하는 친구들과 그 이후에 변하는 관계들. 그리고, 홍콩에 돌아온 친구의 배신의 모습은 마치 1997년 이후의 홍콩을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많은 홍콩 영화인들이 1997년 이전에 홍콩을 빠져나갔다가 중국 경제가 커지면서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거나 중국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런 지점이 유덕화의 말대로 현재 홍콩 영화의 가장 슬픈 지점이 아닌가 싶다.

호금전과 장철이 일으키고, 이소룡과 가화삼보가 그 혜택을 받았으며, 홍콩 느와르는 그 속에서 홍콩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왔다.

물론 이후에 < 무간도 > 라는 걸출한 영화가 나왔지만 지금은 중국의 자본에 밀려 강호를 노래하던 홍콩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원숭이와 요괴들이 날뛰고 판타지에 사는 무림인들의 중국 영화만 남았을 뿐이다. 그 위대한 폭력과 비장미에 대한 아이디어와 스타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난 이 오우삼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이 영화야말로 오우삼이 사랑했던 영화이고, 난 이 영화가 20세기에 나온 홍콩 느와르 걸작 중의 하나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절대 마지막 장면을 놓쳐서는 안 되는 영화이다.  










                    

이전 11화 오우삼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