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기로 왠지 이상하고도 묘한 분위기를 주는 이 영화는 < The World According to the Garp (가프) > 라는 영화로 조지 로이 힐 감독이 1982년에 발표한 영화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조지 로이 힐 감독은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와 < The Sting > 이라는 두 개의 명작품 외에는 그다지 좋은 작품을 내놓은 감독은 아니었다. 그리고, 삶도 감독이 아닌 대학교수로서 마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 The World According to the Garp >는 감독의 관점이 아닌 배우의 관점으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이다.
항상 감독들이 고민하는 지점의 하나는 정말 영화란 어떤 것일까? 라는 의문이다.
왜 감독은 피사체인 배우들의 감정을 격하게 보고 싶은지, 왜 피사체의 위치를 조정해 관객의 감정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왜 배우들은 그런 피사체가 되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지도 그런 질문의 한 종류들이다.
그리고 < The World According to the Garp > 가 그런 의문에 조금은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왜 만들었는지 모르는 영화이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존 어빙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982년에 개봉했다.
원작 소설은 70년대 말 미국이 가진 모습을 페미니즘 엄마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출생 경로를 가진 가프, 그리고 그 둘을 진정으로 사랑한 로베르타(transsexual)를 중심으로 그려낸 유명한 소설이다.
소설은 밝은 분위기라기보다는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각 인물들의 어두운 상황들을 애정 있게 바라본다.
하지만 영화는 장르가 말해주듯 한 단계 더 밝은 코메디로 만들어 버린다.
아들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장님이 되고, 아내가 불륜이고, 엄마는 남성들에게 분노하는 페미니스트다. 이런 상황에서 가프는 엄마에게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엄마가 운영하는 페미니즘 센터에는 11살 때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이름을 말하지 못하도록 혀가 잘린 '엘렌 제임스'를 추종하는 여자들이 나타나 그녀와의 연대를 위해 자신들의 혀를 자르겠다고 나타나 투표를 한 후 실행한다.
게다가 엄마는 반페미니즘 테러리스트한테 목숨을 잃고, 본인도 결국 초등학교 동창이자 극단주의 페미니스트인 Pooh 에 의해 총을 맞는다.
이런 여성들에 대한 혐오적 차별과 거의 막장 수준의 페미니즘이 나타나는 이 영화의 장르가 그런데 코메디인 것이다. 주인공도 그 유명한 '로빈 윌리엄스'이고.
난 영화에서 감독은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분명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스토리텔러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일 것이다. 이 말은 절대 영화의 장르를 규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장르든, 컷이든, 캐릭터든 그것은 영화의 내용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나 수단일 뿐이지 결코 영화를 규정하는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 The World According to the Garp >는 감독이 중심을 잃어버린 느낌이 많이 나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영화를 보게 되면 그다지 흠잡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면이나 편집에 있어서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고등학생부터 중년까지 연기했던 로빈 윌리엄스와 페미니스트로서 엄마로서 작가로서 그 다양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던 여성을 열연했던 글렌 클로즈, 그리고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다가 여자로 성전환을 하며 그 육중한 몸과 얼굴에 항상 화장과 가발을 쓰고 나타났던 존 리스고우까지 연기는 가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무색할 지경으로 황홀하다.
그렇다고 코메디 장르로서의 역할이 약한 것도 아니었고, 원작 소설가가 직접 쓰진 않았지만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를 정확히 모르겠다.
특별한 출생을 가지고 있던 모자관계를 보여주고자 한 건지, 불행과 행복을 반복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이 둘과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는 주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어떤 중심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인간이 가지는 성정체성 (Sexual Identity)나 다른 철학적 주제나 정치적 함의를 일으키는 영화도 절대 아니다. 그냥 감독은 관객이 이러면 재미있게 볼 거야라고 만든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스토리도 특이했고, 연기도 좋았지만 보고 나면 무엇을 본 건지 모르는 영화가 되었다.
그래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사실 배우들에게 있다.
우선 미국이 낳은 위대한 여배우 중 한 명인 글렌 클로즈가 이 영화를 통해 영화계 데뷔를 했다는 것이다.
글렌 클로즈는 한국에서 배우 윤여정 때문에 더 유명하다. 당시 글렌 클로즈는 넷플릭스에서 론 하워드 감독이 만든 < 힐빌리의 노래 > 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 미나리 >의 윤여정으로 인해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런데, 이 위대한 배우는 너무 연기를 잘해서 아카데미상에만 무려 8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지만, 단 한 번도 수상을 하지 못한다. 운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8번째에 윤여정이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글렌 클로즈는 이 작품 전만 해도 영화를 단 한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작품 이후에 거의 영화만 하게 되는데, 그리고, 이 < The World According to the Garp > 에 나와 단 한 번의 영화출연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특히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나온 < 위험한 정사 >에서는 악역 여인으로 나와 명연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실제 지독한 페미니스트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연기는 가프에 대한 모정을 바탕으로 현실에 없는 인물이지만, 현실에 있는 캐릭터처럼 만들어 버린다. 감독은 어쩌면 이 글렌 클로즈를 카메라에 담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인물이 연기로 인해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면 감독은 관객보다 그 배우만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존 리스고우도 거의 비슷하다. 그는 TV 시리즈 <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으로도 유명했지만, < All That Jazz > 로 시작한 그의 필모그라피는 화려하기만 하다. 특히 악당역으로 말이다.
쟝 드봉 감독의 < 클리프 행어 >에서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뒤쫓는 악당 두목역으로 모든 카리스마를 뒤덮고, < Footloose >의 꽉 막힌 빌런 목사 아빠역으로 답답함의 끝을 보여주며 다양한 악역을 멋들어진 연기로 소화해 내는 배우이다.
그도 < The WorldAccording to the Garp >를 통해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단박에 노미네이트 된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transsexual 전직 NFL (알다시피 이 미식축구리그는 미국에서도 가장 터프한 남자들이 하는 리그이다.) 선수역은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존 리스고우는 그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존 리스고우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역할은 사실 성전환자, 그 이상이다. 여자로 성을 바꿨지만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몸은 여전히 NFL 플레이어를 보여주면서 화장을 한 얼굴과 행동은 누구보다 여성스럽다. 그리고, 이 극 중에서 누구보다 가프 모자를 사랑한 사람이기도 하는데, 그는 이 역할을 시치미 뚝 떼고 멋들어지게 해낸다.
로빈 윌리엄스는 이 영화에서 적게 거론되고는 하는데, 그는 자신의 외모와는 다르게 고등학생부터 중년까지의 가프 역할을 그 특유의 센티멘탈한 코메디 연기로 포장한다. 우울하고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전매특허 연기는 < 죽은 시인의 사회 >, < 미세스 다웃파이어 > 등에서 이미 잘 드러났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는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엄마가 죽은 후 장례식에서 페미니스트 단체가 남자 출입 거부를 만들자 여장을 하고 숨어서 지켜보는 그의 모습은 그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처음에 엄마가 아이를 토스하면서 하늘을 보여주는 장면은 사실 감독의 개인적인 하늘에 대한 동경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로빈 윌리엄스가 총에 맞은 후 헬기로 이송되면서 '엄마, 나도 이젠 날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며 그 토스장면을 다시 보여준다.
저번에도 이야기했듯 조지 로이 힐 감독은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다. 그리고, 그가 참전한 이유는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가르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정도로 하늘을 나는 것에 집착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감독의 개인적 동경과 가프의 삶에 대한 자유를 첫 화면과 끝 화면에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중심을 잃으면서 배우 외에는 플롯도, 화면도, 스토리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간이 나면 한번 보기를 바란다. 강력 추천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 본 후 영화가 이야기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지.
그래도 20세기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이라 불렸던 글렌 클로즈의 데뷔작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