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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Apr 05. 2024

오우삼 (1)

10. 영웅본색 2

앞에서 샘 페킨파 감독과 장철 감독을 이야기한 것은 어쩌면 이 감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오우삼으로 알려져 있고 영어권에서는 John Woo 라고 알려진 이 감독은 홍콩 느와르의 황금기를 이룬 감독으로 헐리웃에 가서 < Broken Arrow (브로큰 애로우) >, < Face Off (페이스 오프) >, < Mission Impossible 2 (미션 임파셔블 2) > 등으로 대박을 치면서 세계적인 감독이 된다.


느와르 (Noir) 라는 말은 프랑스어다. 검은색이라는 뜻인데 이게 Film 과 붙어서 Film Noir 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이 가리키는 의미는 주로 범죄나 하드보일드 장르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느와르라는 장르는 그렇게 딱 사설탐정과 악녀, 그리고 씁쓸한 범죄의 결말이라는 몇 가지 단어로 치부할 수가 없다. 이 느와르라는 말은 장르보다는 표현에 위주를 둔 단어였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영화를 개발하면서 유럽에서도 필름에 대한 여러 표현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특히 독일 영화들은 그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음영이 확실히 구분되고, 인물이 안 보이고 배경만 밝은 화면이라든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가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인물 얼굴이 보인다던가 하는 여러 빛에 대한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필름들을 표현주의라고 불렀다. 이런 표현주의에 기반해 많은 범죄 장르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필름 느와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이지만 필름의 내용이나 표현에 있어서 둘 다 어두운 것을 필름느와르라고 칭했다. 그래서 느와르란 장르를 이야기할 때는 약간 어려움이 있다.

SF 느와르는 있지만 케이퍼필름을 느와르라고 하기에는 약간 모자란 그런 것과 비슷하다. 아마도 느와르를 장르라고 이야기한다면 가장 많은 장르들과 경계를 가르지 않고 녹아들 수 있는 장르일 것이다.


이에 반해 홍콩 느와르는 그 결을 조금 달리한다. 홍콩 느와르의 바탕은 그런 독일의 표현주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홍콩 무협에 기반하고 있다. 내용은 어두운 뒷골목 세계를 다루어도 사나이들의 비장미는 홍콩 무협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60년대 쇼브라더스의 무협영화 내용들을 현대의 홍콩 뒷골목으로, 칼과 창을 총과 자동소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액션씬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무한한 내공처럼 비어지지 않는 탄창과 무술을 하듯 이루어지거나 (영어권에서는 발레를 하듯 총질을 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발레보다 무술이다) 와이어까지 사용해 보여주는 총격씬, 거기에 장철을 통해 이루어졌던 신체훼손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맨 처음 홍콩 느와르의 효시라고 불리는 맥당웅 감독의 < 성항기병 > 이나 허안화 감독의 < 호월적고사 >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영화는 분명 총격씬에서 무술보다는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하지만 캐릭터들은 여전히 의리와 사랑을 위한 복수를 추구하는 인물들로 내용도 비장미가 물씬 풍기는 것들이었다.

분명 70년대는 이소룡의 시대였으며, (아무리 적룡과 강대위가 있었어도) 80년대는 가화삼보 (성룡, 홍금보, 원표)의 시대였다. 이소룡 사후 70년대 후반에 홍콩 영화의 부침이 있었음에도 이 두 시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후에 홍금보와 원표에 비해 성룡이 < 홍번구 > 로 헐리웃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새로운 성룡의 시대가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1986년에 등장한 < 영웅본색 >이후 1997년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홍콩영화를 책임진 것은 분명 이 홍콩 느와르 영화들일 것이다. 그리고 역시 가장 자기 복제에 시달린 작품들도 이 홍콩 느와르들이었다. 홍콩 영화의 자기 복제는 내가 보기엔 끊어지지 않는 저주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흑사회와 연결된 이 자기 복제는 무협영화부터 느와르까지 꾸준히 적용되었고, 홍콩 느와르의 명장 두기봉이 괜히 < 흑사회 > 라는 영화를 통해 그들을 세상에 알린 것이 아니다. 결국 이런 저급한 자기 복제 영화들로 인해 홍콩 느와르도 금방 시들해졌으니 말이다.  


오우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두 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첫 번째가 장철 감독이다. 오우삼의 영화인생은 장철 감독의 조감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연출력을 높이 산 쇼브라더스에 의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말했듯이 무협영화의 공장형 양산시기였다. 오우삼은 이 시기에 회의를 느끼고 영화를 관두고 3년이나 쉬게 되는데, 이 시기에 그는 다시는 무협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 후에 오우삼은 정우성과 양자경이 나온 < 검우강호 > 외에는 절대 무협영화를 찍지 않았다. 그 영화마저도 201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무협영화를 그만둔 지 25년 후였다. < 적벽대전 1,2 > 는 무협영화라기보다는 원작을 둔 전쟁영화에 가까웠다.

두 번째가 서극 감독이다. 오우삼은 3년을 쉰 후에 1985년에 감독과 배우로 서극을 만나게 된다. 서극은 알다시피 그 후 홍콩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감독 겸 제작자다. 특히 그는 제작자로서 만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대히트를 치는데, 그중 하나가 < 영웅본색 > 시리즈다. 오우삼은 서극과 만난 뒤 바로 다음 해에 1986년에 만든 1편, 1987년에 만든 2편으로 홍콩 느와르를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 영웅본색 1 > 보다는 < 영웅본색 2 >를 더 좋아한다. 이유는 < 영웅본색 2 > 부터 본격적으로 오우삼 스타일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 영웅본색 1 > 이 뒷골목 세계를 강호라 부르며 의리를 따지기 시작했다면, < 영웅본색 2 >는 본격적으로 남성들의 형제애, 의리 그리고 배신과 복수를 오우삼 특유의 총격씬으로 그렸다.


< 영웅본색 2 >의 명장면은 크게 네 가지다. 물론 모두 다 총격씬이다.

첫째가 장국영이 벌이는 부둣가 액션씬이다. 이때 벌어지는 총격씬에서 오우삼은 무림 고수가 어떻게 총알을 피하는지 보여준다. 장국영이 날라다니지만 않았지, 거의 아크로바틱 하게 총알을 피하고 보트에 올라타 적을 처치한다. 거기다 형인 적룡이 조직에 침입하기 위해 장국영을 쏴야 하는 상황까지 만드니 비장미가 벌써 3분의 1은 올라와 버린다.


둘째가 주윤발이 벌이는 호텔 총격씬이다. 조직의 전 보스지만 가족을 잃고 정신줄 놓아버린 석천을 보호하며 공격하는 킬러들을 산탄총과 쌍권총으로 격퇴하는 장면이다. 물론 이 장면은 샘 페킨파의 < Get Away >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다. 특히나 계단을 등으로 타며 쌍권총을 뿜어대는 주윤발의 슬로우모션은 이 영화의 백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주윤발이 위기에 처하자 정신이 돌아와 적을 처치하는 석천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셋째가 고수와 고수의 대결인 장국영과 보스 오른팔과의 1대 1 대결이다. 마치 서부의 건맨 결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두 무림고수가 마지막 한 방을 놔두고 벌이는 대치감이 기가 막힌 조명과 블루컬러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결국 장국영이 치명상을 입고 선글라스킬러도 팔에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주윤발에 의해 구출되어 공중전화 부스에서 딸의 이름을 지어주고 죽는 장면에서 홀로 옆에서 죽음을 감내하는 주윤발의 비장함이 관객들의 가슴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그리고 관객들은 마지막 수단이 복수밖에 없다는 것에 동조하게 된다.


마지막이 최후의 결전이다. 조직의 아지트로 찾아간 4인(물론 1명은 나갔다가 다시 오고, 다시 떠나지만)은 끝없이 쏟아지는 조직원들과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물론 샘 페킨파가 연출한 < The Wild Bunch > 의 1대 다수의 총격씬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지만 거기에 오우삼은 장철의 피칠갑 엔딩을 교묘하게 이어 붙인다. 이는 본인이 연출한 < 영웅본색 1 >과는 전혀 다른 엔딩연출이었다.

< 영웅본색 1 > 이 주윤발의 죽음을 통한 비장미를 일으키는 것이었다면, < 영웅본색 2 >는 1대 1 보스들의 대결을 위해 많은 부하들을 죽여야 하는 무협영화의 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장면을 무협영화로 보자면 악당의 우두머리가 수십 명의 부하를 시켜 주인공들을 둘러싸고 주인공들이 이 부하들을 처치하며 악당의 우두머리를 향해 나간다. 거기서 우두머리 밑에 있던 나름의 절정고수들이 한 명씩 맡아 대결을 벌이는데, 적룡은 < 첩혈쌍웅 > 의 악당보스로 나오는 성규안과 대결을 벌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악당과 1대 1 대결을 하면서 조직의 부두목인 성규안은 도끼를 쓰고 적룡은 증강이 던져준 칼로 맞서며 서로를 썰어버리려고 하는데 이를 슬로우모션으로 담아낸다. 게다가 이후에 적룡이 증강을 구하기 위해 칼로 악당 부하들을 해치우는 모습은 피칠갑을 하며 상대 무사들을 죽였던 장철 때의 무림고수 적룡이 맞다.

사실 이 부분은 장철에 대한 오마쥬가 분명하다. 총격씬이 한참이던 때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이 칼부림씬은 비록 자신은 무협영화계를 떠났지만 존경하는 스승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던 적룡에게 칼을 쥐어준 것이다.


또 다른 고수의 대결은 주윤발과 선글라스 킬러이다. 많은 돈도 마다하고 오직 주윤발과의 승부만 바라는 무림고수인 선글라스 킬러와 롱코트를 입은 주윤발의 1대 1 대결은 무림고수들의 싸우는 방식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는 장국영을 1대 1 대결에서 물리친 절세고수다.  

이 모습이 재미있는 게 이 장면에서 감독은 수정주의 서부영화를 한번 더 비튼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가 보기엔 무협고수들의 대결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다.)

등 뒤에 대고 마구 총을 쏘는 서부와는 달리 강호는 배신은 있어도 대결은 깨끗했다는 듯이 선글라스 킬러는 주윤발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기다려 준다. 게다가 서로의 총질 이후에 마지막 결투를 위해 베레타 권총을 그의 발에 밀어주고, 자신의 총도 발 밑에 놔둔다.

그리고 그 둘의 대결이 한 끗 차이로 주윤발이 이겼음을 알린다. 물론 큰 내상을 입고 말이다. 마치 강호의 도의는 아직 살아있음을 강조하는 듯한 이 장면은 오우삼이 무협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뚜렷이 알려주는 장면이다. 그는 무협영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쇼브라더스하의 노역이 싫었던 것이고, 그의 스승인 장철로부터 배운 연출을 존경한다는 의미였다.


오우삼의 장철에 대한 존경심은 장철이 노년에 돈이 없자 < 의담군영 >이라는 헌정영화를 만든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모든 장철사단의 유명배우를 출연시켜 수익금을 장철에게 노후에 보탬이 되라고 다 주었는데, 장철 감독은 그 돈마저도 다 영화 만드는데 썼다고 한다. 노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고집은 그래서 위대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대결은 알다시피 석천과 조직 보스의 대결인데, 여기서도 여전히 무협영화의 기본 내용이 담겨있다. 가짜 보스를 내세운 진짜 보스의 도주와 마지막 보스를 처단하기 위한 주변 동료들의 희생, 그리고 복수의 의지가 담긴 한마디와 처단. 이런 것들은 무협영화들의 단골 재료였다.

그리고 시체들이 쌓인 방에서 각자 1인용 소파에 앉아 경찰을 기다리며 마지막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도 여전히 피로 얼룩져 있다. 이후 오우삼은 피로 물들었다는 '첩혈'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 첩혈쌍웅 > 을 연출하고 영웅본색 3로 기획되었던 작품을 < 첩혈가두 >라고 이름 지어 내놓게 된다.  


< 영웅본색 2 >는 사실 샘 페킨파보다 장철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영화이다.

특히나 마지막 총격씬에서 벌어지는 피칠갑은 장철의 무협영화 특성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장철의 피칠갑을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들에게 자주 입혔던 흰옷도 모자라 아예 건물 전체를 흰색으로 바꾸고 벽에다 피를 뿌려댄다.

마지막 소파 장면을 보면 시체가 쌓인 것은 둘째치고 사방이 온통 피칠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피칠갑 표현은 장철 감독의 주특기였고, 무협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피칠갑을 한 채 죽어 있는 모습을 긴 시간으로 보여주는 것도 장철 감독의 주된 연출이었다.  


이 영화는 많은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스토리는 1967년에 만들어진 < 영웅본색 >을 주윤발 캐릭터만 (물론 이 주윤발 캐릭터가 신의 한수지만) 빼고 다 가져왔으며, 주윤발이 입고 있던 트렌치코트는 프랑스의 유명한 필름누아르 장인 장피에르 멜빌의 범죄영화를 오마쥬 했다. 그리고 위에도 이야기했듯 호텔 총격씬은 샘 페킨파의 영화에서 가져왔다. 물론 전체 영화가 내뿜는 분위기와 비장미는 단연 장철의 영화들에서 가져왔고.

하지만 세상을 바꾼 아이폰도 스티브 잡스가 직접 혼자서 개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알던 세계관을 관철하기 위해 많은 첨단기술들을 창의적으로 한데 집약시키고 변형시켰고 그래서 혁신을 가져올 수 있었다.

오우삼이란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장피에르 멜빌을 알고 있었고, 샘 페킨파 감독을 동경했으며, 장철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들의 장점을 취해 고스란히 펼쳐놓은 < 영웅본색 2 >는 이들의 영화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으며, 이 영화는 < 매트릭스 > 같은 유명한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오히려 다른 영화들이 이 < 영웅본색 > 시리즈를 오마주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볼 가치가 있는 것이며, 난 개인적으로 < 영웅본색 1 > 보다는 < 영웅본색 2 >를 추천한다. 거기에서 뿜어 나오는 무협고수들의 이야기를 총격씬으로 감상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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