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휴스턴 감독이 1950년에 발표한 < 아스팔트 정글 >은 영화사에서 최초의 하이스트필름 (Heist Film) 혹은 케이퍼 무비 (Caper Movie)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케이퍼필름과는 많이 다르다. 그 진지함에 있어서 말이다.
케이퍼 무비는 범죄 조직의 구성이나 범죄 타겟에 대한 설계 등을 자세하게 그려나가며 이의 성공을 위해 치밀하게 짜져 있는 도면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분명 느와르나 스릴러 혹은 갱스터 장르와는 다른 영화들이다. 하지만 최초의 케이퍼 무비는 사실 갱스터 무비에 더 가까웠다. 범죄의 설계자가 등장하고 거기에 맞춰 치밀하게 준비해 가는 조직원들을 보여주지만 이 조직원들이 대부분의 초창기 케이퍼 무비에서는 죽음으로 최후를 맞는다. 범죄를 성공함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범죄에 있어서 도덕률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동훈 감독의 < 도둑들 > 이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 오션즈 일레븐 >, 혹은 < 나우 유 씨 미 > 등을 생각해 보자. 이 영화들은 분명 범죄가 어떻게 조직되고, 설계되는지에 집중하는 현대의 케이퍼 무비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초창기의 케이퍼 무비와는 다르게 밝은 톤을 유지하며 범죄가 멋들어지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50년대의 케이퍼 무비와는 전혀 틀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현대 케이퍼 무비의 첫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 The Sting > 이다.
물론 1960년대에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들이 연출권을 강화하면서 범죄자들을 낭만적으로 그렸던 유렵 영화의 영향을 받은 감독들도 많이 나왔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연출한 케이퍼 무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케이퍼 무비를 싹 쓸어버리고, 이 장르는 이런 거야라고 보여준 영화가 바로 조지 로이 힐 감독의 < The Sting > 인 것이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은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에서 수정주의 서부극에 대한 장르 비틀기를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장르를 새롭게 변형시켜 보여준다.
1920년대는 버스터 키튼의 시대였으며, 1930년대는 챨리 채플린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 두 시기를 관통하면서 많은 갱스터 장르들이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전쟁의 소비를 잊지 못하고 대공황에 빠져들던 시기였고, 미국에서는 금주법이 시행되어 많은 밀주제조자들이 나오며 갱들이 활개 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이들을 소재로 담은 갱스터 장르 영화들이 나오는데, 특히 30년대에 머빈 르로이의 < 리틀시저 >를 필두로 하워드 훅스의 < 스카페이스 > 등은 가난한 소년들이 유명 범죄자로 성공하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시킨다.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타락한 범죄자의 성공과 종교적인 죽음 등을 무거운 분위기와 강렬한 캐랙터들로 보여준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은 < The Sting > 에서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를 따르면서, 20년대의 스튜디오 촬영 형식과 편집 형식을 가져오고, 거기에 30년대 갱스터 장르에서 나왔던 여러 장면들을 차용해 한 편의 무성영화 같은 컬러유성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렇듯 그는 각 시대에서 여러 모티브를 따와서 기가 막힌 피아노 연주와 무성영화 시대에 썼던 시퀀스와 시퀀스 중간의 서브타이틀들을 화면에 배치해 50년대에 어두웠던 갱스터 장르에 가까웠던 케이퍼 무비의 장르를 유머로 뒤덮인 장르로 새롭게 바꿔놓는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던 당시 가장 많이 참조했던 영화들은 1930년대의 갱스터 무비들이었다. 그래서 30년대의 세트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리는 방식을 채택해 전작인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와는 다르게 실제 로케이션 이동이 많지가 않았다.
또한 로이 힐 감독은 30년대 갱스터 무비에는 엑스트라가 없음을 발견하고는 그 장치도 고스란히 이 < The Sting > 에 적용한다.
사실 30년대 영화에서는 엑스트라의 존재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당시만 해도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틀렸었다.
예를 들면 30년대 갱스터 무비에서 대낮에 거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는 장면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는 그 살인을 목격하고 놀라워하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이 거리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30년대 갱스터 무비에는 그런 엑스트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쏜 놈과 죽은 놈만이 존재할 뿐.
로이 힐 감독은 이런 점을 고스란히 < The Sting >에 적용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엑스트라보다 조연이 더 많은 영화가 된다.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193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도 1970년대의 세련됨을 영화 안에 제련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당시에 엄청난 성공을 한 영화였는데, 흥행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은 프로덕션 디자인이었다.
이 영화는 포스터부터 영화 안에 있는 컨셉 디자인들까지 당시에 가장 오래되면서도 가장 유명한 잡지인 'Saturday Evening Post' 에서 모든 디자인 컨셉을 따왔다.
이 잡지는 19세기부터 미국에 있던 잡지로 잡지 표지를 항상 지금으로 말하면 그래픽디자인으로 해왔다. 사진이 아니라, 인물을 그린다거나 어떤 상황을 그리는 걸로 이 잡지는 겉표지를 장식하고 디자인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을 마켓팅과 영화에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 < The Sting > 이었고, 이 것은 엄청난 유행을 일으킨다. 'The Entertainment' 라는 피아노곡과 더불어 말이다.
무엇보다 70, 80년대는 연기에 있어서 '메소드 연기법'이 무섭게 몰아치던 때였다. 철저히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메소드 연기법은 영화의 퀄러티를 한 단계 더 높여놨었고, 이 영화에서도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를 비롯한 로버트 쇼, 찰스 더닝 등 많은 배우들이 30년대의 배우들로 보이면서도 70년대의 멋들어진 연기들을 해낸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이 영화의 세련미에 따라오는 영화는 없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레트로라고나 할까.
이 영화는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 Butchy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이후로 다시 만난 버디영화로 일부러 캐스팅을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아니었다.
맨 처음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제의가 들어간 것은 잭 니콜슨이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데, 왜냐하면 당시에 그는 로만 폴란스키라는 불세출의 감독과 함께 < 차이나타운 > 이란 영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하드보일드 작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폴 뉴먼이 사인을 하게 되면서 또다시 폴과 로버트의 위대한 버디무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일단 보면 즐겁다.
범죄를 주제로 한 케이퍼 무비들은 사실 즐겁게 찍기가 힘들다. 그래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 오션즈 > 시리즈가 대단한 것이다. 그는 아예 배우들의 진짜 이름까지 동원해 관객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할 수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 유려한 편집과 촬영이 받쳐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최동훈 감독의 < 범죄의 재구성 >과 < 도둑들 > 을 생각해 보자. 물론 중간중간에 밝은 분위기를 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그건 상황이나 분위기의 밝음이 아니라 대사를 통한 휴머가 더 많이 존재할 뿐이다. 그 두 영화는 분명 < 오션즈 > 시리즈에 비해 어둡다.
거기에 반해 이 < The Sting > 은 인물들 자체도 밝게 설계되어 나오고 있고, 음악은 무성 영화의 경쾌함을, 중간중간의 세트장들의 톤은 무거운 색들이 아니라 밝은 브라운 계열로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아예 작정하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범죄가 설계되는 어두운 뒷골목 세계를 경쾌한 느낌으로 유지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전혀 범죄로 인한 'Guilty'를 못 느낄 정도로 만든 것이다. 오히려 범죄가 성공했을 때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이다.
이 쾌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마지막에 작전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보여주는 회상씬을 배치하는 연출도 이 영화가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많은 감독들이 이런 연출을 따라 과거에 이미 어떤 식으로 작전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씬들을 뒤에 배치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이렇게 장르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이 영화는 많은 평단으로부터 매력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하는 영화가 되면서 조지 로이 힐 감독을 다시 한번 뉴 아메리카 시네마의 기수로 인정받게 만든다.
로이 힐 감독은 < 내일을 향해 쏴라 > 와 < 스팅 >, 이 두 작품만으로 미국 영화사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그 이후의 작품은 바닥을 헤매게 되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때에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정치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였다. 바로 닉슨 대통령을 임기 중에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야당인 민주당에 대한 불법도청 및 감시를 한 사건으로 1972년에 경비원의 신고로 시작되어 이후 1974년에 닉슨이 사임할 때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그 중간인 1973년에 이런 케이프 무비가 대박 흥행을 쳤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1973년에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별별 대국민 사기극을 치기 시작하며, 밑에 있던 참모들마저도 가차 없이 잘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라는 두 기자가 연일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써내며 닉슨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이때에 이 두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고위층이었던 Deep Throat 가 나오는데, 한국말로 하면 빨대쯤 될 것이다. 나중에 FBI 부국장으로 밝혀지지만 말이다.
이런 시기에 상대방을 철저히 속여 쾌감을 느끼는 이 영화가 그 해 박스오피스 1위였고, 전화기에 대한 도청이나 회선 바꾸기가 사기수법의 중요한 부분으로 나오는 것도 그래서 재미있다.
닉슨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성공했고, 마피아 보스를 파산시킨다. 어쩌면 미국 국민들은 기득권자에 대한 너도 같은 방법으로 당해봐라는 심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두운 정치적 상황에서 밝은 느낌을 주는 사기극이 더 나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이 영화는 미국의회도서관이 2005년부터 영구 보관해야 하는 영화로 지정할 정도로 당시에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연출로 신선함과 경쾌함을 주었던 영화였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빠지지 않고 꼭 봐야 하는 영화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있었기에 지금의 현대 케이퍼 무비들이 존재한다고 과언을 해도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