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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Apr 16. 2024

조지 로이 힐 (1)

13. 내일을 향해 쏴라

조지 로이 힐 감독은 < The Sting > 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휩쓸고, 뉴 아메리카 시네마의 기수처럼 인식되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사실 < The Sting (스팅) > 이후 그렇게 뛰어난 작품들이 나온 적은 없다.

그래서 이 감독의 얼굴보다는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사진으로 이 글을 장식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로이 힐 감독은 마땅히 다시 봐야 할 감독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가 만든 영화가 바로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내일을 향해 쏴라) > 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미국 서부영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으로, 이런 작품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운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로이 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해병대 비행기 조종사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은 항상 비행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연출을 내려놓기 전의 여러 작품에서 비행에 대한 이미지를 화면에 그려놓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아예 비행사에 대한 영화 < The Great Waldo Pepper > 도 연출한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뛰어난 작품들은 아니었다.

난 조지 로이 힐이 샘 페킨파 감독과 같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사람이지만 다른 장면들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샘 페킨파가 죽음과 폭력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면, 조지 로이 힐은 파란 하늘과 바다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의 동시대의 감독이고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을 펼쳤어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

샘 페킨파카 죽음을 폭력의 끝으로 보여줬다면, 조지 로이 힐은 죽음을 휴머와 희망으로 가장한다.

< Pat Garret and Billy the Kid (관계의 종말) >은 수정주의 서부극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지만 대표작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흥행이든 뉴 헐리웃 시네마가 지향했던 열린 결말에 있어서는 이 < Butchy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를 앞지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Butchy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는 일단 장르부터 뒤틀었다. 이제까지 서부영화 장르에 코메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악당들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코메디 장르를 섞은 서부영화는 없었다. 두 주인공의 티카타카의 모습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선사한다. 그들이 하는 짓이 은행 강도에 열차 강도라는 범죄인데도 이 둘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이들의 연인인 에타 (케더린 로스)의 삼각관계는 관객들에게 범죄의 진지함보다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볼리비아에서 에타가 둘의 강도질을 위해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다.

또한 이 영화는 영화사 최초의 버디무비이기도 하다. Buddy 는 영어에서 Mate 나 Friend 의 속어다. 이 영화 이후 둘이 팀을 이뤄 나오는 영화는 수도 없이 나오게 된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도 이후에 < The Sting > 을 통해 다시 한번 buddy movie 를 만들기도 한다.


buddy movie 에는 꽤 많은 영화들이 알려져 있다. 백인 형사와 흑인 형사가 짝을 이루는 < 러셀웨푼 >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성룡이 헐리웃에서 흥행을 했던 < 러시아워 >도 buddy movie 이다. 이렇듯 두 명의 주인공이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거나 로드무비 형식을 담거나 하는 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 델마와 루이스 >가 buddy movie 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성에 차별을 안 둔다면 말이다.

참고적으로 백인과 흑인이 짝을 이뤄 만든 최초의 buddy movie 는 < 48시간 >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는 여러 장르적 요소들을 수정주의 서부극에 끌어들여 대성공을 거둔다. 이 영화가 개봉한 해가 1969년인데, 당시에 1억 달러를 넘게 벌어들이며 1969년에 가장 돈을 많이 번 영화로 기록된다. < Get Away > 가 3,800만 달러로 8위에 위치했으니, 이 영화의 흥행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흥행에서만 최고의 기록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실수만 아니었다면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을 것이다. 최노미네이트된 필름이었으니 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서부영화 장르에서 가장 크게 나오는 총잡이들의 대결이 없다는 것이다. 이 총잡이들의 대결은 서부영화의 불문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같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든, < Pat Garret and Billy the Kid >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이든, 총잡이들의 대결씬은 서부극의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감하게 그런 액션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추적대나 군대에게 줄기차게 쫓기는 것이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든 액션이다. 영화 스토리 자체가 두 주인공의 실제이야기인 것처럼 전기형식을 따르기 때문에 액션자체가 달라질 수 밖에 없었기도 하지만,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인 윌리엄 골드만이 새로운 서부영화를 바랬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다.

기차칸이 폭발해 모든 돈이 공중 위에 뿌려진다던가, 주인공들이 추격대에 쫓기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등은 기존의 서부영화와는 너무나 다른 액션들이었다.


사실 이 영화의 Sundance 역할은 초반에 누구에게 갈지 몰랐었다. 맨 처음 오퍼를 받은 잭 레몬 (Jack Lemmon)은 Sundance 역을 너무 많이 했고, 말 타기도 싫다며 거절했다. 그리고, 오퍼를 받은 사람은 < Bonie and Clyde > 로 유명한 워렌 비티였다. 하지만 워렌 비티는 시나리오가 < Bonie and Clyde >와 분위기가 너무 비슷하다고 고사했다.

다음 차례는 당대의 최고 액션배우 스티브 맥퀸이었다. 스티브 맥퀸은 Sundance 역에 만족하며 이미 캐스팅이 완료된 폴 뉴먼과 함께 하기로 했다. 하지만 폴 뉴먼과의 의견충돌로 하차한다.

이렇게 세 명의 배우를 거쳐 이 시나리오를 손에 쥔 사람이 로버트 레드포드였다. 20세기 최고의 미남배우라 불리던 이의 인생작이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이 역할을 너무나 사랑했던 레드포드는 이후에 이 캐릭터의 이름을 딴 Sundance 영화제를 자신의 사재로 만들 정도였다.


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 장면은 두 가지다. 그중 하나가 폴 뉴먼과 캐서린 로즈가 함께 자전거를 타며 나오는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라는 노래다. 이 서부영화와 전혀 맞지 않는 마치 뮤지컬 영화 < Singing in the Rain > 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가 마치 장르의 변주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부영화에서 액션영화에서 버디무비에서 코메디무비에서 다시 멜로뮤지컬 영화까지 연상시키는 이 영화의 변주된 장르는 감독의 장르에 대한 탁월한 연출력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 한 방울 안 오는 아침에 새로운 발명품인 자전거를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타며 묘기를 보여주는 폴 뉴먼의 모습이 마치 < Singing in the Rain > 의 진 켈리를 연상시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 한 방울 안 오는데 말이다. 이게 서부영화인지 뮤지컬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이 장면은 수정주의 서부극과 절묘하게 맞는 장면으로 극 중의 부자연스러움이 전혀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은 감독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들어간 장면이자 노래이다. 제작사와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마저 이 장면과 노래를 넣는 것에 반대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 레드포드는 자신이 틀렸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정도로 이 노래와 장면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이 되었다. 감독의 주장이 없었다면 이 명장면은 가위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여기에 나온 캐서린 로즈는 에타라는 캐릭터로 여러 번 TV 드라마와 영화에 캐스팅될 정도로 에타란 캐릭터의 인기도 하늘로 치솟았다.


< Bonie and Clyde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에서 시작된 뉴 아메리카 시네마는 항상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씁쓸한 결말이 많았다. 방금 전에 말한 작품이 그렇고, 샘 페킨파의 작품들이 그러했으며, < Easy Rider > 의 결말도 죽음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 Butchy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는 달랐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프로즌 프레임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볼리비아군들에게 몰려서 죽음을 앞둔 두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음엔 어디로 갈지 농담을 주고받은 뒤 은폐한 곳에서 튀어나와 둘 다 쌍권총을 들고 쏘는 장면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장면에서 갑자기 화면의 칼라를 바꾸고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든다.

화면 위에 남은 두 명의 주인공들이 쌍권총을 들고 달리다 멈추는 장면은 관객들의 심장마저 얼어붙게(Frozen) 만든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 두 주인공이 죽었을지, 살았을지. 영화 내내 어떤 추격에도 살아남은 그 둘이 볼리비아군을 뚫고 살아 나갔을 거라는 가느다란 희망마저 심어준다. 그 정지된 샷은.

물론 이 둘은 스토리상, 혹은 역사적으로 볼리비아에서 죽는다가 맞다.

그래도 이건 영화다. 영화만이 가진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모든 시간을 정지시켜 버린 이 프로즌 프레임은 관객들에게 가느다란 희망을 남기며 주인공들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시키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영화는 이 한 컷만으로 수정주의 서부극의 정점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정주의 서부극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장르였다. 이런 서부극의 변주는 무엇보다 감독들의 연출권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헐리웃 영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로 이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마지막 주자이자 이 물결을 < 죠스 >라는 영화 한방으로 휩쓸어 버리고 블럭버스터라는 헐리웃 체계를 가져온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막강한 파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감독들의 연출권 강화가 밑바탕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인생을 사는 동안 꼭 봐야 할 영화 중 한편이라고 자신한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정점에 있는 영화 중 하나이며, 감독은 이 한편만으로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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